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란시 종합경기장의 불빛이 환하게 켜졌다. 동쪽 관중석은 붉은색 물결이 출렁였다. 중국 팬 삼백 명이 목청껏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 뒤로 삼백 명의 치어리더가 서 있었다. 모두 키가 175센티미터에 달하는 여대생들로, 가슴이 깊게 파인 흰색과 빨간색 치어리더 복장을 입고 있었다. 이페이얼이 맨 앞줄에 섰다. 긴 생머리가 어깨에 닿았고, 금색 테 안경 너머로 차가운 눈빛이 반짝였다.
"페이얼, 오늘 경기 꼭 이겨야 해." 리구이가 그녀 손을 꼭 잡았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당연하지." 이페이얼이 살짝 웃으며 그의 손을 놓았다. "우리 치어리더가 응원할게. 네가 걱정할 건 없어."
서쪽 관중석에 한국 아저씨 삼백 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 우두머리격인 사내는 뱃살이 불룩 나온 중년이었다. 어깨에는 태극기가 걸쳐져 있었고, 얼굴은 기름때로 번들거렸다. 그는 박대근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팬들의 단장이었다.
"야, 저 중국 여자들 좀 봐." 박대근이 동료들의 어깨를 툭 쳤다. "저런 몸매에 저런 복장이라니. 완전 쇼를 하는 거 아냐?"
"맞아. 저 정도면 진짜 대박이지." 옆에 있던 동료가 동의했다.
박대근이 침을 삼켰다. 그의 눈에 음흉한 빛이 스쳤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 관중석을 향해 걸어갔다. 한국 팬들이 그를 따라 일어났다.
"중국 친구들아!" 박대근이 중국어로 외쳤다. 그의 발음은 어눌했다. "재미있는 내기 하나 하자."
리구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페이얼도 그를 따랐다. 두 무리가 중앙 통로에서 마주 섰다.
"무슨 내기인데?" 리구이가 물었다.
박대근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치어리더들을 가리켰다. "오늘 한국이 한 골 넣을 때마다, 치어리더 여학생 한 명이 와서 우리 옆에 3분씩 앉아 있는 거야. 어때? 재미있지 않아?"
중국 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이페이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말도 안 돼.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애들을 내기 상품으로 삼는 거야?"
"두려운 거 아니야?" 박대근이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봤다. "중국 여자들은 다 겁쟁이인가 보네. 응원만 하는 게 아니라 싸움도 할 줄 알아야지."
"너!"
이페이얼이 발끈했다. 리구이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페이얼, 진정해."
"아니야, 구이." 이페이얼이 그의 손을 떼어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박대근을 똑바로 응시했다. "좋아. 내기하지. 하지만 조건이 있어. 한국 대신 중국이 한 골 넣으면, 한국 아저씨들이 중국 여자들 앞에 무릎 꿇고 '내가 틀렸다'고 외치는 거야."
박대근의 눈이 반짝였다. "좋아. 받아들인다."
"페이얼!" 리구이가 당황하며 말렸다. "이건 너무 위험한 내기야. 한국 팀이 강하잖아."
"괜찮아. 나는 우리 팀을 믿어." 이페이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뒤돌아 치어리더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아, 괜찮지?"
치어리더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한 명이 혀를 내밀며 박대근을 향해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저 한국 아저씨들, 꼴에 자격이나 되나?"
"맞아. 자기네들 축구선수도 아니면서."
"골 넣기는커녕 수비하기도 바쁠걸."
치어리더들의 조롱에 한국 팬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박대근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좋아. 너희가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지켜보자."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경기가 시작됐다. 공이 중앙원을 떠나 중국 선수들의 발밑으로 굴러갔다. 경기장 안팎이 숨을 죽였다. 동쪽 관중석에서는 응원가가 울려 퍼졌고, 서쪽 관중석에서는 태극기가 흔들렸다.
이페이얼은 치어리더들을 이끌며 첫 번째 공연을 시작했다. 폼폼이 하늘로 치솟고, 다리가 나란히 움직였다. 그녀의 몸은 리듬에 맞춰 유연하게 흔들렸다. 리구이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가슴이 조여 왔다. 그는 이페이얼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경기장 안에서 중국과 한국의 선수들이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전반 15분이 지나도록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공은 중원을 오가며 끊임없이 소유권이 바뀌었다.
박대근이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아직도 싸늘한 미소가 감돌았다.
"아직 한 골도 안 넣었네." 옆에 있던 동료가 속삭였다.
"기다려." 박대근이 느긋하게 말했다. "시간은 충분해. 조금만 더 기다리면 저 예쁜 여자들이 우리 옆에 앉아 있을 거야."
그의 말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중국 팬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응시했다. 리구이는 손에 힘을 주며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