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플라스틱화 미스터리

站点:NovelAI.one内容:前8章在线试读ID:815c6c87更新:2026-07-28 16:14
운동화 바닥이 매트에 닿는 둔탁한 리듬이 헬스클럽 내부를 가득 채웠다. 철제 중량판이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신스팝. 거울 벽 앞에서 덤벨을 들던 아길이 옆구리에 힘을 주며 이두근을 조였다. 땀에 젖은 근육이 형광등 아래 번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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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약속

운동화 바닥이 매트에 닿는 둔탁한 리듬이 헬스클럽 내부를 가득 채웠다. 철제 중량판이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신스팝. 거울 벽 앞에서 덤벨을 들던 아길이 옆구리에 힘을 주며 이두근을 조였다. 땀에 젖은 근육이 형광등 아래 번들거렸다.

소운은 프론트 데스크에 엉덩이를 걸친 채였다. 한 손은 카운터 위 커피잔 가장자리를 만지작거렸고, 다른 손은 귀에 휴대폰을 대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백자 색상의 커피잔 테두리를 스치듯 미끄러졌다. 표정은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

"네, 전신 플라스티네이션으로 진행해주세요. 머리 부분만 따로 처리하시고요."

소운의 목소리는 마치 점심 메뉴를 고르듯 담담했다.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소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시신 사전 정리 작업도 해주셔야 해요. 제모, 장 세척, 위 세척까지."

수화기 속 목소리가 무언가 질문했다. 소운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네, 처형은 저희 쪽 사람이 직접 할 거예요. 참수로 진행할 예정인데, 플라스틱화하실 때 경동맥과 경추 절단면 처리는 특별히 신경 써주셨으면 해요."

아길이 덤벨을 내려놓았다. 금속이 고무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가 땀을 닦으며 프론트 데스크 쪽으로 걸어왔다. 소운이 전화를 계속했다.

"관절 부위는 굴곡이 살아 있게 해주세요. 특히 손가락 마디. 네, 고정액 처리할 때 주의해주시고요. 실리콘 함침은 표준 프로토콜대로. 납기는 모레까지면 충분해요."

소운이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아길이 수건으로 뒷목을 문지르며 다가왔다.

"방금 통화 내용이 뭐야? 모델 제작? 누드 모델?"

아길의 눈빛에 호기심이 반짝였다. 그는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소운의 옆얼굴을 살폈다.

"곧 완성돼요. 늦어도 모레까지는 납품 가능합니다."

소운이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아길의 시선이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 이어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목으로 옮겨갔다.

"근데 왜 자꾸 누드 모델 타령이야? 그것도 네가 모델로 나온다는 거 아니었어?"

아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시선이 소운의 탱크톱 위로 드러난 쇄골 라인을 훑었다.

"걱정 마요. 기대하셔도 좋으니까."

소운이 싱긋 웃으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프론트 데스크에서 몸을 일으켜 탈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소몽아, 저거 언제쯤 완성된대?"

아길이 카운터 안쪽에서 수건을 개고 있던 소몽에게 물었다. 소몽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 회원님 오늘 레그프레스 3세트 남으셨어요."

소몽은 순진한 얼굴로 출석부를 넘기며 말했다. 아길은 혀를 차고 다시 중량 구역으로 돌아갔다.

소운은 탈의실 문을 닫고 잠금쇠를 걸었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벽면 거울이 그녀의 전신을 담아냈다.

그녀는 천천히 탱크톱을 벗었다. 옷감이 피부를 스치며 바스락거렸다. 이어 레깅스를 발끝까지 내렸다. 마지막 속옷까지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거울 속, 완벽한 나체가 서 있었다.

소운은 거울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형광등 불빛이 쇄골에서 시작해 가슴 골짜기로 흘러내렸고, 복부의 얕은 골을 따라 배꼽 주변으로 번졌다. 그녀의 피부는 오랜 관리를 통해 균일한 톤을 유지하고 있었다. 허벅지 안쪽까지 고르게 이어진 매끈한 라인.

그녀가 왼손을 들어 쇄골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뜨렸다. 손가락이 가슴 가장자리를 스치고 겨드랑이 밑으로 진입했다. 차가운 손끝이 갈비뼈 위 얇은 피부를 훑으며 복부로 내려갔다.

소운의 숨결이 약간 깊어졌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배꼽 주변을 빙빙 돌렸다. 거기엔 솜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레이저 제모를 여러 차례 받으면서 모든 체모를 완벽하게 제거한 상태였다.

손바닥이 더 아래로 이동했다. 치골 위로 손바닥이 얹혔다. 불룩 솟은 음부 둔덕은 어떠한 거친 촉감도 없이 부드러운 피부만이 손바닥을 채웠다. 소운은 손가락 사이로 그 완만한 능선을 가볍게 주물렀다. 거기엔 그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소운의 눈빛이 거울 속 자신으로부터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 바로 이 몸뚱이가 아크릴 진열장 안에 놓이는 장면이 펼쳐진다.

투명한 케이스. 무채색의 조명이 위에서 직하한다. 그녀의 나체가 관절이 살아 있는 상태로 고정되어, 손끝까지 자연스러운 굴곡을 유지한 채, 마치 살아서 호흡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관람객들의 시선. 억압된 숨소리. 누군가의 동공이 팽창하는 순간. 모든 것이 적막 속에서 영원히 멈춘다.

소운은 손을 거둬들이고 거울 앞에서 몸을 돌려 자신의 등을 살폈다. 척추 라인이 엉덩이 갈라지는 지점으로 매끈하게 연결되었다.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1년 전이었지."

수도에서 최초의 플라스티네이션 미인이 전시회를 열었을 때였다. 그것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었다. 전신 피부를 벗겨낸 인체가 근육 결대로 섬세하게 고정된 채,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마치 현대 무용수의 정지 상태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관람객 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티켓은 암표로 거래되었고, 미디어는 연일 그 전시를 다루었다.

그리고 지방 클럽들은 죽기 시작했다.

소운의 헬스클럽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회원들은 이탈했고, 신규 등록은 끊겼다. 사람들은 피트니스가 아니라, 완벽하게 고정된 근육의 미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결심했어."

소운은 다시 거울을 정면으로 마주보며 섰다. 그녀의 눈동자가 형광등 아래서 축축하게 반짝였다.

"내 몸으로 누드 모델을 만들자고."

손끝이 다시 한 번 자신의 복부를 살짝 긁듯 스쳤다. 플라스틱화가 완료된 이후의 자기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근육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고정되고, 지방층은 제거되며, 실리콘 함침을 거쳐 영원히 썩지 않는 조각상으로 다시 태어나는 자신.

이미 노사부에게 견적과 프로토콜을 전달했다. 두개골 절개 방식, 뇌수 제거 절차, 경동맥과 추골동맥의 바인딩 방식. 사전 장세척과 위세척은 클리닉에서 예약까지 마쳤다.

소운은 탈의실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숨이 약간 가빠졌다. 흥분이었다.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대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칼을 쥐었을 때의 떨림, 자신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들이킬 숨, 참수 직전에 마주할 그의 눈빛까지.

그녀가 손을 내렸을 때, 거울 속 얼굴은 평온했다.

잠시 후, 소운은 옷을 챙겨 입었다. 몸을 감싸는 면직물의 촉감이 오늘따라 더없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탈의실 불을 끄고 복도로 나왔다.

헬스클럽 안에는 여전히 아길이 덤벨을 들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그의 눈이 복도를 지나는 소운의 실루엣을 쫓았다. 소운은 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프론트 데스크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모레 날짜가 캘린더에 크게 표시되어 있었다.

지하실 약속

계단은 좁고 가팔랐다. 탈의실 뒤편, 직원용 수건 보관함 너머로 숨겨진 작은 철문을 열자 습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들었다. 소운은 맨발로 차가운 콘크리트 계단을 한 걸음씩 밟아 내려갔다. 형광등 불빛이 깜빡이며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침묵을 깨고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수도관이 녹슨 채로 달려 있었고, 공기 중에는 표백제와 쇠 냄새가 뒤섞여 맴돌았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공간이 넓게 트였다. 지하실은 생각보다 넓었고, 천장은 낮았으며 바닥은 거친 시멘트였다. 한쪽 벽에는 공구들이 정리되어 걸려 있었고, 중앙에는 커다란 나무 토막이 놓여 있었다. 토막은 짙은 갈색으로 오랜 세월 핏물을 머금은 듯 표면이 매끄럽게 닳아 있었다. 그 옆에는 반월 모양의 도끼가 스탠드에 걸려 있었고, 칼날은 형광등 아래서 싸늘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대군이 서 있었다.

