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퉁은 도서관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을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책상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전공 서적에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든 하이라이터로 중요한 부분을 꼼꼼히 표시하고 있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가끔 페이지 넘기는 소리만이 조용한 공간을 깨뜨렸다.
갑자기 맞은편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그녀 앞에 앉았다. 장퉁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
장자러였다.
그는 여전히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약간 웃는 듯한 눈매, 얇게 다문 입술이 살짝 올라가 있어 능청스러우면서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검은색 니트 위에 캐주얼한 재킷을 걸친 차림이었지만, 남들보다 한 뼘은 더 돋보이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노트북을 꺼내더니 고개를 숙여 화면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오랜만이야, 퉁퉁.”
그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마치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장퉁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려 애쓰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손가락이 책장을 넘기는 순간,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 것을 감출 수 없었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위챗 메시지였다. 발신자는 장자러.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고도 그가 보낸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여전히 예쁘다. 나 못 본 척하려는 거야?”
또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아니면… 나한테서 도망치려는 거야?”
장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계속 책을 읽는 척했다. 하지만 눈앞의 글자들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장자러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고백했을 때. 운동장 끝, 석양이 지는 시간이었다. 그는 담배 냄새가 밴 교복 위에 걸친 체육복 차림으로 나타나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나랑 사귀자.”
그때 그녀는 무서웠다. 장자러는 학교에서 유명한 문제아였다. 하지만 남몰래 그를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후, 그녀는 처음으로 그에게 몸을 허락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점점 그의 손길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같은 학교 언니, 키가 크고 몸매가 좋은 여자였다. 그녀는 그가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충격에 휩싸여 그와 헤어졌다. 그 후 1년 넘게 그는 그녀에게 사과하고 다시 만나자고 졸랐지만,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리고 지금의 남자친구, 다정하고 부드러운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 남자는 장퉁을 정말 사랑했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녀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손을 잡을 때도, 키스할 때도 항상 조심스러웠다. 그런 그의 다정함이 장퉁에게는 오히려 죄책감으로 다가오곤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가끔, 장자러의 거칠고 지배적인 손길을 떠올리곤 했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오늘 몇 시에 끝나? 기숙사까지 데려다줄까?”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
“괜찮아요. 혼자 갈게요.”
장자러는 그 답장을 보고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는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도 장퉁의 표정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귀끝이 살짝 붉어졌다. 그 미세한 반응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해가 저물어 갔다. 도서관 불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장퉁은 책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장자러를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가 일어나 그녀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서관 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녀는 그가 뒤에서 걸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발걸음 소리는 규칙적이면서도 느긋했다. 그녀가 문을 나서려는 순간, 그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기다려.”
그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그의 손길이 닿은 순간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마. 나는 언제든지 널 찾을 수 있어.”
그녀는 손목을 빼내려 했지만, 그의 힘은 부드럽지만 강력했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잘 가. 다음에 또 보자.”
그는 손을 놓았다. 장퉁은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면서도 뒤에 있는 그의 시선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가 다시 나타난 이후로, 마음속 무언가가 조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녀의 심장은 이미 그 거짓말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