도쿄의 여름 아침은 유난히 끈적였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은 이미 제법 따가웠고, 에어컨 실외기가 돌아가는 낮은 진동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6평 남짓한 원룸은 장걸의 만화 작업대로 쓰이는 책상과 자료가 쌓인 책장, 그리고 작은 침대 하나로 거의 모든 공간이 채워져 있었다.
장걸은 팔에 느껴지는 작은 무게감에 눈을 떴다. 난난이었다. 아이는 그의 팔을 베개 삼아 옹크린 채 아직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새하얀 피부가 아침 햇살을 받아 거의 투명하게 빛났고, 가느다란 속눈썹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장걸은 숨을 죽였다. 깨우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난난이 느릿하게 눈을 뜨더니 아빠의 얼굴을 확인하곤 방긋 웃었다.
“아빠, 안녕.”
목소리는 아직 잠에 취해 나른하고 달콤했다.
“우리 공주님 일어났네. 잘 잤어?”
장걸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부드럽게 물었다. 난난은 대답 대신 그의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5살 아이의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난난이 입고 있는 얇은 면 원피스 잠옷이 살짝 구겨져 올라가 있었다. 장걸은 무심코 그 옷자락을 내려주다가 손끝에 닿은 아이의 허벅지 피부에 잠시 멈칫했다. 마치 솜사탕처럼 보드랍고 따뜻했다. 그는 얼른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가 아침 만들어줄게. 뭐 먹고 싶어?”
난난은 침대에 누운 채 팔을 뻗으며 말했다.
“계란 후라이! 노른자 톡 터지는 거!”
“그거 아빠도 좋아하는 거잖아. 기다려 봐.”
장걸은 싱크대로 걸어가며 어깨 너머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난난은 침대에 엎드려 아빠의 만화 원고를 뒤적이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진짜 종이가 아니라 태블릿 화면이었지만, 아이는 그게 뭔지 알 리 없었다.
작은 주방은 침실과 이어져 있었고, 장걸이 서면 거의 꽉 차는 공간이었다. 그는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고 식빵을 토스터에 넣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는 소리가 방 안에 차분히 울렸다. 난난은 어느새 침대에서 내려와 그의 다리에 찰싹 붙었다.
“아빠, 나 오늘 뭐 해?”
“난난이 하고 싶은 거 해. 공원 갈까?”
“응! 그네 타고 싶어!”
아이는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다. 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귀여웠다.
식탁이라기보다는 작은 접이식 테이블 위에 아침이 차려졌다. 노릇노릇 구워진 식빵, 노른자가 반짝이는 계란후라이, 그리고 방울토마토 몇 알. 장걸은 우유를 데워 컵에 따랐다. 난난은 벌써 숟가락을 들고 있었지만, 혼자 먹으려는 기색은 없었다.
“아빠가 먹여 줘!”
“난난 이제 다섯 살인데 혼자 먹을 수 있잖아.”
그래도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숟가락을 그에게 내밀었다. 장걸은 웃으면서 달걀을 작게 잘라 떠서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앙~”
난난이 입을 크게 벌렸다. 작은 입술이 달걀을 받아먹었고,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오물거리는 모습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맛있어?”
“응! 아빠가 만든 게 제일 맛있어!”
장걸은 아이의 말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걸 느꼈다. 이 순간을 위해 사는 것 같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일이 드물었던 탓인지,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설고 벅찼다.
계란을 한 숟갈 더 떠주며 문득 3년 전 일이 떠올랐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6월의 저녁, 신주쿠 역 근처 골목에서였다. 어시스턴트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갓난아기가 골판지 상자 안에 버려져 있었다. 비를 맞으며 울지도 못하고 힘없이 신음만 내뱉던 작은 생명체.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경찰에 신고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젖은 옷으로 싸인 그 작은 몸을 안았을 때 느껴진 온기에 모든 생각이 멈췄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거의 충동적으로 입양 절차를 밟았다. 주변에서는 다들 미쳤다고 했다. 25세의 무명 만화가가 고아원도 아니고 길에서 주운 아기를 키운다는 게 말이 되냐는 식이었다. 부모님은 아직도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장걸은 그동안 여자와의 진지한 연애는커녕, 현실의 인간관계 자체가 어색했다. 18세 때 우연히 본 모에 계열 만화에 빠져들면서 현실 여성에게서는 어떤 흥미도 느끼지 못하게 된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2차원 속 캐릭터들의 완벽한 헌신과 사랑을 경험하고 나니, 불완전한 현실과 타협할 자신이 사라졌다. 그저 그림을 그리고, 평생 혼자 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난은 달랐다. 아이는 그런 그의 좁은 세계관을 완전히 부쉈다.
