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부엌 창문을 통해 느릿하게 스며든다. 임아는 조용히 개수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물소리만이 공간을 메우는 고요한 아침, 그녀의 손놀림은 느리고 정확했다. 접시 하나하나를 닦아내며 그녀는 귀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방 안쪽에서 들려오는 작은 인기척, 이부자리에서 몸을 뒤척이는 소리, 그리고 곧 마루를 밟는 발소리.
임아의 손이 잠시 멈췄다. 가슴이 미세하게 뛰었다. 그녀는 재빨리 마른 행주로 손을 닦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어젯밤 진헌이 무심코 던진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일 아침에는 시원한 나물 좀 먹고 싶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시금치와 두부를 꺼내 조리대에 올렸다. 그때 거실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짧은 한마디. 임아는 허리를 곧게 펴고 뒤를 돌아보았다. 진헌이 교복 바람으로 문간에 서 있었다. 아직 세수도 하지 않은 모습, 잠옷을 벗어 던지고 걸친 흰 티셔츠와 교복 바지. 그의 눈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게슴츠레했지만, 그 아래에는 이제 익숙해진 어떤 무게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 몇 주 동안, 그 눈빛은 조금씩 변해왔다. 순진무구한 소년의 빛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어둡고 집요한 불씨가 차지한 듯했다.
“밥 거의 다 됐어, 진헌아. 세수하고 와.”
임아가 부드럽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낮의 목소리, 낮의 미소. 진헌은 잠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없이 화장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가 등을 보이는 순간, 임아는 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어느새 그녀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침 식탁은 평화로웠다. 아니, 평화로워 보였다. 밥과 국, 두부조림, 시금치 무침이 정갈하게 차려진 자리. 둘은 마주 앉아 젓가락을 움직였다. 진헌은 말없이 반찬을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그의 시선은 음식을 오가다가, 결국 임아의 손으로 향했다. 그녀가 수저를 쥔 손, 손목 안쪽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붉은 자국.
“소금이 좀 부족한데.”
진헌이 불쑥 말했다. 임아는 젓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래? 많이 싱거워?”
“많이. 엄마 요즘 요리에 집중을 안 하는 것 같아.”
그 말투는 나무라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시험하는 듯한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아들에게 지적을 받는 어머니의 모습. 하지만 임아는 그 밑에 깔린 다른 의미를 읽어냈다. 이것은 단순한 잔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시험이다. 그녀의 복종을, 그녀의 주의 깊음을 시험하는.
“미안해, 진헌아. 내일부턴 신경 쓸게.”
임아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진헌은 대답 없이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공기만 밥을 비우는 소리가 식탁 위를 떠돌았다. 임아는 숟가락을 든 채, 밥알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천천히 입에 넣었다. 속으로는 생각했다. 저 아이가 지금 내게 명령하고 있어. 저 나무람이, 저 눈빛이, 전부 다.
식사가 끝나고, 임아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진헌은 거울 앞에 서서 교복을 매만졌다. 티셔츠 깃을 바로 하고, 바지 주름을 펴고, 겉모습은 완벽한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저 깊은 곳에 도사린 검은 그림자를 그는 스스로도 또렷이 인지하고 있었다.
현관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진헌의 곁으로 임아가 다가갔다. 그녀의 손에는 구두주걱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현관 바닥에 앉았다. 정확히는 무릎을 꿇었다. 진헌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스치는 미세한 떨림. 만족감, 권력감, 그리고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잔여의 죄의식이 한데 뒤섞인 표정.
“발.”
진헌이 짧게 명령했다. 그 목소리는 이미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임아는 마룻바닥에 두 손을 가지런히 짚고, 상체를 숙였다. 그녀의 시선이 진헌의 발로 향한다. 검은 양말에 감싸인 발. 그녀는 손을 뻗어 그 발을 조심스럽게 받쳐 들었다. 진헌이 신발장에서 꺼낸 구두를 그녀가 공손히 받아, 그의 발에 천천히 신긴다. 손가락이 양말 위로 스치자, 진헌의 발가락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임아는 고개를 숙인 채,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느꼈다.
다른 쪽 발도 같은 의식이 진행되었다. 임아의 손길은 지극히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웠다. 마치 깨지기 쉬운 성물을 다루는 것처럼. 구두가 완전히 발에 밀착되자, 그녀는 손을 내리고 그대로 엎드린 자세를 유지했다.
“잘 다녀와, 진헌아.”
