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도착했을 때, 늦여름의 저녁 바람이 살갗에 닿는 감촉이 낯설었다. 유리창 너머로 스며드는 붉은 노을이 활주로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승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출구 앞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임일은 캐리어 손잡이를 꼭 쥔 채, 무심한 눈빛으로 저 멀리 마중 나온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십 년. 영국에서 보낸 시간이 이렇게 한순간에 멀어지다니.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습하고, 묘하게 달콘한 냄새가 섞인 바람이 그의 짧은 머리칼을 살랑거리게 했다.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바쁘다며 직접 나오지 못했고, 대신 새어머니가 나오기로 했다고 했다. 전화로 짤막하게 “네 새엄마야. 소만청이라고 해.”라고만 알려줬을 뿐이다. 기대 반, 낯섦 반. 그는 목을 가다듬고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저쪽, 출구 난간 옆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진청색 원피스를 입고, 어깨에는 얇은 크림색 가디건을 걸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에는 조그만 핸드백을 들고, 왼손은 자연스럽게 난간 위에 얹은 채였다. 자세가 곧고, 시선은 차분하게 출구 쪽을 향해 있었다.
임일의 발걸음이 순간 멎었다. 그 사람일까? 심장이 조금 느리게 뛰다가, 이내 속도를 높였다. 저 사람이 정말 내 새어머니란 말인가. 광고판이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그런 우아함이 아니라, 좀 더 현실적이면서도 묘한 중력 같은 것이 그 여인에게서 느껴졌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었지만, 확실한 건 성숙한 여인의 기품이 온몸에 배어 있다는 점이었다.
소만청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젊은 남자를 알아보자마자 표정을 살짝 풀었다. 사진으로 미리 얼굴을 본 적이 있긴 했지만, 실물은 한층 더 훤칠했다. 키가 크고, 체격은 수척하지 않으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운동으로 다져진 느낌이었다. 얼굴 윤곽은 아버지를 닮아 뚜렷했지만, 눈매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닮은 듯 부드러웠다. 그 부드러움 속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건, 나중에 천천히 알게 될 사실이었다.
“임일이죠?”
소만청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마치 깊은 밤에 잔잔히 퍼지는 첼로 음색처럼. 그녀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정중한, 그러나 선을 넘지 않는 미소였다.
“네. 소만청… 어머니세요?”
임일이 대답했다. ‘어머니’라는 호칭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게 익숙지 않았다. 어색하게 굳은 입술 사이로 나온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하지만 소만청은 개의치 않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비행에 힘들었겠다. 짐은 이게 전부야?”
“네. 간단하게 챙겼어요.”
사실 캐리어 하나와 등에 멘 배낭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십 년의 시간이 눌러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낼 사이도 없이, 소만청은 몸을 돌려 앞장서 걸었다. 신발 굽이 대리석 바닥에 닿는 소리가 또각또각 규칙적이었다.
임일은 그 뒷모습을 보며 잠시 멈칫했다. 진청색 원피스가 엉덩이와 허리 라인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가디건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는 놀라울 정도로 가냘프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성숙한 여성 특유의 향이 스쳤다. 은은한 비누 향인지, 향수인지 구분되지 않는 냄새. 순간 숨을 들이켜자 폐 깊숙이 무언가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가슴께가 묘하게 저렸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둘은 나란히 섰지만, 거리는 약간 떨어져 있었다. 벽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이 낯설었다. 스물도 안 된 소년과, 기품 있는 중년 여인. 거울에 잡힌 소만청의 옆모습은 퍽 진지했다. 얇게 화장한 얼굴, 곧게 뻗은 콧날, 입술 끝에 살짝 맺힌 주름. 젊지 않은 나이인데도 피부는 투명한 듯했고, 눈가에 깃든 약간의 피곤함이 오히려 분위기를 깊게 만들었다.
임일은 그 모습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여성에게 느껴보는 미묘한 설렘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런 감정은 이상했다. 예의에 어긋난다는 걸 알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가 시선을 느꼈는지, 살짝 그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순간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피곤해 보이네. 집에 가면 좀 쉬어.”
소만청이 건조하게 말했다. 눈빛은 차분했지만, 어떤 벽이 느껴졌다. 아직은 서로를 탐색하는 수준이다. 아들이라고 부르기도, 아줌마라고 부르기에도 어정쩡한 관계. 임일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차는 예상했던 대로 조용한 세단이었다. 소만청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가죽 시트에 앉자 은은한 방향제 냄새가 났다. 창밖 풍경은 낯선 도시의 불빛으로 점점 물들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선 가로등들이 주황색 빛을 차 안으로 던졌다.
“대학 입학 준비는 다 됐니?”
소만청이 핸들을 잡은 채 물었다. 눈은 여전히 전방을 향했다.
“네. 서류는 다 제출했고, 기숙사도 신청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처음 한 학기만 집에서 통학하라고 하셨어요.”
“그래. 네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셨구나.”
소만청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녀는 임일의 아버지가 하는 결정에 일일이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다만 주어진 상황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임일은 그 말투 속에서 묘한 거리를 느꼈다.
“어머니는… 몇 살이세요?”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스스로도 무례하다고 느꼈는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니, 젊어 보이셔서요.” 소만청은 짧게 웃었다. 실소에 가까운 웃음.
“서른일곱이다.”
임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열아홉 살 차이. 예상했지만 직접 듣고 나니, 머릿속에서 뭔가 이상하게 계산되는 느낌이었다. 보통 어머니와 아들의 나이 차이. 하지만 이 여인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라는 말조차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그는 살며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유리 너머로 스치는 도시의 불빛이 리듬감 있게 반짝였다.
