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의 형광등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희게 빛나고 있었다. 임미는 키보드에 손을 얹고 화면 속 ‘영생낙원’의 로딩 바가 채워지기를 기다렸다. 주변에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희미한 헤드폰 너머의 총성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심심풀이로 이 게임을 골랐다. 학교 선배가 추천해 준 것인데, 진짜 가상현실이라는 말에 꽂혀서 집에 있는 VR 기기보다 더 좋다는 말에 PC방까지 왔다.
“이 정도면 퀘스트나 깨고 자야지.”
혼잣말을 하며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이 번쩍이더니 눈부신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임미는 눈을 찡그렸다. 익숙한 PC방의 자극적인 냄새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대신 코를 찌르는 것은 차갑고 낯선 고무 냄새였다.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다가 이내 얼음장처럼 식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뜨자 어둠이 펼쳐졌다. 머리 위에는 깜빡이는 네온사인 한 줄이 형광색으로 ‘육축 시스템’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임미는 몸을 움츠리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목부터 발목까지, 온몸이 검은 라텍스에 빈틈없이 감겨 있었다. 라텍스는 피부에 착 달라붙어 숨 쉴 때마다 미세한 마찰음을 냈다. 팔은 몸통에 딱 붙어 묶여 있었고,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뭐야… 이게…!”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목까지 라텍스로 감싸여 있어 말이 반쯤 삼켜졌다. 사방은 철제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감방이었다. 벽면에는 모니터 여러 대가 붙어 있었고, 화면에는 임미의 일그러진 얼굴이 여러 각도로 비치고 있었다.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으며, 발 밑의 철제 바닥에서는 은은한 진동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기계의 내장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갑자기 모니터들이 동시에 깜빡였다. 화면이 합쳐지며 한 인물이 떠올랐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진호였다. 그의 얼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냉기가 흘렀다. 눈동자는 임미의 몸을 더듬듯 천천히 움직였다.
“임미 씨, 축하합니다.”
목소리는 모든 모니터에서 동시에 울려 퍼졌다. 입체음향처럼 뇌를 파고드는 저음이었다.
“당신은 ‘영생낙원’의 숨겨진 콘텐츠, 육축 시스템의 첫 번째 실험체로 선정되었습니다.”
임미의 눈이 커졌다. 몸이 저절로 떨렸다. 라텍스가 땀과 섞여 피부에 달라붙는 감각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무슨 소리야… 이 게임 빠져나가게 해줘! 이거 불법이잖아!”
진호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무언가를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임미의 목 뒤에서 차가운 금속 침이 튀어나와 척추에 닿았다. 순간 몸이 힘없이 축 처졌다. 근육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에 말문이 막혔다.
“불법? 여기서는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특히 나 같은 예술가에게는.”
진호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모니터 화면이 바뀌며 임미의 신체 데이터가 그래프와 숫자로 흘러갔다. 혈압, 심박수, 근육 긴장도까지 세세하게 표시되었다.
“기본적인 생체 징후는 안정적이군. 소청 씨가 기뻐하겠어.”
그가 말하는 순간, 감방의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한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짧은 검은 머리에 흰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한 손에는 금속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소청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무표정했지만, 임미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기계 부품을 점검하는 듯했다.
“진호, 첫 번째 생체 수용 준비 완료. 최면 패턴을 로딩 중입니다.”
소청이 케이스를 열자 빛나는 회로판과 전극이 드러났다. 그녀는 전극을 들어 임미의 관자놀이에 갖다 대기 시작했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닿자 임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목마저 라텍스에 감겨 움직일 수 없었다.
“제발… 그만둬… 나 풀어줘!”
임미의 목소리는 점점 갈라졌다. 하지만 소청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극을 정확히 압착했다. 그 순간 미세한 전류가 흐르며 머리 깊숙이 무언가가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머릿속이 꿈결처럼 멍해졌다.
진호의 홀로그램이 감방 안으로 한 걸음 다가온 듯 보였다. 그는 허리를 숙여 임미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자세를 취했다.
“이제부터 당신은 더 이상 임미가 아닙니다. 하나의 육축, 우리의 작품입니다. 여기는 가상현실이 아닙니다. 다크웹이 연결된 육축 조련장 그 자체입니다.”
임미는 정신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물이 라텍스 안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눈물조차도 라텍스에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청은 전극을 조정하며 계속해서 뇌파를 읽어냈다. 모니터에는 새로운 창이 떴다.
“의식 저항률 40%... 아직 의지가 강하네요.”
소청이 진호를 향해 말했다. 진호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견딜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너무 세게 나가면 깨져버리니까. 조련은 예술이니까, 서두르지 마.”
그가 손에 든 가상의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었다. 임미는 모든 말을 듣고 있었지만, 마치 몸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의 이야기인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라텍스 안에서 숨은 얕아지고, 전극에서 흐르는 전류가 뇌리를 간질였다. 이곳이 지옥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곳이라는 것을 그녀는 점차 깨달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