그는 상의를 벗은 채였다. 단단한 어깨와 굵은 팔뚝, 복부에 새겨진 선명한 근육의 결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청바지만 걸친 그의 모습은 마치 어떤 의식을 준비하는 고대의 사제 같았다. 손에는 검은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고, 발밑에는 흰색 방수포가 깔려 있었다. 소운이 다가서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기 중에서 부딪혔다.

“왔어.”

대군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마치 수많은 밤을 지새운 사람처럼 약간 쉰 듯했지만,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는 걸어 나와 소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쁘지.”

소운은 그의 품에 안겨 살며시 웃었다. 대군의 체온이 차가운 지하실 공기 속에서 유일한 온기였다. 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쓸었다. 거친 수염이 손바닥에 닿았다.

“원래 예뻤어.”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진지했다. 대군의 시선이 소운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깊고 또렷한 눈매, 작은 콧날, 붉은 입술. 그는 마치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운은 발돋움하여 대군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짧지만 따뜻한 입맞춤이었다. 대군은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더욱 세게 안았다. 소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사랑해.”

대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손이 소운의 등허리를 천천히 쓸었다. 그녀의 피부는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잠시 후, 그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도.”

그리고 침묵. 둘만 아는 비밀, 둘만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소운은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대군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때 대군의 시선이 나무 토막과 도끼로 옮겨갔다. 그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망설임, 고통, 그리고 체념. 그가 입을 열었다.

“이 도끼랑 나무 토막….”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대군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이내 낮은 목소리로 계속했다.

“지금까지 열 명 넘는 여자들을 여기서 처형했어.”

소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알았다. 이전에도 여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그녀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같은 말을 들었을 그들을. 싸늘한 오한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지만, 그녀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열 명? 나는 서른 명쯤 되는 줄 알았는데.”

가벼운 농담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높았지만, 결코 떨리지 않았다. 대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잠시 놀라움과 감탄이 뒤섞여 스쳤다. 소운은 시선을 내리깔며 나무 토막의 결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매끄럽고 차가웠다.

“다들 예뻤어?”

그녀의 물음에 대군은 여전히 침묵으로 답했다. 그의 시선은 소운의 손가락 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소운은 고개를 들고 다시 한 번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더 진실하고, 더 환한 미소였다.

“괜찮아. 나는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그녀는 손가락에서 나무 토막을 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는 갑자기 생각난 듯 손을 탁 쳤다.

“아, 맞다. 플라스티네이션 회사에 이미 연락했어.”

대군의 몸이 미세하게 긴장했다. 소운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이어 말했다.

“20분 후에 물건 가지러 온대.”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20분.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이 끝나야 했다. 소운은 대군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재촉했다.

“그러니까 얼른 해.”

대군의 손이 도끼 자루를 움켜쥐었다. 힘줄이 불거지고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소운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더욱 부드럽게,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듯.

“사형 전 위로… 그런 거 할 시간 없어.”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나는 준비됐으니까.”

그녀의 시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대군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지하실의 습한 공기가 그의 폐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그가 천천히 도끼를 들었다. 반월의 칼날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한 줄기 섬광을 발했다.

소운은 나무 토막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이며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 넘겼다. 목덜미가 드러나자 공기가 서늘하게 피부에 닿았다. 그녀는 나무의 결을 양손으로 짚으며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눈앞에는 지하실의 회색 벽뿐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영원이다.

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희미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참수를 기다리며

나무 토막은 거칠고 투박했지만, 소운의 목을 받치기 위해 깎아낸 초승달 모양의 홈은 정교했다.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여, 가느다란 목덜미를 그 홈에 올려놓았다. 턱 아래로 경사진 나무결이 피부에 닿자, 날것의 찔림이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소운은 눈을 감고 그 감각을 음미했다. 나무 향과 함께 스며드는 따가움은 오히려 그녀에게 살아 있음을, 곧 죽을 육체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생생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몸은 완벽한 곡선을 그리며 바닥에 고정되었다. 무릎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단단히 밀착했고, 두 개의 둥글고 탄탄한 허벅지가 긴장으로 미세하게 떨렸다. 엉덩이는 허리가 휘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위로 솟아올라, 보디빌딩으로 다듬어진 근육과 지방이 만들어내는 매혹적인 볼륨을 드러냈다. 등뼈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렷하게 드러나, 마치 척추 전체가 피부를 뚫고 나올 듯한 긴장감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갈비뼈가 부풀었다 가라앉았고, 그 움직임은 나무 토막을 타고 은은한 진동으로 바뀌어 목덜미로 전해졌다.

대군이 도끼를 들어 올렸다. 묵직한 금속성 소리와 함께 날이 공기를 갈랐다. 그는 칼날의 높이를 가늠하듯 몇 번이고 허공을 가르며 어깨의 궤적을 점검했다. 이내 그 도끼는 천천히 내려와 소운의 목 옆 공간에 멈춰 섰다. 날카로운 강철의 서늘한 기운이 먼저 피부에 닿았다. 소운은 숨을 멈췄다. 도끼날이 실제로 피부에 닿을락 말락 한 치의 틈새를 유지한 채 맴돌았다. 목덜미의 잔털이 곤두섰고, 오한과 열기가 동시에 척추를 타고 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그 고동은 공포만이 아닌 어떤 병적인 흥분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녀의 하반신이 미묘하게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죽음이 이토록 가까이, 손톱끝 하나만큼의 거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생명 본능을 자극해 육체의 가장 원초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부끄러움조차 희미하게 느껴졌지만, 그 감정은 곧바로 참수에 대한 갈망으로 삼켜졌다. 소운은 대군이 망설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부츠의 작은 움직임이 콘크리트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끼날이 그녀의 피부에서 떨어지지도, 그렇다고 더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은 채 무한정 정지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기다림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근육을 조각하고, 살결을 닦고, 상상 속에서 수백 번 이 자세를 취했건만, 막상 실행의 순간에 대군이 주저하다니. 초조함이 그녀의 몸을 뒤흔들었다. 흥분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고, 그 고조된 감정은 배출구를 찾아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기대감에 신경이 먼저 타버릴 것 같았다.

“대군아.” 소운이 낮고 촉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의 입술은 마른 나무 결에 붙어 있었고, 숨은 입천장을 타고 간신히 빠져나왔다. “왜 그래. 어서 하자.”

그녀의 말은 애원하면서도 다그치는 어조였다. 몸부림처럼 엉덩이가 더 높이 솟아올랐고, 허리는 더 깊게 꺾여 나무 토막에 목을 더욱 밀착시켰다. 그 움직임에 맞춰 목덜미의 피부가 도끼날에 스칠 듯 움직였지만, 대군은 여전히 칼날을 옴짝달싹하지 않게 유지했다. 공포와 흥분, 그 이질적인 두 감정은 이제 그녀 안에서 완전히 하나로 융합되어 하체를 적시고 심장을 조여왔다.

“제발. 기다리다 죽겠어.”

소운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떨림 속에는 병적인 확신과, 그리고 집착에 가까운 대군을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죽음이 내려꽂히는 그 찰나의 소리와 충격을 온몸으로 기다렸다. 그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육체가 영원에 고정되는, 가장 완벽한 예술의 완성이라 믿으면서.

도끼가 떨어지다

도끼가 다시 올라갔다. 대군의 두 손은 떨리지 않았다. 손가락 마디가 자루를 움켜쥔 채 하얗게 질렸을 뿐, 그 거대한 쇳덩이는 마치 처음부터 그의 몸에 붙어 있던 것처럼 안정된 궤적을 그리며 정점에 멈췄다.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날카로운 도끼날에 부딪혀 차갑게 반사되었다. 소운은 그 빛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눈을 감지 않았다.

