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어느 날, 여덟 살짜리 주봉춘은 뜨거운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다고들 말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때 하늘 위로 태백금성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천리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죽어가는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인연이로구나.” 태백금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저었다. 지난번에 없앤 돼지 요괴의 정화가 아직 주머니 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정화를 주봉춘의 몸속에 불어넣었다. 아이의 몸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신기하게도 열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사흘 후, 주봉춘은 눈을 떴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는 이미 돼지 요괴의 정화가 사람의 혼과 뒤섞여 있었다. 그는 살아났지만, 더 이상 완전한 인간은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주봉춘은 열 살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마을 앞 개울가에서 조약돌을 주으며 놀고 있었다. 그때 물가에 낯선 소녀가 앉아 있었다.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그 소녀는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주봉춘은 다가가 말을 걸려고 했다. 그런데 소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돼지야! 너 돼지 요괴잖아!” 소녀의 눈에는 주봉춘의 인간 얼굴 너머로 어렴풋이 돼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용왕의 딸 오아령이었다. 집안 싸움에 화가 나서 혼자 용궁을 뛰쳐나온 것이었다. 주봉춘은 당황했지만, 천천히 손을 내밀며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 나는 나쁜 사람 아니야.” 오아령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소년의 눈빛은 맑고 순수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았다. 그날부터 두 사람은 매일 개울가에서 만났다. 주봉춘은 물고기를 잡아주고, 오아령은 용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함께 돌다리下面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두 해가 흘렀다.
어느 날,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수십 명의 새우장수와 게장수가 개울가를 뒤덮었다. 그들은 오아령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공주님, 폐하께서 크게 노하셨습니다. 어서 귀궁하소서.” 오아령은 주봉춘의 손을 꼭 잡았지만, 결국 끌려가고 말았다. 그녀가 용궁으로 사라질 때, 뒤돌아보며 외쳤다. “다시 만나자, 주봉춘!” 주봉춘은 그날 하루 종일 개울가에 서서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또 사 년이 지났다. 주봉춘은 열네 살이 되었다. 마을 큰부잣집 잔치에 초대받은 그는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자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건너편 자리에 예쁜 누나가 앉아 있었다. 주봉춘은 넋이 나간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코는 납작해지고, 귀는 커졌으며, 온몸에 거친 털이 돋아났다. “돼지 요괴다!” 잔치 자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주봉춘은 제 손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며칠 후,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마을 밖으로 쫓아냈다. “저건 주봉춘이 아니야! 진짜 주봉춘은 이미 죽었어!” 먼 친척들은 그의 집을 차지하려고 그러는 것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셨다. 주봉춘은 의지할 곳 없이 홀로 낯선 길을 걸었다.
해질녘, 그는 허름한 폐사에 도착했다. 지붕은 무너져 내리고, 거미줄이 사방에 쳐져 있었다. 주봉춘은 부서진 불상 아래 웅크리고 앉아 울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흰 빛이 내리쬐었다.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태백금성이었다. “네 안에는 사람의 혼과 돼지 요괴의 정화가 함께 있단다. 네가 돼지로 변한 것은 술과 색심 때문이었다.” 주봉춘은 놀라서 물었다. “그럼 저는 계속 이 모습인가요?” 태백금성이 웃으며 말했다. “두 시간만 기다리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앞으로 술을 마시지 말고, 색심을 품지 마라. 만약 어기면 다시 돼지 얼굴이 될 것이다. 그럴 때는 두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자 정말 두 시간 후, 주봉춘의 얼굴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태백금성은 손목시계 하나를 내밀었다. “이 팔찌를 차면, 술을 마시거나 색심을 품어도 돼지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벗으면 다시 변할 수 있다. 돼지 요괴가 되면 힘이 엄청나게 세지고, 훗날 스님을 만나면 법술도 배울 수 있다. 위험할 때만 쓰거라.” 그리고 그는 스무 냥의 금을 주봉춘에게 주며 말했다. “이것은 내가 너에게 미안해서 주는 것이다.” 그러고는 곧바로 하늘로 사라졌다.
주봉춘은 폐사를 떠나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목적지는 해주성이었다. 길을 가다가 숲속에서 상처투성이인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고양이는 다리에 피를 흘리며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주봉춘은 옷자락을 찢어 상처를 싸매 주고, 먹을 것을 조금 남겨준 뒤 다시 길을 떠났다. 그 고양이는 사실 묘묘라는 이름의 고양이 요괴였다. 그녀는 요괴 사냥꾼에게 쫓기다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고양이는 주봉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은인… 나는 반드시 너를 찾아갈 거야. 그리고 은혜를 갚을 거야.” 그렇게 주봉춘은 앞으로 나아갔고, 묘묘는 숲속에서 조용히 그의 이름을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