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청은 교실 문을 나서며 긴 생머리를 휘날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시선이 그녀를 따라붙었다. 복도를 지나는 남학생들의 시선, 여학생들의 부러움과 시기가 섞인 눈빛. 그녀는 이미 익숙했다. 반에서 으뜸가는 얼굴, 성적까지 뛰어난 그녀는 이 학교의 꽃송이였다.
“소만청 씨, 잠깐만요.”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목소리는 낮고 평범했다. 돌아보니 교실 구석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서 있었다. 진묵.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평범한 얼굴, 평범한 키, 평범한 교복. 한 학기 내내 같은 반이었지만, 그녀가 그의 존재를 의식한 적은 거의 없었다.
“왜?”
소만청이 무심하게 물었다. 진묵은 약간 주춤하며 고개를 숙였다.
“반 대항전 자료 정리가 있는데,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서... 소만청 씨가 잘할 것 같아서.”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반 대항전 일정이 적힌 메시지였다.
“나도 할 일이 있는데.”
“금방 끝나요. 우리 집에 자료가 좀 있어서, 거기서 같이 정리하면 한 시간이면 돼요.”
진묵은 재빨리 덧붙였다. 그의 눈빛은 평범했지만, 뭔가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소만청은 잠시 망설였다. 반장이기도 했고, 반 대항전 준비에 소홀하면 평판이 나빠질 수도 있었다.
“알았어. 빨리 끝내자.”
그녀의 대답에 진묵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걸어갔다. 소만청은 그의 뒤를 따라 학교를 나섰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진묵의 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낡은 빌라의 3층. 계단을 오르며 소만청은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눅눅하고 쿰쿰한 냄새. 그리고 뭔가 썩는 듯한 비릿한 향이 섞여 있었다.
“자주 오는 집이 아니네.”
소만청이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진묵은 대답 없이 문을 열었다. 어두운 복도가 드러났다. 그는 불을 켜지 않고 그녀를 안으로 이끌었다.
“거실로 들어가.”
소만청이 거실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문이 등 뒤에서 굳게 닫혔다. 철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진묵이 문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평범했지만, 눈동자에는 이상한 광채가 어렸다.
“자료는?”
소만청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묵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자료 같은 건 없어. 너를 여기로 데려오려고 한 거야, 소만청.”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무언가 차갑고 날카로운 날이 서 있었다. 소만청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발걸음을 뒤로 물렸지만, 좁은 거실은 그녀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장난 그만해.”
“장난이 아니야.”
진묵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들려 있었다. 작은 칼이었다. 소만청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너는 항상 나를 쳐다보지 않았어. 나는 네 시선 한 번 받지 못한 존재였지. 그런데 이제는 달라. 너는 나만 바라보게 될 거야. 영원히.”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실 전등이 꺼졌다. 어둠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 소만청의 비명이 방 안에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