뇌리가 순간적으로 투명해졌다. 기억의 파편들이 통제 불능으로 밀려들었다. 헬스클럽의 탈의실 냄새, 땀과 소독약이 뒤섞인 그 퀴퀴한 공기. 아질이 그녀의 허리 곡선을 훑어보며 “정말 완벽한 근육이야, 소운 씨. 저건 예술이야”라고 했을 때 그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감탄이 아니라 탐욕이었다. 알지. 그 눈빛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그녀의 몸을 훑었다. 누드 모델을 할 때도, 스쿼트 랙 앞에서 땀을 흘릴 때도, 그들은 언제나 그녀의 육체라는 조각상 표면을 시선으로 핥을 뿐이었다. 대군은 달랐을까? 대군의 손길은 더 미세하고 깊숙했다. 살갗 아래 근육의 결을 더듬고, 척추 마디마디의 움직임을 읽어내는 손길. 그래서 더 잔인했다. 그가 세밀하게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을, 이제 자신이 직접 베어내야 한다니.

정말 바보 같군. 소운은 생각했다.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숨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어. 돌이키고 싶지도 않아. 영원은 바로 이런 거잖아. 도끼날이 떨어지기 직전, 그녀의 시야 가장자리에 대군의 얼굴이 흐릿하게 잡혔다. 굳게 다문 입술, 실핏줄이 터진 듯 붉게 충혈된 눈가. 그 단단한 얼굴의 갑옷 아래에서 무너져내리는 무엇인가를 그녀는 보았다. 미안해. 말하고 싶었지만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뇌는 육체의 종말을 예감하고 모든 감각을 절단하고 있는 중이었다.

둔탁한 파열음이 터졌다. ‘쩍’ 하는 소리도, ‘퍽’ 하는 소리도 아니었다. 단단한 무언가가 압도적인 무게로 파고들 때 울리는, 꾸욱 하고 밀려드는 저음의 충격. 도끼날은 두부를 자르는 것처럼 아무 저항 없이 소운의 새하얀 목덜미를 통과했다. 피부, 얇은 지방층, 탄력 넘치는 근섬유, 그리고 그 아래 깊숙이 숨쉬던 경추 뼈 사이의 미세한 틈새까지. 도끼날은 모든 것을 무심하게 가르며 받침대인 나무 토막 깊은 곳에 ‘투둑’ 하고 박혔다. 그 파괴의 소리는 지하실을 가득 채울 만큼 크지 않았지만, 귀청을 찢는 침묵을 동반했다.

소운의 머리는 마치 느린 장면처럼 목에서 떨어져 나와 반원을 그리며 콘크리트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검은 생머리가 공중에 흩날리다 바닥에 퍼졌다. 떨어진 머리는 한 바퀴 데굴데굴 굴러 벽 쪽에 멈춰 섰고, 그 충격으로 살짝 기울어진 얼굴은 눈을 크게 뜬 채로 있었다. 입술이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지만, 더 이상 아무런 숨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리를 잃은 목 없는 시체가 괴이한 반사 동작을 시작했다. 심장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목동맥에서 검붉은 혈액이 엄청난 압력으로 분수처럼 하늘로 치솟았다. 몸통은 의자에 묶여 있었지만, 그 충격으로 상체가 곧추서듯 반사적으로 직립했다. 허공에 매달린 듯한 두 팔은 경련하듯 안으로 굽어졌고, 손가락들은 잃어버린 머리를 찾으려는 듯 허공에서 헛되이 더듬거렸다. 손가락 마디가 경직되어 갈퀴처럼 구부러지고, 손가락 끝이 자신의 잘린 목덜미 위의 허공을 몇 번이고 긁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피가 펌프질하듯 솟구칠 때마다 손바닥에 닿아 흩뿌려졌다. 그 처절하고 무의미한 몸짓은 단지 몇 초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아득한 잔상을 남겼다. 이내 근육의 기력이 급속히 빠져나가며 시체는 옆으로 무너졌다. 번들거리는 피웅덩이 위로 축 늘어졌고, 다리만 여전히 묶인 채 미세한 경련을 반복했다. 근육 세포 하나하나가 죽음을 받아들이며 내는 마지막 신경 반사였다.

대군은 피로 흠뻑 젖은 도끼자루를 놓지 않았다. 그의 얼굴과 가슴팍에는 따뜻한 혈액이 튀어 얼룩덜룩한 별자리를 그렸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느리게 몸을 굽혔다. 시체의 가슴 앞부분, 피가 맺혀 반짝이는 쇄골 바로 아래. 그곳에는 마치 커다란 꽃잎처럼 붉은 점이 하나 있었다. 플라스틱화 처리 과정에서 생긴 자국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작은 반점이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대군은 떨리는 입술로 그 붉은 점을 조심스럽게 입에 물었다. 시체의 체온은 놀라울 정도로 따뜻했다. 그는 눈을 감고, 그 붉은 점에 대고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지막 의식이었다. 피비린내와 그녀의 체취가 뒤엉킨 숨결이 그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그의 턱 밑으로, 소운이 마지막으로 흘린 체액이 뜨겁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원료 인도

탈의실 문이 열렸다. 대군이 어깨에 머리 없는 여자의 시체를 메고 나왔다. 창백한 살갗이 형광등 아래서 반짝였다. 목이 잘린 단면은 깨끗했고, 이미 굳어버린 핏줄기가 검붉은 테를 두르고 있었다. 시체의 다리는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하얀 액체가 천천히 흘러내려 허벅지 안쪽을 타고 대리석 바닥에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점성이 있는 소리가 났다.

헬스클럽이 조용해졌다. 아길이 덤벨을 내려놓고 일어서며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와, 이거 상태 죽이는데."

아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시체를 훑어보았다. 그가 익히 보아왔던 살아있는 소운의 몸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근육의 긴장이 완전히 풀려버린 살점은 묘하게 부드러워 보였다. 가슴의 곡선은 힘없이 처져 있었고, 잘록한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선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특히 벌려진 다리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흰 액체는 그의 시선을 오래 붙잡았다.

"상품 진짜 좋다, 진짜 좋아."

아길은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그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함께 짐승 같은 탐욕이 어렸지만, 그 너머에는 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어떤 안타까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전시된 상품을 감상하는 듯한 냉담함뿐이었다.

소몽이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오, 누드 모델 문제 해결된 거죠? 드디어!"

소몽은 시체의 목이 없는 것도, 온몸이 이미 죽은 사람의 색이라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아니, 애초에 관심조차 없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그저 헬스장 직원으로서 해결되지 않던 문제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다.

"진짜 골치 아팠는데. 대군 씨, 이렇게 빨리 구해 오셨어요?"

소몽은 시체의 다리 사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자기 운동화 옆에 튀자 살짝 피하며 자연스럽게 걸레를 집어 들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바닥을 닦으며 그녀는 계속 웃고 있었다.

대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턱은 단단히 조여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술 가장자리에는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그는 팔에 힘을 주어 시체를 더 단단히 움켜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시체의 살이 눌려 창백하게 변했다. 대군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그의 눈동자는 깊고 어두운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건물 밖에서 낮고 굵은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타이어가 천천히 멈추는 소리, 차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검은색 화물차 한 대가 헬스클럽 입구에 정차했고, 측면에는 흰색 글씨로 '플라스틱화 전문제작'이라고 적혀 있었다.

차에서 한 노인이 내렸다. 작업복을 입은 직원 서넛이 그 뒤를 따랐다. 노인의 등은 약간 굽었지만, 걸음걸이는 오랜 작업 경험에서 나오는 정확함과 여유가 배어 있었다. 때 묻은 장갑을 낀 손에는 클립보드가 들려 있었고, 주머니에는 각종 측정 도구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노인이 고개를 들자, 깊게 팬 주름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이 빛났다.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며 시계를 확인했다.

"여기 헬스클럽이지? 전화로 연락했던 곳."

노사부였다.

대군은 그를 향해 걸어갔다. 시체를 안은 채였다. 노사부의 시선이 곧바로 시체에 고정되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클립보드를 겨드랑이에 끼우며 장갑을 벗었다. 맨손으로 시체의 종아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은 마치 대리석 조각상을 검수하는 조각가의 그것과 같았다.

"좋군. 근육의 탄력이 아직 남아 있어."

노사부는 시체의 팔뚝을 집어 올리며 관절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의 손가락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빈틈없이 시체를 훑으며 근육의 결을 더듬었다.

"피부 질도 상당히 좋고, 체지방률도 완벽해. 가슴 근육과 둔근의 보존 상태도 훌륭하고. 골격의 비율도 상당히 균형 잡혔어. 이 정도면 특급 원료야. 대회 출품작으로 손색이 없겠는데."

노사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체의 복부를 손바닥으로 눌러보았다. 아직 유연성이 남아 있는 살이 천천히 복원되었다. 그의 눈에 잠시 감탄의 빛이 스쳤다.