“아빠, 딸기잼 토스트에 발라줘!”
난난의 목소리가 장걸을 현실로 불러들였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웃고는 식빵에 잼을 꼼꼼히 발라주었다.
오후, 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더웠다.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난난은 노란색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장걸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걸었다. 땀이 송글송글 맺힌 난난의 손바닥이 그의 손에 착 달라붙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그네가 있는 놀이터가 보였다. 미끄럼틀과 모래밭, 시원한 나무 그늘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난난은 신이 나서 그네를 향해 달려갔지만, 곧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빠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버릇이었다. 장걸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자, 난난은 안심한 듯 다시 뛰었다.
그네에 앉힌 아이를 천천히 밀어주는데, 맞은편 벤치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 두 명이 다가왔다.
“어머, 너무 예쁘다! 몇 살이에요?”
한 여자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난난은 쑥스러운지 그네 줄을 꼭 잡고 고개를 숙였다.
“5살이에요.”
장걸이 대신 대답했다. 목소리에 미소가 배어 나왔다.
“아빠랑 정말 닮았네요. 인형 같아요.”
실제로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그 말만으로도 장걸의 가슴속이 뿌듯함으로 차올랐다. 그는 그네를 밀던 손을 잠시 멈추고 어깨를 활짝 폈다.
“감사합니다. 우리 딸, 진짜 예쁘죠.”
목소리가 조금 올라갔다. 난난이 그 말을 듣고 생긋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 미소에 세상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여자들이 가고 난 뒤, 장걸은 난난을 그네에서 내려주며 물었다.
“우리 난난, 예쁘다는 소리 들으니까 기분 좋아?”
“응. 아빠도 기분 좋아?”
“그럼, 아빠는 하늘에라도 붕 떠다닐 것 같아.”
난난이 깔깔거리며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장걸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목마를 태워주었다. 아이의 가벼운 몸무게가 어깨에 걸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석양이 길게 드리워졌다. 난난이 목말을 탄 채로 조그만 발로 아빠의 가슴팍을 톡톡 쳤다.
“아빠, 집 가면 목욕해!”
“응, 땀 많이 흘렸으니까 씻어야지.”
그 말에 문득 장걸은 욕실에서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오늘따라 그 순간이 조금 무겁게 다가왔다.
집에 도착해 욕실 문을 열자 좁은 공간 안에 습기가 차올랐다. 타일 바닥은 미끄러웠고, 작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는 동안 난난은 이미 옷을 벗고 있었다. 장걸은 물 온도를 확인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아빠, 옷 벗었어! 빨리 들어가고 싶어!”
장걸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난난의 몸은 정말로 결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백옥처럼 하얗고 투명한 피부는 물방울 하나만 스쳐도 금방이라도 붉어질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어깨는 좁고 동그랗고, 갈비뼈가 살짝 비칠 만큼 여린 체구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흘렀다. 평평한 배 밑으로, 아직 털 한올 없는 매끈하고 도톰한 음부가 드러나 있었다. 소중한 부분은 마치 복숭아처럼 분홍빛이 감돌았다. 뒤로 돌아 마주한 작은 엉덩이 사이로는 항문 역시 옅은 분홍색으로, 탄력이 느껴지는 모양새였다.
장걸은 순간 숨이 멎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아이의 발은 더욱 완벽했다. 발가락 하나하나가 작고 가지런했고, 발등은 매끈했으며 발바닥은 분홍색이 선명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발에 특별한 집착이 있었지만,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발은 처음 보았다.
고개를 홱 돌린 그는 쓸데없이 샴푸를 집어 들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건 병이야. 분명히 병이야. 그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녀는 겨우 다섯 살이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딸이었다. 어떤 더러운 상상도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몸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아빠, 안 들어와?”
난난이 욕조 안에서 두 팔을 벌리며 그를 불렀다. 천진난만한 목소리였다. 장걸은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한 뒤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빠가 이제 들어간다.”
그는 욕조 밖에 걸터앉아 먼저 샤워기로 아이의 몸을 적셨다. 따뜻한 물줄기가 난난의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샴푸를 손에 덜어 거품을 낸 뒤, 최대한 무심하게 아이의 머리를 감겼다. 난난은 눈을 질끈 감고 있었지만, 입가는 웃고 있었다. 거품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마를 가려주며 장걸은 입술을 깨물었다.
바디워시를 수세미에 묻혀 거품을 풍성하게 냈다. 이제 문제는 몸이었다. 팔과 다리는 쉽게 닦았지만, 그 중간 부분에 다다를 때마다 장걸의 움직임은 굼떴다.
