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생기로 넘실거렸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 상점들의 형형색색 간판이 반짝이며 사람들을 유혹했다. 임석은 그 인파 속을 천천히 걸었다. 흰색 반팔 셔츠 위로 살짝 드러나는 가슴선, 단정하게 여민 넥타이, 그리고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감색 주름치마. 그 아래로 흰색 스타킹이 다리 라인을 매끄럽게 감싸고 있었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여고생 같았다. 하지만 그 투명한 천 너머로 느껴지는 피부의 감촉은, 스치기만 해도 짜릿한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눈빛은 맑고 순수해 보였지만, 그 깊은 곳에는 형언할 수 없는 허기와 갈증이 도사리고 있었다. 일상의 권태를 찢어버릴 어떤 자극, 금기를 깨부수는 파괴의 충동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밥 냄새와 사람 냄새, 흥정하는 소리들이 뒤섞인 소음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런데 그 소리들 사이로 유난히 날카로운 말다툼 소리가 귀를 찔렀다.
"이게 뭔 날이 이래? 사람 목을 자를 수는 있겠어요?"
굵고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였다. 임석의 걸음이 멈췄다. 호기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녀는 소리가 들려온 골목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조강철물점’이라고 크게 써진 허름한 간판 아래, 가게 앞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임석은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군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좁은 철물점 안은 형광등 불빛이 켜져 있었지만 어둡고 눅눅한 기운이 감돌았다. 선반에는 온갖 공구들과 쇠붙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공기 중에는 기름과 녹슨 금속 냄새가 진동했다. 카운터 앞에는 마흔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두 팔을 허리에 올리고 서 있었다. 반들거리는 곱슬머리에 진한 입술, 아직도 남아 있는 관능미를 숨기지 않은 중년 여자였다. 그녀가 바로 왕려화였다. 그 맞은편에는 투박한 인상의 남자가 눈을 부릅뜨고 서 있었다. 헐렁한 민소매 셔츠 아래로 두꺼운 팔뚝이 드러났고, 건장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난폭한 기운이 주변을 억눌렀다. 점포 주인 조강이었다. 그의 얼굴은 울화로 시뻘개져 있었고, 손에는 한 자루의 길고 무거운 도신을 치켜들고 있었다.
"이 여편네가 지금 누구 앞에서 날을 갖고 시비야?"
조강이 으르렁거리며 칼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 칼날은 폭이 넓고 등은 두꺼웠으며, 날끝은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빛을 흡수하듯 어둡게 번들거렸다. 한눈에 봐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의 단두도처럼 섬뜩한 아름다움을 풍겼다.
왕려화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말로만 무쇠도 자른다, 사람 뼈도 순두부처럼 간다 해도, 실물은 이게 다 요란한 북 장식이지. 진짜로 목 하나 깨끗이 쳐 보여봐, 믿을 테니까."
구경꾼들 사이에서 낮은 웃음소리와 수군거림이 일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몰려들어, 좁은 가게 앞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해졌다. 임석은 그 틈을 비집고 맨 앞줄까지 파고들었다. 가까이서 보니 칼날의 서늘한 기운이 피부에 와 닿는 듯했다. 그녀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칼날에서, 그리고 주인의 얼굴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조강은 왕려화의 비웃음에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도, 이윽고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띠었다. "그래, 실물을 보여 달라? 좋아, 오늘따라 손님이 특별히 고집이 세시네. 그럼 직접 증명해주마!"
그는 갑자기 카운터 안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거칠게 뭔가를 끌어당겼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끌려나온 것은 사람이었다. 아니, 여자였다. 마흔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전히 매혹적인 체취를 풍기는 숙녀. 진미봉, 조강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값비싼 듯한 비단 치파오를 입고 있었지만, 머리는 약간 헝클어져 있었고, 맨발에, 두 손은 뒤로 묶여 있었다. 얼굴에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미소가 흘렀다. 마치 이런 상황이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이.
군중이 술렁였다. "뭐야, 저 여자?" "인질?" 잠깐의 소란 후, 누군가가 깔깔대며 외쳤다. "어머니잖아! 저 주인 어머니!"
그 말에 놀람과 묘한 흥분이 군중을 휩쓸었다. "와, 진짜야? 대견한 아들이네!" 또 누군가 변태적인 말투로 농을 던지자, 웃음소리가 퍼졌다.
진미봉은 아들의 억센 손에 이끌려 널찍한 작업대 위로 밀려 올라갔다. 그곳은 온갖 연장과 자국으로 얼룩진 두꺼운 나무 도마였다. 그녀는 조금의 저항도 없이 엎드려졌다. 치파오 자락이 젖혀지며 허벅지까지 드러났지만, 그녀는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 조강은 칼을 도마 옆에 놓고, 어머니의 목덜미를 드러내기 위해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구경꾼들의 흥분이 극에 달했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냥 딱 한 번만 해 봐! 시험 삼아!" 그 한마디가 도화선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실험해 봐!" "진짜 자르는지 보여줘!" 하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폭력에 굶주린 짐승 떼의 합창과 같았다. 왕려화는 두 눈을 반짝이며, 아까의 비웃음은 어디로 갔는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조강을 쳐다봤다. "그래, 한 번 해 봐요. 주인장 칼솜씨."
임석은 숨이 멎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녀의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사람들의 환호와 야유, 칼날의 서늘한 빛, 그리고 도마 위에 엎드린 여자의 체념한 듯한 숨소리. 이 모든 것이 한데 뒤섞여, 그녀의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어둡고 뜨거운 무언가를 깨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교복 스커트 자락을 꼭 움켜쥐었고, 스타킹이 감싼 허벅지 안쪽이 미세하게 떨렸다.
조강은 미친 듯이 웃으며, 천천히 참수도를 집어 올렸다. 날이 높이 치솟으며 형광등 빛을 은은하게 튕겨냈다. 군중의 함성은 점점 더 커지고, 불길처럼 거리를 태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