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왕좌는 텅 빈 우주 한가운데 떠 있었다. 한때 찬란한 빛을 뿜어내던 그 자리는 이제 어두운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키아나는 왕좡에 앉아 있었다. 손끝을 따라 흐르는 권능이 미약하게 빛났지만, 그 빛은 예전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끝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수없이 많은 세계의 탄생과 소멸을 지켜봤다. 모든 것이 예정된 수순이었다. 균형을 유지하고, 질서를 바로잡고, 필요하면 파괴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가슴 한복판이 텅 빈 듯한 이 기분은.
"또 시작됐군."
키아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왕좡 주위를 맴돌다 허공으로 사라졌다. 수백만 년 동안 같은 말을 반복해온 것 같았다. 동료들은 사라지고, 적들은 쓰러지고, 인간들은 번성했다가 멸망했다. 모든 것이 순환의 일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순환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완벽하게 매끄럽고, 상처 하나 없는 손. 신의 육체는 영원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게 그녀를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이야."
키아나가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짝 살을 파고들었다. 통증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아프다.
그 느낌이 새로웠다.
그녀는 다시 손톱을 세게 눌렀다. 깊게. 살이 찢어지고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신성한 몸에 흐르는 붉은 피. 고통이 그녀의 감각을 깨웠다. 공허함이 잠시나마 희석되는 듯했다.
"...더."
그 말이 무의식중에 흘러나왔다. 키아나는 자신의 말에 놀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상처를 내었다. 이번에는 더 깊게. 고통이 척수를 타고 올라와 뇌리를 때렸다. 그와 동시에, 이상한 쾌감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에 몸을 맡기는 느낌. 그녀가 신이 된 이후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하...하하..."
키아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점점 커져서 왕좡 전체를 울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어두운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감각을 더 알고 싶었다. 더 깊은 고통, 더 강렬한 파괴, 더 철저한 굴복.
"재미있군."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상처는 이미 아물고 있었다. 신의 재생 능력은 너무나 완벽해서 고통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그것이 그녀를 더욱 갈증나게 했다.
키아나는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수많은 세계가 그녀의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란 별, 지구였다. 그곳에는 아직 인간들이 살아남아 발버둥 치고 있었다.
"너희들은 나와 달라. 고통받고, 상처 입고, 죽어가면서도... 그래도 살아가려 하지."
그녀의 목소리에 경멸과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그게 질투나는걸."
키아나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권능이 지구를 향해 뻗어 나갔다. 인간 세계의 표면을 스치듯 훑으며 그들의 약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의 두려움, 증오, 욕망.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그녀의 권능에 반응했다.
"아름다워."
그녀가 속삭였다. 인간의 나약함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그들의 한계를 시험하고, 고통을 가하고, 그것이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지켜보는 것.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그 순간, 키아나의 시선이 한 지점에 멈췄다. 그곳에는 붉은 기운을 내뿜는 괴물 같은 생명체가 있었다. 브로냐. 한때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존재. 이제는 절반이 붕괴수로 변한 흉물이었다.
"브로냐..."
그 이름이 키아나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아직 남아있는 인간성의 잔재. 그러나 그것은 곧 더 강력한 어둠에 잠식당했다.
"아직도 의식이 남아 있구나. 고통스럽겠지? 몸이 변해가는 걸 느끼면서도, 자신을 잃어가는 걸 지켜보면서도... 그래도 버티고 있어."
키아나의 눈에 위험한 빛이 반짝였다.
"네가 그 고통을 더 오래 견딜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더 깊은 절망을 선사해 줄까?"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권능이 브로냐를 감싸기 시작했다. 붕괴수의 육체가 경련을 일으켰다. 브로냐의 의식 속에서 고통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힘내, 브로냐. 이제 시작일 뿐이야."
키아나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애정과 잔혹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키아나가 아니었다. 끝없는 시간이 그녀의 마음을 뒤틀었고, 그 틈새로 어둠이 스며들었다.
왕좌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키아나의 권능이 세계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세계를 지키는 수호자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는 존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 보자. 인간들의 고통이, 절망이, 두려움이... 나를 채워줄 거야."
키아나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이 점점 더 짙어졌다. 신의 타락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끝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