목소리만은 평온했다. 하지만 그 엎드린 자세, 그리고 바닥에 닿은 이마는 분명한 복종의 언어였다. 진헌은 잠시 그대로 서서, 발아래 엎드린 어머니의 뒷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호흡이 약간 빨라졌다. 그는 한 번 더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구두, 그 위로 흘러내리는 어머니의 긴 머리카락.
“...다녀올게.”
결국 그렇게 짧게 답하고, 진헌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임아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 미소는 아침 식탁에서 보여준 엄마의 미소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깊은 곳에서 배어 나오는 환희에 가까웠다. 그녀는 손을 들어 방금 전 진헌의 발이 닿아 있던 손바닥을 살며시 입술에 가져다 댔다.
***
학교는 시끄러웠다. 복도에는 학생들이 몰려다니고, 교실 안에서는 웃음소리와 잡담이 끊이지 않았다. 진헌은 자기 자리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체육 시간이 끝난 뒤의 나른함이 교실을 감싸고 있었다. 앞자리에 앉은 민혁이 몸을 돌려 진헌에게 말을 걸었다.
“야, 진헌아. 주말에 피시방 갈래? 요즘 새로 나온 겜 있는데 대박이래.”
진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마치 깊은 물속에서 천천히 수면으로 올라오는 듯한 느낌. 그는 민혁의 얼굴을 초점 없이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주말? 나 좀 바빠.”
“뭐가 그렇게 바빠? 요즘 부쩍 약속도 없고 그러더라.”
민혁이 특별한 뜻 없이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진헌의 뇌리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 스쳤다. 어두운 거실, 바닥에 무릎 꿇은 임아, 그의 손에 감긴 붉은 밧줄. 진헌은 눈을 깜빡이며 미소를 지었다.
“집에... 할 일이 좀 많아서.”
“할 일? 학원 가는 것도 아니고? 야, 니네 엄마는 되게 자상하시던데, 너 혼자 집안일 다하냐? 말도 안 돼.”
민혁이 키득거리며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진헌은 그 뒷모습을 잠시 응시했다. 자상한 엄마. 그렇지, 저 친구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진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자상함이란 얼마나 얇은 막에 불과한지. 그 막 아래에는 저토록 깊고 어두운 심연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수업 종이 울렸다. 국어 교사가 교과서를 펼치며 무언가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진헌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교과서 구석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습관처럼 끄적이고 있었다. 선, 곡선, 그것들이 교차하고 엮이는 형태. 한참을 그리다 보니, 그것이 밧줄의 매듭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헌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그 낙서를 검은 펜으로 칠해 지워버렸다.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다. 두려움? 흥분?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
낮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진헌이 나간 뒤, 임아는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평범한 가사 노동과는 결이 달랐다. 그녀는 진공청소기를 밀면서도 무릎을 꿇고 바닥을 닦으며,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소파 밑, 장롱 아래, 먼지가 끼기 쉬운 구석구석을 손가락으로 훑어가며 닦아냈다. 진헌이 좋아하는 청결함. 그가 언젠가 한 번, 아무렇게나 흘린 말. “집은 바닥부터 반질반질해야 발로 밟고 다니기 좋아.” 그 한마디가 그녀에겐 금과옥조가 되었다.
옷차림마저 신경 썼다. 집 안에 혼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아는 편한 면바지를 입지 않았다. 그녀는 무릎까지 오는 단정한 스커트를 입고, 다리에는 진한 살구색 스타킹을 신었다. 허벅지 부분의 스타킹이 약간 비틀려 올라가면, 거울 앞에 서서 몇 번이고 바로잡아 펴곤 했다. 모든 것은, ‘그’가 돌아왔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청소를 마친 임아는 소파에 조용히 앉았다. 거실은 이제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계 초침 소리만이 째깍째깍 공간을 가르고 있었다. 임아는 손목을 들어 올려, 지난밤 묶였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자국은 아직도 선명했다. 길게 이어진 붉은 선과, 곳곳에 맺힌 핏발. 그녀는 그 자국을 살며시 손가락으로 쓸어 내렸다. 눌러보았다. 거기서 느껴지는 은은한 통증. 그녀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새어나왔다.
“아아...”
신음에 가까운 탄성. 그 통증은 그녀에게 더없는 평화를 주었다. 사회로부터, 의무로부터, ‘임아’라는 가면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유일한 순간. 진헌의 손이 자신을 구속할 때, 그녀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지 소유되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토록 갈망하던 사랑의 형태였다.
