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온정기
## 제1장: 뜻밖의 동반 이모
"린아, 아빠가 이야기할 게 있어."
저녁 식사 중이었다. 아버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셨다. 평소와 다른 표정이었다. 진지하면서도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낯선 표정.
"유학 가는 거, 걱정되잖니. 혼자 가는 게 영 불안해서..."
아버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말투는 이미 결정된 일을 통보할 때 쓰는 말투라는 것을.
"그래서 회사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구했어. 너랑 같이 가서 돌봐줄 사람을."
같이 가? 돌봐준다고?
"가오위안위안 이모라고 아냐. 우리 회사 경리부 팀장이야. 학벌도 좋고 영어도 완벽해. 유럽 생활에 문제없을 거야."
가오위안위안.
그 이름이 귀를 스쳤을 때,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가오위안위안. 가오 이모.
샤오린의 엄마.
"아버지, 그분이... 샤오린 엄마 아니에요?"
아버지의 눈빛이 스쳤다. 놀라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애매한 표정.
"아, 그래? 세상 참 좁구나. 네 반 친구였지? 그래서 더 좋아. 이미 아는 사이라면 편하게 지낼 수 있잖니."
아버지는 태연자약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샤오린 집에 처음 놀러 갔던 날이 떠올랐다. 벌써 2년 전이었다. 생일 파티 때문이었는데, 그날 나는 처음으로 가오 이모를 봤다.
문을 열어준 그녀는 연한 베이지색 홈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헐렁했지만 몸매가 드러나는 실루엣. 목까지 올라온 디자인이었지만, 왠지 은근히 신경 쓰였다. 그녀는 머리를 느슨하게 묶고 있었고,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주방에서 갓 나온 듯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어머, 린이구나. 샤오린이 맨날 얘기하더라."
미소. 그 미소에 나는 멍해졌다.
온화하고, 부드럽고, 포근했다. 내가 어릴 적 상상했던 '엄마'의 이미지였다.
우리 집에 엄마는 없었다. 어릴 적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바빴다. 그래서 나는 혼자 컸다.
그날 나는 샤오린의 방에 있었지만, 자꾸 거실로 눈길이 갔다. 가오 이모가 과일을 깎고 있었다. 손놀림이 섬세했다. 사과 껍질이 길게 늘어졌다 끊어지지 않았다.
"엄마, 아이스크림 주세요!"
샤오린이 소리쳤다. 그러자 가오 이모가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그리고 나에게도 하나 건네며 싱긋 웃었다.
"린이도 먹을래? 더운데 시원한 게 좋지."
그 손길. 그 목소리. 그 온기.
내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친구 집에 놀러 와서, 친구 엄마를 보고.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릴까.
"린아, 듣고 있니?"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네? 아, 네."
"가오 팀장이 흔쾌히 승낙했어. 사실은 내가 부탁한 거야. 회사 일도 있고, 너 걱정도 되고... 그래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기로 한 거란다."
아버지는 가오 이모를 '가장 믿을 만한 부하직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가끔 늦은 밤, 아버지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업무 지시라고 하기엔 너무 다정한 말투로.
그리고 얼마 전, 아버지 책상에서 본 서류. 가오위안위안의 인사 기록. 사진 속 그녀는 정장을 입고 진지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날 본 홈드레스의 그녀가 겹쳐 보였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만나기로 했어. 네가 직접 인사하고, 유학 준비도 같이 해야 하니까."
아버지의 말이 계속되었지만,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가오 이모가 나랑 같이 간다고?
유럽으로.
몇 달 동안 함께 생활한다고?
샤오린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내 마음이었다.
두려움과 불안. 그게 전부여야 했다.
하지만 그 속에 섞여 있는 또 다른 감정이 있었다.
기대.
설렘.
그리고...
가오 이모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은밀하게 떨리는 무언가.
"린아, 괜찮니? 표정이 안 좋아 보여."
아버지가 내 이마를 짚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냥... 갑자기 생각할 게 많아져서."
"그래? 걱정하지 마. 가오 팀장이 있으니까. 그리고 아빠도 자주 갈게."
아버지는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태평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밥맛이 사라졌다.
가오 이모. 가오위안위안.
그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자, 낯선 열기가 얼굴로 올라왔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두려움은 분명 있었다. 낯선 나라, 낯선 환경. 게다가 동급생의 엄마와 단둘이?
하지만 더 크게 자리 잡은 것은...
은밀한 호기심이었다.
그날 본 그 미소. 그 손길. 그 온기.
그리고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샤오린의 친구일 뿐일까.
아니면...
나는 고개를 저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슴은 계속 뛰고 있었다. 멈출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