대군은 시체를 노사부의 앞에 털썩 내려놓았다. 마치 물건을 던지듯 무심한 동작이었다. 시체의 등이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흘러나오던 하얀 액체가 마지막 한 방울 흘러내리며 멈추었다.

노사부는 시체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헬스클럽 내부를 훑었다. 탈의실 쪽, 프런트 데스크 옆, 유산소 운동 구역까지 시선이 닿았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찾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전화했던 그 젊은 여자분. 분명 샤오윈이라는 분이었지? 그분은 어디 있나?"

노사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호기심이 숨어 있었다.

대군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슬픔도, 분노도 아닌,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 미소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샤오윈은 지금 외출 중이에요. 그래서 제가 대신 인도하게 됐습니다."

대군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노사부는 그 미소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듯 잠시 그를 응시했다. 그러다 곧 시선을 돌려 시체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에 잠시 아쉬운 기색이 스쳤다.

"외출이라... 안타깝군. 전화로 들은 그 목소리, 정말 달콤했거든."

노사부는 장갑을 천천히 다시 끼며 말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어. 그 목소리의 주인은 분명히 아름다운 사람이었을 거야. 한 번쯤 직접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게 오늘이 될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는 시체의 잘린 목 부분을 손끝으로 살며시 만지며 덧붙였다.

"뭐, 꼭 만나야 하는 건 아니지. 작품이 완성되면 어차피 영원히 남을 테니까."

노사부는 뒤돌아 직원들에게 손짓했다. 직원들이 보냉 박스를 들고 다가와 시체를 조심스럽게 옮기기 시작했다. 노사부는 클립보드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어 내려가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원료 상태는 최상이니까, 결과물도 기대해도 좋을 거야. 샤오윈 씨에게 그렇게 전해주게."

대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미소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지만, 그 깊이 속에는 누구도 감히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둠이 고여 있었다. 화물차의 뒷문이 닫히며 금속성 소음이 울렸다. 대군은 그 소리를 들으며 멀어지는 차량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플라스티네이션 가공

희부연 새벽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골목길에 냉동탑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량 뒷문이 열리자 흰 가운을 입은 젊은 남자 둘이 조심스럽게 들것을 내렸다. 들것 위에는 방수 천으로 감싼 형체가 가지런히 누워 있었고, 그 길이는 어른 여자 하나가 똑바로 누운 모양이었다. 노사부는 작업복 앞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뒤따라 내려서며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보온 상자부터 먼저 내려라. 진동 없이, 한 번에.”

수석 제자인 기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차량 안으로 다시 올라가 작은 스티로폼 상자를 조심스레 받쳐 들었다. 상자 안에는 드라이아이스가 자욱이 깔려 있었고, 그 속에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살아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평온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입술은 살짝 다물려 있고, 긴 속눈썹은 그림자처럼 볼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기현은 숨을 짧게 들이켰다. 몇십 구의 시신을 다뤄봤지만 이렇게 표정이 살아 있는 것 같은 머리는 처음이었다. 노사부는 그의 망설임을 눈치채고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망설이지 마라. 지금부터 저 머리도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소재를 완벽한 표본으로 만드는 것뿐이야.”

차가 플라스티네이션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미리 대기 중이던 작업팀이 들것을 실은 카트를 작업장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노사부는 카트 옆에 붙어 걸으며 손가락으로 방수 천의 주름을 한 번 쓸어 보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송 중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작업장은 살균 냄새와 포르말린 냄새가 뒤섞인 특유의 공기로 가득했다. 천장에는 밝은 수술등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벽면에는 진행 중인 시편들이 유리 케이스 안에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었다. 노사부는 중앙 작업대로 걸어가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천을 풀어라. 그리고 바로 체표 측정부터 들어간다.”

기현과 다른 제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방수 천을 걷어내자, 소운의 나체가 조명 아래로 드러났다. 목이 없는 몸뚱이는 놀랍도록 균형 잡힌 비율을 하고 있었다.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 라인, 복부의 은은한 굴곡이 마치 살아 있는 석고상 같았다. 노사부는 무표정하게 서서 전신을 훑어보았다.

“좌우 대칭부터 재라. 어깨 너비, 팔 길이,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까지.”

제자들은 재빨리 줄자와 캘리퍼스를 집어 들었다. 기현이 조심스럽게 팔을 들어 올리자 아직 관절이 완전히 굳지 않은 피부가 미세하게 밀려났다. 노사부는 백지 위에 부위별 치수를 적어 내려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정도 균형이면 수직 배치해도 흐트러짐이 없겠군. 주문자가 원한 대로 정중앙 축을 살리는 게 관건이야. 천공봉은 한 번에 밀어 넣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각도가 틀어지면 근육 섬유가 찢어지니까.”

측정이 끝나자 이번에는 세척 과정이 시작되었다. 제자 한 명이 배수구가 있는 스테인리스 침대 위로 몸을 옮겨 눕히고, 미지근한 생리식염수를 전신에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노사부는 직접 긴 핀셋으로 손톱 밑, 귓바퀴 부위(이미 머리는 없지만), 발가락 사이까지 꼼꼼하게 닦아내도록 지시했다. 피부에 남아 있을 미세한 이물질 하나도 용납하지 않았다.

다음은 방부 처리였다. 보통은 경동맥과 대퇴동맥을 통해 포르말린을 주입하지만, 목이 없는 시신이기 때문에 노사부는 이미 예상해 둔 대로 겨드랑이 쪽 액와동맥과 사타구니 쪽 대퇴동맥 절단 부위에 캐뉼러를 삽입했다. 그는 직접 주사 펌프의 유속을 조절하며 천천히 방부액을 밀어 넣었다. 혈관을 따라 창백한 피부가 서서히 갈색 빛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노사부는 다시 한 번 혼잣말을 했다.

“조직이 살아 있네. 이렇게 오래 보존하려면 포르말린 농도를 조금 더 높여야겠군. 근육의 탄력도 살리면서.”

그때 머리가 든 보온 상자가 작업대 한쪽에 조용히 놓였다. 노사부는 잠시 손을 멈추고 상자 쪽을 바라보았다. 머리는 따로 처리하라는 주문. 두개골부터 아래턱까지 관통하는 특수 스탠드를 주문 제작해 그 위에 고정한 뒤, 장기 보존액을 사용해 뇌 조직까지 단단히 굳히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일의 작업이었다.

이제 몸통 처리만 남았다.

제자들은 방부 처리가 끝난 시신을 다시 중앙 작업대로 옮겼다. 노사부는 설계도면을 꺼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음부에서 목까지 천공봉으로 관통. 수직 배치 시 중심 축을 확보할 것. 머리는 별도 처리.’ 주문서 아래에는 유난히 여성스러운 필체로 사인만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소운(素雲). 노사부는 그 이름을 낮게 되뇌어 보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이 스쳤다. 몇 주 전쯤, 전화로 상담했던 그 목소리. 유난히 맑고 또렷했지만, 어딘지 비현실적이었던 그 목소리.

노사부는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쳐냈다. 중요한 건 ‘작품’이었다. 그는 긴 스테인리스 천공봉을 장갑 낀 손으로 집어 들었다. 봉 끝은 무딘 원뿔 모양으로, 근육 섬유를 찢지 않고 밀어 넣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기현이 무릎을 살짝 굽혀 시신의 다리 사이에서 작업을 보조했다.

“각도 85도. 조금만 더. 좋아, 멈춰.”

노사부는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천공봉을 회음부 중앙에 정확히 대었다. 펌프에서 흘러나오는 윤활액이 피부를 따라 스며들자 그는 완만한 힘으로 봉을 밀어넣기 시작했다. 저항감이 느껴졌다. 아직 굳지 않은 조직이 봉의 진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밀려나며 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봉이 복강을 지나 횡격막을 통과할 때쯤 노사부의 이마에 미세한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잠시 멈추고 제자에게 명령했다.

“내시경 카메라 넣어봐. 식도와 기관지 사이를 정확히 지나가고 있는지 확인해라.”

기현이 소형 카메라를 삽입하자 모니터에 희뿌연 조직들이 비쳤다. 노사부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천공봉을 미세하게 오른쪽으로 틀었다. 카메라 화면 속에서 봉의 은색 끝이 천천히 연골 고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좋아. 식도는 피했어. 이제 그대로 위로.”

