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완메이는 손가락 사이에 낡은 수첩을 끼우고 있었다. 표지가 벗겨져서 속지가 군데군데 드러난 수첩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계산했지만, 숫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신문지 위에는 동전 몇 닢과 구겨진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이 흩어져 있었다.
“언니, 다 합쳐도 이십만 원이 안 돼.”
조완리가 방 한쪽에서 낮고 눅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계산기 대신 사용하던 낡은 휴대폰이 들려 있었고, 액정에는 잔액이 찍혀 있었다.
조완메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으로 수첩의 모서리를 반복해서 문지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방 안은 좁고 어두웠다. 창문 밖으로는 빨래가 널린 골목과 그 사이로 비치는 희미한 햇빛만 보였다. 이 동네의 공기는 언제나 눅눅하고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왕 사장이 오늘 오후에 다시 연락이 왔어.”
조완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연기가 허공에 흩어지면서 묘한 긴장감을 더했다.
조완메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깊고, 표정은 차분했다. “뭐라고 하던?”
“조건은 그때와 같아. 삼 년. 그 사이에 모든 걸 제공해 준대. 숙소, 생활비, 병원비. 단, 우리가 모든 요구에 응해야 해.”
조완메이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그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들은 여러 곳을 전전했지만, 매번 벽에 부딪혔다. 엄마의 병원비는 계속 쌓여 갔고, 그녀들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남자가 믿을 수 있겠어?”
“변호사가 문서를 만들었대. 도장도 찍었고, 조건이 명확하대.”
조완리는 담배를 끄고 언니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평소의 장난기 어린 미소는 사라지고, 무거운 결심이 깃들어 있었다.
“언니, 우리가 다른 길이 있을까? 엄마는 다음 주에 입원해야 해. 수술비가 천만 원인데, 지금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한 푼도 못 채워.”
조완메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밖에는 아이들이 골목에서 공을 차며 놀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가 넘어져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가 달려와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조완메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래.”
그녀가 마침내 대답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오늘 오후에 연락해. 우리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조완리는 잠시 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스쳤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오후, 두 자매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왕 사장은 그 자리에 없었다. 대신 그의 비서가 와서 간단한 절차를 진행했다. 비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그 3년 동안 조완메이와 조완리는 왕 사장의 저택에서 살았다. 저택은 넓고 고요했다. 그 안에서 그들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조완메이는 조용하고 순종적이었고, 조완리는 조금 더 반항적이었지만 결국 같은 길을 걸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버텼다. 가끔 밤이 깊으면 좁은 방에 모여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이야기 속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1년 후, 조완메이는 임신을 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왕 사장이었다. 처음 조완메이는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이미 깊이 상처받았지만, 뱃속의 생명은 그녀에게 또 다른 의미를 주었다. 그녀는 아이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왕 사장도 이 사실을 알고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조완메이에게 더 나은 방을 주고, 음식과 치료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조건 없는 호의가 아니었다.
아이를 낳던 날은 겨울이었다.
조완메이는 진통에 시달리며 침대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사납게 빛났다. 옆에는 조완리가 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다. 조완리의 손에는 언니의 손톱이 깊게 박혀 피가 났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힘내, 언니. 끝났어. 거의 다 됐어.”
조완리가 목이 메어 외쳤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조완메이는 아기를 가슴에 안았다. 작고 따뜻한 덩어리였다. 그녀는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샤오톈.”
그녀가 아기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왕 사장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소식은 저택을 순식간에 휩쓸었다. 변호사가 달려왔고, 서류가 오갔다. 유언장이 공개되었을 때, 그 내용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왕 사장은 모든 재산을 조완메이와 조완리에게 남겼다.
변호사가 떠난 후, 두 자매는 거실에 서 있었다. 조완메이는 팔에 샤오톈을 안고 있었고, 아기는 포대기에 싸여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변호사가 차를 타고 저택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차가 점점 멀어져 사라질 때까지.
바람이 창문을 스치며 지나갔다. 저택 안은 고요했다.
조완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자유야.”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구분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조완메이는 아기를 더 꼭 안았다. 그녀는 아기의 숨소리를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응. 자유야.”
그러나 그 자유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야 얻어진 것이었다. 그 대가는 그들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앞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아 있을 것이다.
창밖에서 저녁 노을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저택의 거실까지 스며들어, 세 사람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췄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한 신호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가슴속에는 지울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그림자는 앞으로도 계속 그들을 따라다닐 것이다.
조완리가 천천히 조완메이에게 다가와 샤오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이 조심스럽게 아기의 볼을 스쳤다.
“우리가 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그녀의 질문은 허공에 떠돌았다.
조완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아기를 바라보며, 깊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날 밤, 두 자매는 아기와 함께 처음으로 편안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들기 전, 조완메이는 한 가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우리의 자유는 이제 시작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