“꽤 많이 차이 나네요.”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을 흘리자, 소만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기어를 변속하며 조용히 속도를 높였을 뿐이다. 그러나 임일의 마음속에서는 호기심이 불쑥 자라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어떤 사람인가. 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버지와 결혼했을까. 그 질문들이 입술을 간질였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차가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이윽고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 앞에 차가 멈췄다. 이층 구조의 현대식 집이었는데, 창마다 따듯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의 취향이 반영된 듯 군더더기 없는 건물이었다.
“도착했다. 짐은 내가 도와줄게.”
소만청이 시동을 끄며 말했다. 임일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스스로 캐리어를 내리겠다고 손을 내저었다. 그런 그의 손동작을 잠시 바라보던 소만청은, 이윽고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정원의 작은 잔디밭 사이로 풀내음이 섞인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 임일은 그 바람을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이상한 긴장감을 느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버지 임종석이 마주 나왔다. 중년의 사업가다운 단정한 셔츠 차림이었고, 얼굴에는 반가움과 약간의 피곤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임일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무사히 왔구나. 멀리서 고생했다. 얼른 들어와라.”
아버지의 두터운 손길이 낯설기도, 반갑기도 했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기에, 아버지와의 사이에도 알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그래도 그는 진심으로 아들을 반기는 듯했다.
거실을 지나 식당으로 안내받자, 이미 상에는 음식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된장찌개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 갓 지은 밥의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나물 반찬들과 생선구이, 전 몇 장이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분명 소만청이 직접 준비했을 것이다. 그녀가 앞치마를 풀며 주방에서 마지막 반찬을 내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많이 먹어. 오랜만에 집 밥이지?”
소만청이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넸다. 여전히 그녀의 미소에는 따듯함이 있으면서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어떤 벽이 있었다. 임일은 자리에 앉으면서도 계속 그녀를 관찰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손짓, 수저를 나란히 놓는 세심함, 아버지에게 반찬을 권할 때의 낮은 목소리. 모든 동작이 절제되고 우아했다. 나이는 분명 자기보다 훨씬 많은데, 왜 이렇게 눈길이 계속 갈까.
“영국 생활은 어땠어? 혼자 지내느라 고생 많았겠다.”
아버지가 젓가락으로 생선 살을 발라내며 물었다. 임일은 짧게 “괜찮았어요.”라고 답하고 국을 한 숟갈 떴다. 사실 고생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지금 꺼내고 싶진 않았다.
소만청은 자신의 밥을 조금씩 뜨면서도, 두 부자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끼어들지 않았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적당한 거리 유지. 방해하지 않음. 하지만 바로 그 태도 때문에 임일은 더욱 의식하게 됐다. 밥을 먹는 동안 몇 번이고 그녀를 바라봤다.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손끝, 야채를 집을 때의 손목 각도, 이따금 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는 동작. 미세한 장면들이 뇌리에 새겨졌다.
“밥 입에 맞니? 입맛에 안 맞으면 따로 해줄까?”
소만청이 불쑥 물었다. 임일이 자꾸 자신을 쳐다보자, 그 시선을 단순히 낯선 음식에 대한 탐색으로 해석한 듯했다. 임일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주 맛있어요. 정말로.”
진심이었다. 영국에서 먹던 음식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정갈하고 깊은 맛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혀는 맛을 느끼기보다는 다른 감각에 집중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식사를 마칠 때쯤 아버지는 핸드폰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회사에서 연락이 온 모양이었다.
“미안하다. 급히 처리할 일이 생겼어. 만청 씨, 아들 방 좀 봐줘요. 나중에 내려올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소만청은 “알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 다시 임일을 향해 말했다.
“방은 이층이야. 내가 안내할게. 짐 가지고 따라와.”
임일은 캐리어를 끌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 원피스 자락이 발목께에서 살랑거렸다. 이 집은 너무 조용했다. 아버지의 서재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복도엔 두 사람의 발소리만 남았다.
방은 생각보다 넓고 깔끔했다. 햇빛이 잘 드는 창문, 책상과 침대, 벽을 따라 붙박이장이 있었다. 소만청은 문 앞에 서서 방 안을 한 번 훑어보고 말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수건은 저쪽 찬장에 있고, 이불은 얇은 것과 두꺼운 것 둘 다 준비해뒀어.”
“감사합니다, 어머니.”
임일은 의식적으로 존칭을 붙였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자 또다시 묘한 불편함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소만청은 그 말에 아주 작게 고개를 까딱였을 뿐,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아주었다.
혼자 남은 방 안, 임일은 침대에 걸터앉아 가방을 내려놓았다. 공항에서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창밖의 저녁 바람이 커튼을 살랑이게 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소만청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의 목소리, 손짓, 그리고 그가 낯설어할 거라 여기고 일부러 거리를 두는 듯한 조심스러운 태도까지.
가슴속에서 묘하게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호기심과 설렘, 그리고 금지된 것에 대한 아득한 긴장감. 그는 입술을 깨물며 그 감정을 외면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선 무언가 싹트고 있었다. 열아홉 살 차이.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 것 같았다.
거실에서는 소만청이 식탁을 정리하는 작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평화로운 소리가, 오히려 임일의 마음을 불안하게 흔들어 놓았다. 저녁 바람이 다시 한 번 창밖을 스치며, 긴 밤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