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공기가 평소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회색 파티션을 비추고, 키보드 소리와 전화벨이 뒤섞여 흘러내리는 오후, 유리문이 열리며 부서장이 먼저 들어섰다. 그 뒤를 따르는 여자의 실루엣이 순간 사무실 전체의 숨을 멎게 했다.
“오늘부터 우리 팀에서 함께 일할 유염 씨입니다. 다들 반갑게 맞아주세요.”
부서장의 짧은 소개가 끝나자, 유염이 고개를 숙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검은 생머리가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하얀 블라우스에 무릎 위까지 오는 타이트 스커트가 몸매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특히나 스타킹에 싸인 그녀의 종아리는 사무실 형광등 아래서 은은하게 빛났다. 남자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꽂혔다. 누군가는 손에 쥔 커피잔을 내려놓는 것조차 잊었다.
송우는 파티션 너머로 그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유염의 몸을 천천히 훑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해부도라도 보듯 그의 시선은 차갑고 정밀했다.
‘가녀린 뼈대에 잘 발달된 대퇴부 근육. 저 정도면 살코기가 제법 씹는 맛이 있겠군. 어깨 라인도 부드럽고, 스타킹을 벗기면 아마 희고 매끄러운 피부가 드러나겠지.’
송우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는 유염이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그의 시선은 특히 그녀가 의자에 앉을 때 살짝 눌리는 엉덩이 곡선에 집중되었다.
‘저걸 손질하려면 어떤 칼이 좋을까. 얇은 날로 피하분리를 먼저 하고, 관절은 작은 도끼로….’
유염은 마치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수줍은 미소를 띠며 옆자리 동료에게 업무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차분했다. 간혹 고개를 기울이며 듣는 모습은 순수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송우 쪽을 스쳤다. 마주친 그의 눈빛 속에는 단순한 관심 이상의 무언가가 불타고 있었다. 유염은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볼을 살짝 붉혔다. 마치 부끄러움을 타는 신입사원처럼.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묘한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눈빛… 드디어 나를 알아본 건가. 나를 진짜 가축으로 봐주는 사람이 나타난 거야.’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업무가 시작되었다. 커피를 마시려 휴게실로 향하는 유염의 뒷모습을 송우는 놓치지 않았다. 그가 일어서서 그녀를 따라 휴게실로 들어갔다.
“신입이세요? 커피는 이쪽에 있어요.”
송우가 먼저 친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유염이 놀란 듯 돌아보며 살짝 웃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눈동자는 더욱 깊고 투명했다.
“아, 감사합니다. 송우 선배님이시죠? 명함에서 이름 봤어요.”
그녀의 손가락이 커피 머신 버튼을 누르며 살짝 떨렸다. 송우는 그 떨림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단순한 긴장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유염 옆으로 다가가 자신의 머그컵을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떨고 있네요. 혹시… 무서운 거라도 있는 건가요?”
유염의 손이 순간 멈췄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송우를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 속에는 두려움과 동시에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애써 밝게 웃었다.
“아니에요, 낯가림이 좀 심해서… 빨리 적응할게요.”
그녀는 커피를 들고 재빨리 휴게실을 나갔다. 하지만 출구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송우가 자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송우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재미있군. 저 순한 얼굴 뒤에 뭐가 숨어 있는지 벗겨내고 싶어져.”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조련은 이미 머릿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일주일 안에 신뢰를 쌓고, 2주차부터 서서히 길들인다. 말투와 행동을 교정시키고, 사적인 공간으로 유도해 점차 육체적 경계를 허물게 만든다. 그리고 4주차에는….’
계획은 구체적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몇 번의 사냥감을 완벽하게 조련해 왔다. 그때마다 상대는 자신이 가축으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그 과정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오후 업무가 끝날 무렵, 송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 너머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때 유리창에 비친 유염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도 이미 송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창 속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교차했다.
유염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며시 입술을 깨물며,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오른손 검지가 자신의 허벅지 위에서 천천히 원을 그리며 스타킹 위를 스치는 작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송우는 유리창 속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교묘하군. 이미 알아채고 있다는 신호인가, 아니면 유혹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결국 저 살덩어리는 내 식탁에 오를 테니까.’
송우가 뒤돌아서자 유염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그녀는 동료들에게 상냥하게 인사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타이트한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허벅지 라인이 마지막까지 송우의 시선을 붙잡았다.
“내일 뵙겠습니다, 선배님.”
문을 나서기 직전, 유염이 살짝 고개를 돌려 작게 속삭였다. 그 말은 분명 송우를 향한 것이었다. 문이 닫히고, 사무실에는 잔잔한 발걸음 소리만 남았다.
송우는 의자에 깊숙이 앉아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신체가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칼끝이 스타킹을 찢고 들어가는 상상을 하자, 손가락 끝이 짜릿하게 저려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한 페이지를 넘겼다.
수첩에는 여러 여성들의 이름과 특징, 진행 상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그는 볼펜으로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갔다.
‘유염. 25세 추정. 신체 등급 A. 순종적 성향. 조련 난이도 하. 최종 목표: 완전한 고깃짐승으로 사육 후 도살. 기한: 30일.’
그는 수첩을 덮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사무실 불빛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어둑해진 공간에서 송우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길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유염이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저녁 바람에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스타킹을 신은 그녀의 다리는 가로등 불빛에 비쳐 더욱 탐스럽게 보였다.
그때 유염이 고개를 들어 사무실이 있는 건물 쪽을 올려다보았다. 정확히 송우가 서 있는 창문을 응시하는 듯했다. 거리는 멀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전류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염은 이내 고개를 숙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생각했다.
‘송우 씨... 당신이라면 나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왔어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가축으로 몰아줄 사람을.’
바람이 그녀의 치마 끝을 살짝 들췄다. 그녀는 한 손으로 치마를 누르며 빠른 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무실에 홀로 남은 송우는 그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입술 사이로 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도망치지 않는 녀석은 오랜만이군. 기대된다, 유염 씨.”
밤이 깊어지고 사무실은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송우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날을 위한 시뮬레이션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냥감은 스스로 다가왔고, 사냥꾼은 미소 지으며 그 발걸음을 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