노사부는 다시 압력을 가했다. 잠시 후, 경추 절단 부위에서 봉의 끝이 반짝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제자들 사이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노사부는 무표정하게 봉을 살짝 빼서 각도를 재조정한 뒤, 남은 길이를 깔끔하게 절단 부위 중심에 맞추었다. 완벽한 수직 축이었다.

그는 천공봉의 양쪽 끝에 특수 설계된 고정 브래킷을 끼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이 몸은 어떤 자세로 세워도 무너지지 않는다. 척추 대신 이 봉이 뼈대 역할을 하는 셈이지.”

제자들이 물러서고, 노사부는 혼자 작업대 옆에 섰다. 그는 손가락을 뻗어 피부의 결을 따라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손끝에 닿는 감촉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살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부드럽고 탄력 있는 느낌이 남아 있었다. 플라스틱화가 완료되면 이 피부는 실리콘 폴리머로 치환되어 영원히 이 형태를 유지할 것이다.

그 순간, 노사부는 다시 한 번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이 몸의 곡선, 갈비뼈의 아치, 손가락 마디의 길이. 모두 처음 보는 것이 분명한데, 어딘가 익숙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형태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손목 관절을 잡아 손가락을 펼쳐 보았다. 길고 가지런한 손가락. 약손가락에는 아주 작은 굳은살이 있었다. 펜을 오래 쥐는 사람에게 생기는 그런 굳은살이었다.

“아까운 손이군.”

노사부가 중얼거렸다. 기현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는 분이십니까, 사부님?”

노사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냥, 이런 균형 잡힌 신체는 좀처럼 구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달랐다. 그는 분명히 어디선가 이 사람과 연결되었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화 속 그 목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맴돌았다. “저는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더 완전한 형태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그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지 집요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노사부는 그 짧은 통화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상상했고, 그 목소리에 어울릴 만한 형태를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얼굴 없는 몸뚱이였고, 따로 놓인 머리였다.

이튿날 아침, 머리 처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노사부는 보온 상자에서 머리를 꺼내면서 처음으로 미세한 동요를 느꼈다. 살아 있을 때 찍은 사진 한 장 없이, 오직 시신만으로 작업하는 게 그들의 원칙이었지만, 이 얼굴은 너무도 평온했다. 살짝 감은 눈매, 오뚝한 콧날,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 노사부는 잠시 손을 멈추고 그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 얼굴을 어디서 본 적이 있을까. 아니다. 그 목소리가 이런 얼굴이었을 거라고, 그가 무의식적으로 상상했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을 뿐이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는 특수 제작된 두개골 고정대를 집어 들었다. 이 고정대는 머리 뒤통수를 지지하면서도 아래턱뼈까지 관통하는 핀으로 구성되어 있어, 머리를 수직으로 세울 때도 완벽한 각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노사부는 극도로 집중한 상태에서 드릴을 사용해 턱뼈 밑에 작은 구멍을 뚫고, 보존액 주입관을 연결했다. 뇌 조직은 서서히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치환될 예정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머리는 영원히 이 평온한 미소를 간직한 채 투명한 고체 속에 갇힐 것이다.

오후가 되자 모든 초기 공정이 마무리되었다. 시신은 수직 거치대에 단단히 고정된 채 천천히 아세톤 탈수조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체내 수분이 완전히 빠져나가고, 이후 진공 챔버에서 실리콘 폴리머가 스며들게 된다. 최종적으로 모든 조직이 플라스틱으로 대체되면, 소운의 몸은 어떤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는 영구 조형물이 되는 것이다.

노사부는 작업장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탈수조 안을 들여다보았다. 수직으로 세워진 몸은 마치 투명한 액체 속에 떠 있는 듯했다. 팔은 자연스럽게 늘어뜨려져 있었고, 손가락은 약간 굽은 채였다. 가슴과 허리의 곡선이 빛의 굴절을 따라 일렁였다. 따로 처리 중인 머리는 곧 이 몸 위에 올려질 터였다. 그러면 이 조형물은 비로소 하나의 완성체가 될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노사부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완벽함이었다. 그가 평생 추구해 왔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바로 그 경지가, 지금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완벽함 속에는 어떤 슬픔이 배어 있었다. 마치 이 몸이 스스로 이 상태를 선택했다는 듯한, 기꺼이 죽음 속으로 걸어들어간 자만이 남길 수 있는 고요한 만족감 같은 것.

노사부는 고개를 저으며 작업대의 기록지를 집어 들었다. 거기에는 처리 일시, 약품 배합 비율, 책임 기술자 서명이 적혀 있었다. 그는 만년필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한 획 한 획 눌러썼다. 그리고 그 옆에,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작은 글씨로 한 줄을 덧붙였다.

“소운, 당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가 없었지만, 당신의 형태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날 밤, 작업장의 불이 모두 꺼진 뒤에도 노사부는 어둠 속에 서서 시편이 담긴 탱크를 바라보았다. 푸른빛 안전등만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형체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하나의 물질, 하나의 오브제였다. 노사부는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렸다.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아니면 죽음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는 답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이 플라스틱화된 소운이 전시장에 서게 될 때, 누군가는 그 속에서 영원한 미를 발견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소름끼치는 집착을 볼 것이다. 그는 조용히 뒤돌아서며 혼잣말을 했다.

“아가씨, 당신은 대체 무엇을 남기고 싶었던 겁니까.”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다만 탱크 안의 액체가 한 번 미세하게 출렁였고, 그와 함께 소운의 손가락 끝에 매달린 방울 하나가 천천히 떨어져 올라가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을 뿐이었다.

밖은 다시 안개가 짙어지고 있었다. 노사부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길게 울리다 사라졌다. 작업장 안, 플라스틱화가 진행 중인 소운의 몸은 묵묵히 서서 다음 공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그녀는 머리를 되찾을 것이고, 완전한 조각상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무도 그녀가 왜 스스로 참수를 택했는지, 왜 남자친구의 손을 빌려 죽음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다만 노사부만이 막연히 짐작할 뿐이었다. 아름다움은 때로 가장 끔찍한 형태로 완성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완성을 위해 어떤 이들은 기꺼이 자신을 소재로 내던진다는 것을. 그는 작업장 문을 걸어 잠그며 나지막이 한 번 더 소운의 이름을 불렀다. 공기 중에 남은 포르말린 냄새 사이로, 마치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맑은 목소리가 흩어지는 것 같았다. 노사부는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단지 작업등이 파르르 떨리고 있을 뿐이었다.

작품 완성

작업실 안은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아세톤과 실리콘 용액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노사부는 흰 가운을 입고 수술용 장갑을 낀 채 진공 함침 탱크 앞에 서 있었다. 탱크 안에서는 마지막 단계가 진행 중이었다. 투명한 액체 속에서 한 여성의 몸이 천천히 반투명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피부 아래 근육의 섬유질 하나하나가 보일 듯 말 듯 스며들며, 마치 유리로 빚은 조각상처럼 빛을 머금고 있었다.

노사부는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쟀다. 탈수 과정은 72시간이 걸렸다. 아세톤 배스에서 조직 내 수분을 완전히 제거했고, 탈지 과정에서는 지방 세포를 녹여내 진공 상태에서 기포가 생기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진공 함침. 압력 챔버 안에서 실리콘 폴리머가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었다. 미세한 기공 속으로 액체가 밀려 들어가며 본래의 유기물을 대체했다. 썩지 않는 영원한 육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탱크의 압력 게이지를 확인하며 천천히 밸브를 돌렸다. 공기가 실린더 안으로 유입되며 액체 표면이 일렁였다. 완성된 플라스티네이션 표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몸통이었다. 목 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가 없는 여성의 누드 조각상이 탱크 안에서 똑바로 서 있었다. 실리콘 함침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탓에 피부는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매끄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슴은 둥글고 단단해 보였고, 배의 곡선은 숨결이 느껴질 듯 자연스러웠다. 음부의 디테일마저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노사부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완성작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작업실의 정적을 깨뜨리기엔 너무 낮았다. 오랫동안 수많은 시체를 다뤘지만 이렇게 감정이 요동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전화선 너머로 들려온 그 음성은 맑고도 단호했으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머리는 공개하면 안 된다. 신원 비밀 유지. 그 요구는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었다. 노사부는 오른쪽 선반 위에 놓인 소형 진공 용기를 바라보았다. 두꺼운 유리병 안에는 실리콘에 완전히 잠긴 얼굴이 떠 있었다. 눈꺼풀은 감겨 있었고, 긴 속눈썹 하나하나가 충격적으로 선명했다.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던 그 순간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유리병 뚜껑은 영구 밀봉 처리되어 있었고, 외부에는 일련번호 외에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그 순간이면 충분했다. 노사부는 고개를 저었다.

