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공개 재판소의 높은 천장 아래, 앨리시아와 리아나는 피고석에 서서 주변의 웅성거림을 무시하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의 전 마왕은 은발을 휘날리며 입가에 비웃음을 띠고, 옆에 선 용사는 팔짱을 끼고 하품을 참느라 애쓰는 표정이었다.
"피고 앨리시아, 당신은 마왕 시절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인정하는가?"
대주교의 엄중한 목소리가 재판장에 울려 퍼졌다. 앨리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대주교를 바라보았다.
"만행이라니요? 저는 그저 경제 시스템을 정비했을 뿐입니다. 당신네 교회가 독점한 성유 시장을 경쟁 구조로 바꾼 것뿐이죠."
"감히!"
대주교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리아나가 큰 소리로 하품을 했다.
"에휴, 심심해 죽겠네. 재판은 그만하고 얼른 감옥으로 보내 줘요. 거기서 좀 쉬게."
재판장이 술렁였다. 대주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네가 무슨 말을! 이곳은 성스러운 재판소다!"
"성스럽다고? 나는 신성 모독을 하고 싶은 기분인데."
리아나가 태연하게 말하며 허리를 폈다. 앨리시아가 그녀의 팔을 살짝 잡았다.
"리아나, 너무 흥분하지 마."
"괜찮아요, 앨리시아 님. 지루해서 죽을 뻔했어요."
대주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고 앨리시아와 리아나! 종교 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너희는 영원히 성광 지하 감옥에 감금된다! 호위병, 이들을 데려가라!"
리아나가 스스로 손목을 내밀었다.
"수갑 좀 채워 봐요. 내가 자진해서 들어가는 거니까."
철컥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손목에 마법 차단 수갑이 채워졌다. 앨리시아는 미동도 하지 않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마녀."
대주교가 앨리시아 귀에 속삭였다. 앨리시아는 잠시 대주교의 눈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웃었다.
"시작인지도 모르죠."
성광 지하 감옥은 지하 10층 깊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돌계단을 내려갈수록 공기는 차가워지고, 벽에 걸린 화염 램프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앨리시아는 좁은 복도를 따라 걸으며 주변의 감방들을 훑어보았다. 대부분이 비어 있었지만, 몇몇 감방에서는 쇠사슬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오면 마법도 소용없어요."
간수가 말하며 빈 감방 하나를 열었다. 리아나가 그 안으로 들어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여기서 며칠 쉬어야겠군. 앨리시아 님은요?"
"나는 별도로 감금된다."
앨리시아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이 감옥의 벽에는 특수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어, 마법사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것을.
"맞아요. 마왕인 당신은 특별 대우를 받을 거예요."
간수가 악의적인 미소를 지었다. 리아나가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걱정 마, 리아나. 나는 괜찮아."
앨리시아가 리아나의 손을 살짝 쥐어주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희미한 불안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곧 자세를 바로 하고 간수를 따라갔다.
깊은 밤, 지하 감옥은 침묵에 잠겼다. 리아나는 감방 구석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체내에 흐르는 힘을 느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손끝에서 불꽃이 튀었을 텐데, 지금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상해..."
리아나가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힘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목에 찬 수갑에서 은은한 빛이 나며 모든 마력을 흡수해 버렸다.
"젠장!"
그녀가 발로 바닥을 차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 순간, 감방 문이 열리고 간수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화장실 가고 싶어서."
리아나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간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을 닫고 나갔다.
리아나는 다시 구석으로 돌아가 무릎을 끌어안았다.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녀의 힘은 무적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힘을 잃어버렸다.
"괜찮아... 앨리시아 님만 계시면 돼."
그녀가 스스로를 위로하며 눈을 감았다.
한편, 앨리시아가 갇힌 감방은 더욱 암울했다. 돌벽에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천장에서는 차가운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그녀의 손목과 발목은 두꺼운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입에는 재갈이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차가운 금속의 감각을 느꼈다.
"후... 처음 겪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중얼거렸지만, 재갈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왕 시절, 그녀는 수없이 많은 감금과 고문을 견뎌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더 이상 마왕이 아니었다. 그리고 리아나도 옆에 없었다.
그녀의 눈에 희미한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눈을 굴려 눈물을 닦아냈다.
"아직...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그녀는 이를 악물고 몸부림쳤지만, 쇠사슬은 더욱 단단히 조여들었다. 결국 그녀는 지쳐서 바닥에 쓰러졌다. 차가운 돌바닥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낮은 웃음소리였다.
"누구야?"
그녀가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재갈 때문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웃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한 인영이 나타났다.
"오래 기다렸어, 마녀."
그 목소리는 대주교의 것이었다. 앨리시아의 몸이 긴장으로 떨렸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쇠사슬은 그녀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했다.
"이제야 네가 진정한 나를 알게 될 거야."
대주교가 그녀에게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앨리시아의 눈에 두려움과 분노가 동시에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 대주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홍옥 같은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네 자존심은 곧 산산조각날 거야."
대주교가 그녀의 턱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앨리시아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점점 불안이 커져 갔다. 그녀는 리아나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