그녀는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곧 밤이 올 것이다. 해가 지고, 저 문이 열리면, 다시금 이 지루한 낮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낮의 그들은 모자(母子)였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녀는 이름조차 사라진 채, 진헌 앞에 무릎 꿇는 한 마리의 암캐가 될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그녀의 아랫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
저녁이 되었다. 현관문이 딸깍 열리는 소리가 나자, 임아는 이미 현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두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 문이 열리고 진헌의 발이 들어왔다. 그는 신발을 벗기 전에,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다녀왔습니다.”
임아의 목소리가 낮고 조용히 공간에 퍼졌다. 밤의 인사법이었다.
진헌은 말없이 신발을 벗었다. 임아는 곧바로 그의 발이 신발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 그리고 다시, 아침과 똑같은 의식처럼, 그의 실내용 슬리퍼를 공손히 내밀었다. 진헌은 아무 말 않고 슬리퍼에 발을 찔러 넣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주인으로서의 확신이 그곳에 있었다.
저녁 식사는 또 한 번의 시험대 같았다. 오늘 저녁은 임아가 더욱 정성을 들였다. 진헌이 아침에 지적했던 나물의 간을 완벽하게 맞추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의 생선구이도 올렸다. 진헌은 한 점 집어 먹고, 만족스러운 듯 눈썹을 살짝 움직였다.
“오늘은 괜찮네.”
“고마워.”
임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진헌은 그녀의 기쁨을 눈여겨보았다. 칭찬 한마디에 이렇게 밝아지는 얼굴. 이것이 바로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지옥의 낙원이라는 것을,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식후, 진헌은 거실 소파에 앉았다. 티비도 켜지 않은 어두운 거실. 스탠드 불빛만이 한쪽 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임아는 부엌을 정리한 뒤 조용히 다가와, 소파 옆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았다.
“진헌아, 오늘은...”
임아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진헌이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오늘의 태도 점수는 좀 낮았어. 아침에 나갈 때, 구두 신겨주면서 내 양말이 살짝 당겨진 거, 알지?”
진헌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말투는 뼈 속까지 스며드는 냉기가 있었다. 임아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이미 눈치챘다. 아침에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는 눈치챘다. 자신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서, 양말 주름을 완벽하게 펴지 못했다는 것을.
“죄송합니다... 주인님.”
임아가 바닥에 이마를 조아렸다. 진헌은 느릿하게 일어나, 어느덧 거실 한켠에 고이 모셔둔 긴 솜줄을 집어 들었다. 그가 밧줄을 쥔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는다. 노련한 솜씨로, 그는 밧줄의 한쪽 끝을 임아의 손목에 감았다.
“옷을 걷어.”
진헌의 명령에, 임아는 상의를 겉에서부터 하나하나 벗어냈다. 그녀의 팔뚝과 어깨, 등이 차례로 드러났다. 진헌은 그 드러난 살갗 위로 줄을 올렸다. 이제 그에겐 이것이 하나의 예술 행위와 같았다. 밧줄이 살을 파고드는 각도, 압박의 강도, 흘러가는 선의 아름다움. 하나하나를 계산하며, 그는 임아의 상체를 정교하게 묶어나갔다.
줄이 가슴골을 조이고, 어깨를 뒤로 젖히게 했다. 임아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눈동자에는 물기가 고였다.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아지랑이가 그녀의 눈을 뒤덮었다. 진헌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두 손목을 등 뒤로 묶고, 남은 줄을 목 뒤로 넘겨 단단히 고정했다. 완벽한 구속. 임아는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괜찮아?”
진헌이 그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괘, 괜찮아... 더... 해줘...”
임아가 숨 넘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진헌은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혀로 핥아올렸다. 짭조름한 맛.
“사랑해, 엄마.”
그의 속삭임은 부드럽고도 끈적거렸다. 임아의 가슴 속에서 뭉클한 무엇이 폭발했다. 이 말, 이 한마디가 그녀를 완전히 산산조각내고 다시 붙였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일그러져 진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나도 사랑해... 진헌아...”
임아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이제 영원히 네 거야. 누구의 것도 아닌, 오로지 네 거야. 이 밧줄은 끊을 수 없는 운명의 끈이고, 이 아픔은 우리가 나누는 유일한 사랑의 언어라고.
진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품 안에서 작은 열쇠 하나를 꺼내 든 척, 그녀의 머리 위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완전한 소유의 순간이었다. 밤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들의 일그러진 일상은, 오늘도 아무런 방해 없이 제자리를 향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굴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