문득 프레스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소몽이었다.

"선배님, 여기 계셨어요? 탈수기 점검 시간인데..."

소몽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진공 탱크 안에 서 있는 흉상 없는 누드 조각상을 보고 굳어버렸다. 얼굴이 빠르게 창백해졌다. 두어 걸음 물러서려다 철제 테이블 모서리에 허리를 부딪혔다.

"이, 이게... 진짜 사람인가요?"

소몽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노사부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플라스티네이션은 합법적인 시신 기증 절차야. 이분은 본인의 의사로 기증하셨고. 놀라지 마."

"하지만... 머리가... 어디로..."

"유언에 따라 별도 처리했다. 공개 금지 조건이 붙었어."

소몽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의 눈에는 탱크 속 조각상이 점점 더 기괴하게 다가왔다. 저게 샤오윈인가? 그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소몽은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최근 며칠 동안 샤오윈을 보지 못했다. 대군도 마찬가지였다. 헬스클럽에는 잠깐 들렀다가 금방 사라졌고, 아길은 그녀를 찾으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여자 모델, 왜 이리 안 보이는 거야? 몸매가 끝내줬는데...'

소몽은 구역질이 났다. 다시 한번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가슴, 배, 허벅지... 그 곡선들은 어딘가 낯익었다. 하지만 머리가 없으니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저... 점검 목록 확인할게요, 네. 저... 갈게요."

소몽은 황급히 작업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노사부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탱크 옆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유리 표면을 스치듯 만졌다. 조각상의 피부는 실리콘으로 단단히 굳어져 있었지만, 시각적으로는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는 표면에는 미세한 혈관의 흔적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가슴골의 음영, 명치 부근의 연약한 함몰, 골반 뼈의 각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때 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아길이었다.

"어이, 소몽이 방금 뛰쳐나가던데 무슨 일 있었어?"

아길의 목소리는 여전히 경박했다. 그는 손에 단백질 셰이크 병을 들고 있었고, 어깨에는 땀수건이 걸쳐 있었다. 운동을 막 마치고 온 모양이었다. 그의 시선이 곧장 탱크로 향했다.

"헉, 이거 신작입니까? 대박..."

아길은 감탄을 터뜨리며 다가섰다. 그는 누드 조각상을 빙글빙글 돌며 구석구석 살폈다. 손가락으로 유리 벽을 톡톡 치며 웃었다.

"진짜 여자 몸매 그대로네요. 가슴 모양 진짜 예술인데? 흠, 근데 얼굴이 없으니까 좀 아쉽네. 얼굴도 이쁘면 진짜 미쳤을 텐데. 이 시체 모델이 누군지 아세요?"

노사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장갑을 벗으며 세척실로 향했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는 손을 비비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이 조금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한바탕 불면증을 겪고 난 뒤의 흔적이었다.

아길은 여전히 조각상 앞에서 떠들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여자 몸매는 익숙한데... 설마... 아, 뭐야, 그냥 기분 탓이겠지. 근데 저 라인, 완전 샤오윈인데. 그 여자도 며칠째 안 보이고. 선생님, 혹시 샤오윈 어디 갔는지 아세요? 대군이랑 결별했대요?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노사부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물소리가 끊기자 작업실은 순간 적막해졌다. 그는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돌아섰다.

"이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네. 기증자의 사생활은 보호받는다."

"네? 뭐가 그렇게 진지해...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냥 구경하는 거죠, 뭐."

아길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 번 더 조각상을 훑어보았다. 음부의 디테일에서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그는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근데 진짜 리얼하네요, 저 부분. 마치 방금 전까지 살아있는 여자를... 씁, 무서워라. 근데 또 묘하게 매력적이네요. 영원히 나이 안 들고 이렇게 보존되는 거 잖아요? 예술이란 게 참 무서워요."

그 말을 끝으로 아길도 작업실을 나갔다. 그의 발소리가 복도에서 멀어지자 노사부는 마스크를 벗어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진공 탱크의 조명이 작품을 비추고 있었다. 어깨에서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실루엣이 어두운 작업실 안에서 은은하게 빛났다.

노사부는 조각상 앞으로 다시 걸어갔다. 손을 뻗어 탱크 배기 밸브를 천천히 돌렸다. 공기가 빠져나가며 액체 수면이 조금 내려갔다. 이제 조각상의 어깨선이 완전히 드러났다. 목의 절단면은 깔끔하게 마감 처리되어 있어 해부학적 단면이 보이지 않았다. 매끈한 피부가 척추 뼈의 끝을 자연스럽게 감싸고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머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듯한 인상마저 주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지 않은 채 그냥 입술 사이에 끼웠다. 흡연 금지 구역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시선을 들어 선반 위의 밀폐 용기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 떠 있는 얼굴이 희미하게 미소 짓는 듯 보였다. 그건 착각일까, 아니면 함침 과정에서 근육이 미세하게 수축한 결과일까? 노사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며칠 전 전화 통화에서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저는 제 몸이 이렇게 영원히 남길 바랍니다. 모든 디테일을 완벽하게 보존해 주세요. 그리고... 머리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아 주세요.'

그 부탁은 비즈니스적인 어조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애절함이 담겨 있었다. 노사부는 그런 요청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익명을 원하는 기증자들은 대개 얼굴 공개를 꺼렸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달랐다. 무언가 더 깊은 집착이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육체만을 남기고 모든 정체성을 지워버리려는 욕망.

노사부는 결국 라이터를 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천천히 올라가 환기구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가슴 한켠이 텅 빈 느낌이었다. 이 작품은 완벽했다. 기술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왜 이렇게 허전한가? 그녀가 원한 건 이걸까? 영원히 썩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는 것. 말 그대로의 영원한 미. 철학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분명 성취다. 하지만 노사부는 자꾸만 그녀의 음성을 떠올리며 허전함을 느꼈다. 그가 만나지 못한 그녀의 얼굴이, 밀폐된 용기 속에서 입을 벌린 채 떠다니고 있었다.

그 순간, 복도에서 발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몽도 아길도 아니었다. 대군이었다.

대군의 얼굴은 수척했다.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 턱선이 거칠었다. 눈 밑에는 깊은 다크서클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작업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시선이 곧바로 탱크로 향했고, 조각상을 보자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다... 끝난 건가요?"

대군의 목소리는 쉰 듯 갈라져 있었다. 노사부는 끄덕였다.

"함침까지 완료. 경화 과정만 남았지만 그건 미미한 작업이니까, 사실상 완성이라 보면 됩니다."

"그럼... 이게 그녀인가요?"

대군은 손을 떨며 탱크에 다가갔다. 유리 벽에 손바닥을 대었다. 조각상의 배 부분에 손의 온기가 닿았을 턱이었지만, 차가운 유리와 실리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샤오윈아..."

대군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지만 턱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손가락을 구부려 유리 벽을 살며시 긁었다. 마치 깨어나라고 깨우는 듯한 몸짓이었다. 하지만 플라스티네이션된 육체는 그 어떤 생명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완벽하고, 정지된 조각상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대군을 본 노사부는 담배를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는 계약대로 밀봉했습니다. 열지 않을 겁니다. 보증합니다."

"그게 그녀가 원한 일이니까요..."

"그녀가 왜 이걸 원했는지 저는 묻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대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끄덕였다. 아니, 다시 저었다. 혼란스러운 그의 심정이 그 몸짓에 녹아 있었다. 그는 손을 거둬들이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작업실 구석에 놓인 의자로 천천히 다가가 앉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가늘게 떨리는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사부는 그를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그는 선반 위의 밀폐 용기를 조심스레 집어 들고 암호 잠금이 걸린 보관실로 향했다. 용기를 안전하게 넣고 문을 닫았다. 전자 잠금 장치가 딸깍 하고 울리며 활성화되었다. 이제 이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그대로, 영원히 비밀로 남을 것이었다.

작업실 안에 남은 대군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결국 일어나 탱크 앞으로 다시 걸어갔다. 조각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빛이 각도를 바꿔 어깨선을 비추었다. 가슴 아래로 흐르는 곡선은 생전의 샤오윈을 완벽하게 빼닮았다. 하지만 대군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머리였고, 그 머리 안에 담겨 있던 눈빛과 미소, 그리고 목소리였다.