“아빠, 거기 간지러워!”
난난이 배를 닦자 깔깔 웃었다. 장걸은 목이 메는 기분을 억누르며 최대한 빨리 몸을 닦아냈다. 음부 주변은 거의 닿지 않을 듯이 말듯이 스쳤다. 비누 거품 사이로 분홍빛 살결이 숨었다 드러나길 반복했다.
아이한테서는 특유의 달콤한 냄새가 났다. 비누나 향수로는 절대 낼 수 없는, 아이의 체취였다. 그는 이 냄새를 맡을 때마다 이유 없이 가슴이 저렸다. 문득 항문 쪽을 닦으려고 엉덩이를 살짝 들추자, 난난이 몸을 움찔거리며 물었다.
“아빠, 이상한 데 만지면 안 돼요? 유치원 선생님이 그랬어.”
장걸은 손을 떼고 멍하니 있다가 애써 웃었다.
“그치, 아빠가 조심할게. 하지만 아빠는 난난이 씻겨야 하니까 괜찮아. 여기는 아프면 안 되니까 깨끗이 해야 해.”
“응!”
아이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장걸은 마음속으로 안도와 동시에 강렬한 자기혐오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발을 닦을 때였다. 그는 한 손으로 아이의 작은 발을 조심스럽게 받쳐 들었다. 발바닥의 분홍빛이 거품 사이로 드러나자, 장걸은 순간 머리가 핑 도는 듯했다. 이 발이라면 평생을 바라봐도 좋을 것 같다는 위험한 생각이 스쳤다. 손끝에 느껴지는 발가락 하나하나의 말랑한 감촉. 특히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의 보드라운 골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그는 애써 괴로움을 삼키며 양말을 신기듯 양손으로 발을 감쌌다가 재빨리 놓았다. 손을 쉐이크로 떨쳐내며 아이를 물로 헹궜다.
목욕이 끝나고 보송보송한 수건으로 아이를 감싸 안았다. 난난은 수건 속에서 또박또박 말했다.
“아빠랑 목욕하니까 기분 좋아. 매일 같이 하자.”
“그래.”
장걸은 짧게 대답했다. 오늘 같은 일이 매일 반복된다면, 그는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밤이 되어 침실은 은은한 스탠드 불빛만 남았다. 작은 침대 위에 누워서 장걸은 만화 콘티를 정리하려고 태블릿을 켰지만, 곧 작은 손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빠, 오늘 나 여기서 자면 안 돼?”
난난이 제 침대로 가지 않고 그의 침대로 기어와서는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
“무서운 꿈 꿀까 봐. 아빠랑 같이 자고 싶어.”
이 아이는 매일 밤 이렇게 말했다. 장걸은 도리가 없었다.
“그래, 그럼 어서 누워 봐. 아빠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게.”
난난은 환호성을 지르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붙잡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장걸은 아이를 가볍게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아이의 몸은 여전히 목욕 후의 따뜻함이 감돌았다.
“옛날 옛적에, 아주 먼 숲속에 작은 공주님이 살았대.”
“나처럼?”
“응, 난난이처럼 예쁜 공주님이었어. 그런데 그 공주님은 너무 작아서 다른 사람들이 잘 보이지도 않았대. 그래서 항상 외로웠지.”
난난의 눈이 동그래졌다.
“에… 불쌍하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에서 별똥별이 하나 떨어졌어. 별똥별은 공주님을 보고 말했지. ‘나는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 그리고 너를 지켜줄 거야.’ 그래서 공주님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어.”
“그 별똥별은 아빠야?”
난난이 갑자기 물어 장걸은 가슴이 찡했다.
“응, 아마도 그런 것 같아.”
“그럼 나는 아빠 별똥별이야?”
“그래. 난난은 아빠한테 떨어진 아주 소중한 별이야.”
아이는 만족한 듯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장걸은 잠든 아이의 얼굴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길고 진한 속눈썹, 도톰한 볼, 앙증맞은 입술. 그의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이 작은 생명체는 모든 것을 바쳤다.
“사랑해, 아빠.”
잠결에 중얼거린 난난의 말에 장걸은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는 자신의 추악한 충동을 이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그저 이 아이의 아빠로, 곁을 지키는 존재로 남고 싶었다.
그는 난난을 더 깊숙이 품에 안았다. 그리고 어둠 속, 속삭이듯 다짐했다. 아빠가 반드시 지켜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여름밤의 공기는 여전히 후텁지근했지만, 차라리 그 온기가 다정하게 느껴졌다. 책상 위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조용히 흘렀다. 난난의 체취가 베개 사이로 은은하게 배어들며, 장걸도 서서히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