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의 장미
## 제2장: 암류가 움직이다
모임이 있은 지 사흘이 지난 어느 오후였다. 이설민은 남편 공명이 운영하는 복권방 계산대 뒤에 앉아 있었다. 손님이 드문 한가한 시간이라 그녀는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키 큰 남자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정파였다. 그날 모임에서 봤던 진정부 서기. 그가 가게 안을 둘러보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 여기였구나. 복권방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맞네요."
이설민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단정한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깔끔하게 묶어 올리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점잖은 주부였다.
"네, 여기 제 가게예요. 웬일이세요?"
"지나가다가 문득 들렀죠. 로또 한 장 사려고요."
정파는 계산대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애매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며칠 전 모임 이후로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참 매력적이신 분이야 하고."
이설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고개를 숙여 로또 용지를 꺼냈다.
"무슨 그런 말씀을... 농담이시죠?"
"농담이라면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지 않아요."
정파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 미소는 점잖고도 달콤했다. 그는 계산대에 팔꿈치를 기대며 살짝 몸을 앞으로 숙였다.
"날이 갈수록 예뻐지시네요. 결혼 생활이 좋으신가 봐요?"
"네, 뭐... 그럭저럭요."
이설민은 말을 더듬으며 로또 용지를 내밀었다. 그녀의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정파는 그 손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눈을 다시 마주쳤다.
"바쁘신 분 같아 보이는데... 시간 나시면 커피라도 한잔 할 수 있을까요?"
이설민은 잠시 망설였다.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명은 잠시 은행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상태였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요즘은 한가한 편이에요. 가게도 손님이 별로 없어서..."
"그럼 좋네요. 제가 연락드려도 될까요?"
정파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설민은 잠시 주저하다가 자신의 번호를 불러주었다. 그는 번호를 저장한 뒤 다시 미소를 지었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오늘 정말 반가웠어요."
그가 문을 열고 나가자 이설민은 계산대에 손을 짚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뺨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저 남자... 말투가 너무 부드러워. 그리고 그 눈빛...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자신을 향한 그의 시선에는 분명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욕망이 그녀의 가슴속에 불을 지폈다.
저녁이 되자 공명이 돌아왔다. 그는 가게 구석에 앉아 복권 당첨 번호를 천천히 확인하고 있었다. 이설민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여보, 오늘 그 모임에서 봤던 정파 서기가 가게에 왔었어."
"응? 그래?"
공명은 눈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그의 관심은 전적으로 복권 용지에 쏠려 있었다.
"나보고 날이 갈수록 예뻐진다고 칭찬하더라. 말도 참 잘하고..."
"허, 그런가?"
공명이 고개를 들어 아내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흥미가 섞인 것 같았다.
"친구들 만나는 것도 좋지. 너 요즘 너무 가게에만 있잖아."
"그래도..."
"자주 어울려. 재미있는 사람들이랑 말이야."
공명이 다시 복권 용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목소리는 평온했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설민은 잠시 남편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무심한 반응이 오히려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를 자극했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칼로 야채를 써는 손길이 거칠어졌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정파의 부드러운 미소와 달콤한 말투가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무심한 표정.
"신경도 안 쓰네... 정말."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남편이 신경 쓰지 않을수록, 그녀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 공명은 아내가 차려준 음식을 조용히 먹었다. 그는 가끔 아내를 힐끗 쳐다보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오늘 정파 씨한테서 연락 오면 어떻게 할 거야?"
이설민이 놀라서 남편을 바라봤다.
"연락이 오면... 그냥 커피나 마시겠지."
"그래, 좋은 시간 보내."
공명이 무심하게 말하며 밥을 떠먹었다. 그의 눈에는 이상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설민은 그 빛을 알아채지 못했다.
밤이 깊어지자 이설민은 잠들기 전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정파에게서 온 메시지가 하나 있었다.
"오늘 정말 반가웠어요. 내일 시간 괜찮으시면 저녁에 만날까요? 맛있는 집을 알고 있어요."
이설민은 메시지를 여러 번 읽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침대 옆에 누워 있는 공명을 슬쩍 바라봤다. 그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화면을 바라보며 천천히 답장을 쳤다.
"네, 좋아요. 내일 저녁 여섯 시, 어디로 갈까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녀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녀는 상상 속에서 정파와의 만남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부드러운 손길, 그의 달콤한 목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남편의 눈을 피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흥분시켰다.
공명은 잠든 척하며 아내의 모든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녀가 핸드폰을 만지는 소리, 그녀가 미소 짓는 소리, 그녀가 숨을 고르는 소리. 모든 것이 그에게 익숙한, 그리고 기대하는 패턴이었다.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로 가고 있다. 그 사실이 그의 가슴속에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아침이 밝았다. 이설민은 일어나자마자 거울 앞에 섰다. 그녀는 자신의 몸매를 살펴보며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했다.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수수하지도 않은. 적당히 매력적인 옷.
그녀는 하늘색 블라우스와 흰색 바지를 골랐다. 단정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실루엣. 목걸이와 귀걸이도 착용했다.
"오늘 어디 가?"
공명이 주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친구랑 점심 먹기로 했어."
"그래, 재미있게 놀고 와."
공명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는 아내의 차림새를 잠시 훑어보고는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이설민은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그녀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카페, 그녀가 예상한 대로 분위기 좋은 곳이었다.
정파는 이미 와 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그는 일어나서 미소를 지었다.
"와주셨네요. 기다렸어요."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했다. 이설민은 그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어제는 좀 놀랐어요. 여기서 뵐 줄은 몰랐거든요."
"저도요. 하지만 그날 이후로 계속 생각나서...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정파가 커피를 주문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애정과 욕망이 섞여 있었다.
"이설민 씨는 정말 특별한 분이세요. 처음 뵈었을 때부터 느꼈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평범한 주부인데."
"평범한 주부가 그런 눈빛을 하진 않아요."
정파가 살짝 웃었다. 그의 말에 이설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커피잔을 들어 마시며 시선을 피했다.
"저... 이런 만남이 처음이라 좀 어색하네요."
"괜찮아요. 천천히 알아가면 되죠. 우리 시간은 많으니까."
정파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살짝 쥐었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설민은 손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온기를 느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 사람은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정파는 자신의 일과 취미, 그리고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내와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다고. 이설민도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했지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점점 그의 말에 빠져들었다. 그의 달콤한 말투, 그녀를 감싸는 듯한 눈빛, 모든 것이 그녀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해가 저물 무렵,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파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네... 저도 즐거웠어요."
이설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애매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이설민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뺨에 붉은 기운이 돌고,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감싸며 생각했다.
이렇게 또 시작되는 건가...
그녀는 알 수 없는 쾌감과 죄책감이 섞인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죄책감보다는 쾌감이 더 컸다.
공명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그가 물었다.
"재미있었어?"
"응, 꽤."
"다행이네. 자주 만나. 친구는 자주 만나야 정이 드니까."
공명이 무심하게 말하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등을 돌리고 잠을 청했다.
이설민은 그의 등 뒤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선 어둡고 위험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잠들기 전에 정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만나요."
답장이 곧바로 왔다.
"나도 그래요. 당신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요. 좋은 꿈 꾸세요."
이설민은 그 메시지를 여러 번 읽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위험한 관계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암류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