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백단향과 함께 희미하게 감도는 비릿한 단내. 고혜 선생님의 집 특유의 냄새였다.
주몽룡은 손에 든 와인 병을 고쳐 쥐며 거실로 들어섰다. 불 꺼진 거실 한가운데 촛불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벌써 정성스럽게 차려진 요리들이 한가득이었다. 그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왔니."
고혜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나른했다. 그녀는 검은색 실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브이넥 깊게 파인 옷이 그녀의 하얀 가슴 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선생님, 와인 사왔어요."
주몽룡이 와인을 내밀자 고혜는 고개를 내저었다.
"술은 됐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그때 식탁 다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부소죽이었다. 그녀는 교복 차림 그대로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린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고, 어딘가 모르게 긴장한 듯 어깨가 굳어 있었다. 촛불에 비친 그녀의 뺨은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소죽이도 와 있었네."
주몽룡이 웃으며 말을 건네자 부소죽은 고개를 푹 숙였다. 교실에서와 똑같은 순종적인 자세였다. 하지만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그녀의 눈빛 속에 감춰진 반항기가 전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고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몸짓은 마치 느린 춤을 추는 듯 우아했다. 식탁을 한 바퀴 돌아 주몽룡의 바로 앞에 선 그녀는 느닷없이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배 위에 얹었다.
"선생님은 이제 지쳤어."
고혜의 목소리가 공기처럼 가볍게 흩어졌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쳐 있었지. 매일 아침 눈 뜨는 것조차 고역이었어."
주몽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배 위에 얹힌 손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만을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그냥 사라지기엔 뭔가 허전하더라. 그래서 생각했어. 마지막엔 뭔가 특별한 걸 남기고 싶다고."
고혜의 눈이 촛불을 받아 반짝였다. 그녀는 뒤돌아 부소죽을 바라보았다. 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붉어진 귓불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오늘이 소죽이 생일이란다."
고혜의 말에 주몽룡의 눈이 살짝 커졌다.
"생일 축하해, 소죽아."
그의 말에 부소죽이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과 마주친 주몽룡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듯한 복잡한 감정이 그 눈 속에 담겨 있었다.
고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밤, 우리 엄마와 딸을 생일 선물로 네게 주마."
주몽룡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고혜는 그런 그를 보며 살짝 웃었다.
"무서워하지 마.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야. 그리고..."
그녀가 주몽룡에게 바짝 다가서며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네 요리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난 잘 알고 있잖아. 그동안 얼마나 많이 네 요리를 맛보게 해줬는데."
고혜의 손가락이 주몽룡의 가슴에서 천천히 내려와 그의 손등을 스쳤다.
"오늘 밤만큼은 네가 요리사가 되어줘. 그리고 이 늙은 선생님을 어떻게 요리할지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네게 맡길게."
주몽룡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만이 깊어지고 있었다.
고혜가 뒤를 돌아보며 부소죽을 가리켰다.
"그리고 덤으로 이 고깃덩어리 딸도 한 상 가득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줘."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촛농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부소죽은 이제 완전히 얼굴까지 시뻘게져서 숨소리조차 가쁘게 내뱉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무릎 위에서 옷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소죽아."
고혜가 딸에게로 다가가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부소죽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에 그녀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네가 주몽룡 선배를 얼마나 동경하는지 엄마는 다 알고 있어. 수업 시간마다 몰래 훔쳐보는 것도, 꿈속에서 그를 만나는 것도 다 알고 있다고."
부소죽의 숨이 턱 막혔다. 어머니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그 비밀이 마침내 현실이 될 거라는 기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자, 이제 인사해라. 네 생일 선물을 받아야지."
고혜가 딸의 어깨를 밀어 주몽룡 앞으로 보냈다. 부소죽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다가서다가 그의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녀의 키는 주몽룡의 가슴께에 닿았다. 고개를 들자 촛불을 등진 그의 얼굴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정말 괜찮은 거니?"
주몽룡이 부소죽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여느 때처럼 상대방을 배려하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부소죽은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네... 주몽룡 선배님."
그녀의 대답은 거의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였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빛만큼은 단호하게 빛나고 있었다.
고혜가 웃으며 박수를 쳤다.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좋아. 그럼 이제... 네 차례다."
그녀가 주몽룡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자신의 허리 뒤로 이끌었다. 지퍼가 천천히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원피스가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촛불 아래 드러난 그녀의 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이는 들었지만 관리된 몸매가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내 요리는 네가 알아서 해. 하지만 한 가지만 부탁할게."
고혜의 눈에 일순간 깊은 허기가 스쳤다.
"내가 가기 전에... 극락의 절정을 꼭 한번 제대로 느끼게 해다오."
부소죽이 그 광경을 보며 숨을 삼켰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순종적이지 않았다. 어머니를 향한 질투 섞인 반항과, 주몽룡을 향한 갈망이 선명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방 안의 분위기는 점점 더 애매하고 기묘해졌다. 촛불 그림자가 벽에 드리워져 꿈틀댔다. 세 사람의 들숨과 날숨이 서로 얽히며 이상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주몽룡은 천천히 손을 들어 고혜의 벗은 어깨를 쓰다듬었다. 요리사가 재료를 만지듯 세심하게. 그의 눈은 이미 그녀의 몸을 훑으며 어떻게 요리할지 구상하고 있었다.
코끝을 스치는 백단향과 독특한 단내가 더욱 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