그녀는 죽기 전 그에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은 영원히 아름다운 상태로 남을 수 있고,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다고. 대군은 그 말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머리 없는 누드 조각상을 마주한 그는 깨달았다. 이것은 그녀의 승리가 아니라, 그녀의 흔적마저 지워버린 공허함일 뿐이었다. 살아있는 그녀의 체온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대군은 손을 들어 자신의 목덜미를 만졌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흉터 같은 무게가 얹혀 있었다. 참수. 그 단어가 찬물처럼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영원... 이게 영원인가..."

혼잣말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는 몸을 돌려 작업실을 나갔다. 복도에는 형광등만 깜박이고 있었다. 대군의 뒷모습은 점점 작아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헬스클럽 쪽에서는 소몽이 아직도 창백한 얼굴로 정수기 옆에 서 있었다. 물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였다. 아길이 무심코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왜 그래? 아까 그 조각상 보고 놀랐냐?"

"아니... 그게... 너무 생생해서..."

"난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예술 작품 같았어. 진짜 몸매가 끝내줬잖아. 근데 너, 혹시 그 모델이 샤오윈인 거 아냐?"

소몽은 번개에 맞은 듯 몸을 떨었다. 그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말도 안 돼...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아니야. 말도 안 된다고..."

"왜? 뭐가 그렇게 말이 안 돼? 너 혹시 모르는 거 아냐? 나는 가끔 드는 생각인데, 샤오윈 그 여자 뭔가 수상해. 몸매 자랑하는 것도 좀 심하고, 대군이랑도 불륜 같았고. 게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너는 아무것도 몰라?"

"아니! 알 게 뭐야. 나는 그냥 직원이라고. 너 가끔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소몽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반응했다. 그는 물컵을 정수기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떴다. 그의 발걸음은 빨랐고, 어깨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길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야, 다들 왜 이래? 나만 정상이야?"

아길은 씩 웃으며 다시 운동 구역으로 걸어갔다. 거울 앞에서 아령을 집어 들며 자신의 팔뚝을 확인했다. 거울 속 그의 모습은 근육질이었고 건강해 보였다.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량을 들어 올렸다. 플라스틱화 표본이 된 여성의 몸에 대한 생각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저 하나의 구경거리였을 뿐이었다.

작업실은 다시 고요해졌다. 노사부는 경화 챔버의 온도를 확인하고 데이터를 기록했다. 온도는 50도. 습도는 5퍼센트 미만. 완벽한 조건이었다. 조각상은 이제 완전히 굳어질 것이고, 이후에는 전시용 스탠드에 고정될 예정이었다.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특정 미술관에서 비공개 전시가 계획되어 있었다.

노사부는 기록지를 덮으며 마지막으로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그 허전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 서 있는 반투명한 육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정말로 바란 건 이게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공기에 흡수된 그 말은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선반 위 밀폐 용기 안에서는 샤오윈의 눈꺼풀이 영원히 감겨 있었다. 작업실 밖에서는 세상이 아무 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소몽은 청소 도구를 정리했고, 아길은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었으며, 대군은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지 않은 채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렇게 작품은 완성되었다. 머리 없고, 영원히 젊고 아름다운 육체의 조각상으로.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영원한 미는 차가운 실리콘 속에 갇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누드 모델 입관

오전 열한 시, 대군 클럽 유리문 밖으로 낯선 밴 한 대가 느릿느릿 정차했다. 측면에는 ‘제도 플라스티네이션’이라는 은색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고, 짐칸에서는 흰색 작업복을 입은 사내 둘이 목재 상자를 조심스럽게 끌어내리고 있었다. 상자는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마치 고급 가구라도 운반하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그 무게감과 밀폐된 뚜껑에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은 예사롭지 않았다.

작업복 왼쪽 가슴에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그중 키가 작고 깡마른 남자는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인 노인이었는데, 명찰에는 ‘노사부’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손짓으로 동료에게 리프트 위치를 조정하라고 지시하며, 목재 상자 모서리를 한 번 두드렸다. 마치 안에 든 내용물을 무언의 언어로 달래는 것 같았다.

“바로 여기다. 중앙에, 저 기둥 앞에.”

대군이 로비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검은색 민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고, 두꺼운 팔뚝에 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눈가가 살짝 붉고 부어 있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끄덕여 보였고, 노사부도 이내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은 없었다.

“조심해라. 모서리 부딪히지 않게. 내부 고정 프레임은 견고하지만, 표면 코팅은 한 번 긁히면 복구가 안 돼.”

노사부가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그의 음성에는 일말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술자의 긴장감이 아니라, 마치 마지막 공정을 앞둔 예술가의 엄숙함에 가까웠다.

리프트 위에서 목재 상자가 느리게 열렸다. 거품 패드와 실리카겔 포장지가 겹겹이 벗겨지자, 마치 보물 발굴 현장처럼 조용하고도 집요한 긴장감이 공기 중에 번져나갔다. 로비에 있던 회원들 몇몇이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마침내, 마지막 막이 걷혔다.

조명 아래, 완벽한 여인의 몸이 수직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머리는 없었다. 목이 잘린 단면은 깔끔하게 밀폐 처리되어 있었고,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모든 굴곡은 마치 신화 속 조각처럼 매끈하고 긴장감 넘치는 곡선을 뽐내고 있었다. 피부는 옅은 벚꽃빛을 띠었지만, 정맥과 동맥은 선명하게 붉은색, 푸른색으로 보존되어 미세한 혈관까지 생생했다. 가슴은 충만하게 위로 솟아 있었고, 유두는 약간 솟아오른 채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허리는 잘록하게 휘어졌고, 엉덩이는 팽팽하게 뒤로 젖혀져 있었다. 대퇴부 근육은 운동선수처럼 선명하게 분리되어 있었고, 종아리에서 발목으로 이어지는 선은 가느다랗고 날렵했다. 발가락 끝까지, 모든 관절이 생전 그대로의 유연함을 흉내 내며 살짝 모아진 상태로 굳어져 있었다.

설치 작업은 매우 빨랐다. 2미터 높이의 금속 막대가 헬스장 중앙에 단단히 고정되었고, 모델의 등 부분에는 미리 삽입된 마운트가 있어 그대로 막대에 걸렸다. 노사부가 직접 렌치를 돌려 나사못을 조이자, 머리 없는 여체는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조형물처럼 완벽하게 직립했다.

“조명 각도를 45도로 조정해라. 쇄골 음영이 더 선명해야 해. 그리고 저 다리 안쪽 근육 라인에 스포트라이트 하나 더 비춰.”

노사부가 뒤로 물러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검수했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마치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는 조각가와 같았다. 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아주 짧은 순간, 잡히지 않는 그리움이 스쳤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 전화 속 그 여자 목소리. 목소리만으로 이렇게 완벽한 몸을 상상할 수 있었다니……. 만나지 못한 게 유일한 유감이군.’

그는 상자 속에 남은 자료표를 꺼냈다. ‘모델 번호 017-SO운. 생전 기록: 음성 샘플 보관 완료. 신체 지표: 체지방률 15.7%, 근섬유 밀도 균등…….’ 그 아래에는 붉은 글씨로 주문자 서명 란이 있었고, 거기에는 ‘대군’이라는 두 글자가 칼로 새긴 듯 깊게 눌러 적혀 있었다.

클럽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러닝머신 돌아가는 소리, 철 던지는 둔탁한 소리가 모두 멈췄다.

가장 먼저 다가간 사람은 아길이었다. 그는 땀에 젖은 수건을 팔에 걸친 채, 천천히 모델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의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고, 동공은 확대되었으며,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는 손을 내밀어 만지려다가,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듯 급히 손을 거두었다. 중지가 살짝 떨렸다.

“이거…… 이거 너무 완벽한데? 피부 질감 보여? 엉덩이 바깥쪽 근섬유까지 살아 있는 것 같아. 이게 진짜 플라스티네이션 모델이라고? 우리 동네 헬스장에? 말도 안 돼……”

그가 중얼거리자, 주변의 다른 회원들도 점점 몰려들었다. 대부분은 상의를 탈의한 남자들이었고, 그들의 팔과 배에는 명확한 근육 윤곽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그들 모두가 평소 추구하던 육체의 아름다움이 갑자기 하나의 구체적인 표본으로 바뀌어 나타난 것 같았다. 두려움보다는 숭배에 가까운 감정이 분위기를 지배했다.

“이게 표본이라고? 도대체 어디서 만든 거야? 저 다리 라인, 진짜 운동선수 아냐? 아니다, 일반인이 이렇게 마르고 근육 많은 몸매를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어.”

“들었어? 제도 플라스티네이션에서 만든 거래. 거기 기술 진짜 대단하다며? 관절 처리도 그렇고, 이게 사람이었던 거 맞아? 유체 맞지?”

“당연히 유체지.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근데 기증받은 건가? 유족 동의는 받았겠지?”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플래시가 터지기도 전에 대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턱관절이 꽉 조여져 볼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그는 손을 저으며, 낮지만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진 찍지 마. 휴대폰은 모두 치워. 여긴 전시장이 아니야.”

그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회원들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아길만이 여전히 모델 가까이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가슴 부분을 응시했다.

“대군 형님, 이 모델 혹시 우리 아는 사람이에요? 이 근육 분포나 골반 비율……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대군은 대답하지 않고 돌아서서 카운터로 걸어갔다. 그의 등은 빳빳하게 굳어 있었고, 발걸음은 약간 어색한 듯 엇박자로 떨어졌다.

바로 그때, 작은 유리문이 열리며 샤오멍이 들어왔다. 그는 출근 후 바로 창고를 정리하느라 로비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손에 든 클립보드에는 오늘의 강습 일정이 적혀 있었고,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뒤적이며 몇 걸음 걸어가다가, 갑자기 시야 구석에 들어온 검은 금속 기둥과 누드 조각상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어? 이게 뭐야? 언제 이런 게 들어온 거지?”

그는 잠시 멈춰 섰다가,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고 클립보드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뒷걸음질 치며 대군을 향해 더듬더듬 목소리를 높였다.

“형…… 형님, 이거 진짜 시체예요? 진짜 유체로 만든 거냐고요? 그럼 이 머리 없는 몸…… 누구 시체예요?”

대군은 카운터 뒤에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으로 로비 중앙을 가리켰다.

“제도 플라스티네이션 회사에서 빌려준 교육용 표본이야. 새로 오픈할 해부학 강좌에 쓸 거야. 회원들에게 인체 근육 구조를 더 직관적으로 보여주려고.”

“빌려준 거요? 이걸?”

샤오멍은 눈을 크게 떴다. 순진한 얼굴에는 진심 어린 불안이 떠올랐다. 그는 모델의 다리 라인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확실히 무언가 느껴지는 듯했지만, 그는 그 생각을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아니, 깊이 파고들 용기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 네…… 교육용이면 이해는 되는데…… 그런데 너무 실물 같아서 깜짝 놀랐네요. 진짜 사람 같아…… 아니, 당연히 사람이었겠지만…… 아,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그는 서둘러 몸을 굽혀 클립보드를 주웠다. 그리고는 급히 생각난 듯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아, 맞다. 형님, 샤오윈 씨는 어디 갔어요? 오늘 아침 일정표에 샤오윈 씨 이름도 있어서요. 오후에 요가 수업 대타 맡기로 했는데,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안 그래도 그분 락카에 핸드폰이랑 지갑 다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은 안 보이고……”

대군의 손가락이 탁자 밑에서 순간적으로 오그라들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찔러, 살이 함몰되었지만 그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는 억지로 목 근육을 이완시키고, 평소처럼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출장 갔어. 갑자기 잡힌 일이래. 오늘 아침 일찍 떠났어.”

“출장이요? 어디로요? 그리고 왜 핸드폰도 안 가져간 거래요?”

샤오멍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그의 눈빛은 정말 순수했고, 의혹의 흔적조차 없었다.

“다른 지점에 연수하러 갔어. 그쪽에서 임시로 유니폼이랑 통신 장비를 줬대. 며칠 뒤에 돌아온다더라.”

대군의 목소리는 날이 선 것처럼 평평했고, 억양도 없었다. 말을 마친 후 그는 스테인리스 보온병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병 주둥이에 비친 그의 얼굴은 두 갈래로 찌그러져 있었다. 눈 밑은 검푸르고, 미간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샤오멍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마치 스스로 납득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 먼저 창고 정리할게요. 오후에 신규 회원 등록도 있고요.”

그는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로비 중앙을 지날 때, 그는 또다시 머리 없는 누드 모델을 힐끗 쳐다봤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가 저 멀리 사라지자, 대군은 비로소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숨소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 같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낮고 긴 신음 소리 같았다.

그는 천천히 손을 펴서 손바닥에 난 깊은 손톱자국을 바라보았다. 살갗이 찢어져 붉은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그는 멍하니 그 상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로비 중앙의 그 조각상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조명 아래, 머리 없는 몸은 여전히 완벽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풍만한 가슴은 중력과 긴장감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복근은 긴장한 채로 선명하게 파여 있었다. 매끈한 다리 근육은 마치 방금 운동을 마친 듯 생생했고, 발목과 발등의 인대까지 정밀하게 재현되어, 진짜 여인이 이제 막 러닝머신에서 내려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아길과 다른 회원들은 여전히 모델 곁을 떠날 줄 몰랐다. 그들은 완전히 빠져든 듯 보였고, 심지어 어떤 이는 다리를 구부려 모델의 종아리 근육 각도와 자신의 다리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웅성거리며 새로 산 기계를 평하듯 자연스러웠고, 눈빛 가득 감탄과 탐욕,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냉담함이 서려 있었다.

대군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흐릿해졌다. 마치 그 모든 것들이 한 겹의 저민 살을 들이댄 듯, 생생하게 아프면서도 무감각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손바닥을 꽉 쥐었다. 상처가 다시 찢어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온몸에 남은 감각이라고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끈적끈적한 따뜻한 액체와, 가슴속 텅 빈 구멍에서 울리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노사부는 작업복을 정리하고 대군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서류 가방에서 배송 확인증을 꺼내 탁자 위에 가지런히 펼쳐 놓았다. 그의 손가락이 문서 위 ‘모델 017-SO운’이라는 글자를 한 번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들어 대군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남겼다.

“주문하신 분께 말씀드리죠. 이 모델은 저희가 최근 3년간 작업한 것 중 가장 완벽한 개체입니다. 근섬유 투명도 처리나 관절 윤활 보존이 최고 수준이에요. 특히 성대 부위 표본은…… 전화로 보내주신 음성 녹음에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거의 살아 있는 것 같은 목소리였어요.”

그 말을 마치자, 대군의 손이 갑자기 탁자 위를 내리찍었다. 보온병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따뜻한 물이 땅에 흘러넘쳐 작은 물줄기를 이루었다. 대군은 얼굴을 들지 않고, 입술 사이로 떨리는 음성을 토해냈다.

“됐어…… 이제 다 됐어. 여기 서명했으니까, 얼른 가.”

노사부는 잠시 멈칫하다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동료를 데리고 유리문을 나섰다. 밴이 다시 시동을 걸어 멀어져 갔다. 주차장 바닥에는 포장지 몇 장과 흩어진 폼 조각, 그리고 찢겨진 라벨이 남아 있었다. 라벨에는 작은 글씨로 한 줄이 인쇄되어 있었다. ‘생전 서명인: 소운.’

대군은 천천히 몸을 굽혀 그 종잇조각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미친 듯이 떨렸다. 그는 종이를 구겨 손바닥 안에 쥐었다. 딱딱한 종잇조각이 상처 난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그의 호흡은 갈수록 거칠어졌고, 마지막으로 로비 중앙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모델의 하반신은 조명 아래 고요하게 서 있었고, 허벅지 안쪽 근육 라인은 마치 살아 있을 때 스트레칭을 하던 그녀의 모습을 그대로 복사한 듯 정밀했다.

그는 마침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어깨가 격렬하게 떨렸지만, 목소리는 전혀 내지 않았다. 로비 저편에서는 아길과 다른 회원들이 여전히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대군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샤오멍은 창고에서 바코드 총을 든 채, 분주하게 신제품 요가 매트를 스캔하고 있었다.

클럽 안은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공기는 땀내와 소독제, 그리고 미약한 포름알데히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중앙의 조각상은 아무 말 없이 조명을 받으며 서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소운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군에게 있어, 이 세상 어디에도 소운이 아닌 곳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