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소청은 숨을 죽였다. 심장이 너무 요란하게 뛰어서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뒤쪽 골목에서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원수 가문의 자객들이었다. 확실했다.
그녀는 담벼락에 등을 밀착한 채 손가락으로 거친 벽돌 표면을 더듬었다. 손바닥은 땀으로 미끌거렸다. 저들이 잡으면 죽음뿐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소가는 이미 그녀를 버렸다. 더 이상 가문의 귀한 딸이 아니라, 쫓기는 신세일 뿐이었다.
발소리가 멈췄다. 이내 나직한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이쪽이다. 반드시 찾아라.”
소청은 입술을 깨물었다. 피 맛이 혀끝에 번졌다. 그 순간, 눈앞에 낡은 트럭 한 대가 보였다. 가문의 문장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그 트럭을 알았다. 노예를 수송하는 차량이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업 중 하나였다.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소청은 달렸다. 트럭 뒤쪽 적재함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녀는 쇠손잡이를 잡아당기고 몸을 던져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어둡고 좁은 공간이었다. 썩은 짚과 땀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였다.
잠시 후, 엔진이 울렸다.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퀴 아래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가 둔하게 울렸다. 소청은 눈을 감았다. 몸이 덜컹거릴 때마다 갈비뼈가 아팠다. 그녀는 손을 뻗어 벽면을 더듬었다. 철창처럼 차가운 금속이었다. 이 안에 갇혔다는 사실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의식이 흐려졌다. 탈진한 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어둠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소청은 누군가의 손에 끌려나오는 듯한 감각에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자 형광등의 흰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온몸이 무거웠다.
“일어나라. 여기가 어딘지 알고 싶지?”
낯선 목소리였다. 거칠고 무뚝뚝한 어조. 소청은 간신히 목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콘크리트 벽, 녹슨 철문, 그리고 회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 하나.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입술을 떼었다. 목이 타는 듯했다.
“여긴… 어디…?”
남자는 코웃음 쳤다.
“노예 섬이다. 모르고 온 건 아니겠지?”
소청의 등골이 오싹했다. 노예 섬. 소문으로만 듣던 곳이었다. 가문에서 반대파를 처단하거나 빚을 진 자들을 보내는 곳. 그곳에서는 인간이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나는 소가의…”
“소가? 여기선 그런 거 소용없어. 너는 새로 잡혀온 노예야. 그걸로 끝이다.”
남자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 일으켰다. 소청은 비틀거리며 섰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또 다른 인영이 철문 너머로 다가왔다. 키가 크고 날카로운 눈매의 여자였다. 검은 교관복을 입고 허리에 채찍을 차고 있었다.
“아리 교관님.”
작업복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교관 아리는 소청을 훑어보았다. 그 시선은 마치 물건을 평가하는 듯했다.
“새 녀석?”
“예. 수송차에서 나왔습니다.”
아리가 한 걸음 다가섰다. 채찍 끝이 바닥에 닿아 끌리는 소리가 났다.
“이름은?”
소청은 입을 열려다가 멈췄다. 여기서 진짜 이름을 밝히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 소청입니다.”
“소청? 듣보잡 성씨군. 어쨌든, 여기 규칙은 간단해. 말을 잘 듣고, 훈련을 따라 하고, 도망치려 들지 마. 어기면 죽어.”
아리는 돌아서서 철문 쪽으로 걸어갔다. 작업복 남자가 소청의 어깨를 밀었다.
“움직여. 너 방 배정받아야 하니까.”
소청은 발을 끌며 따라갔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다른 노예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은 모두 초췌하고 지쳐 있었다. 어떤 이는 벽에 기대어 죽은 듯 앉아 있었고, 어떤 이는 채찍 자국으로 뒤덮인 팔을 드러낸 채였다.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소가의 딸로서가 아니라, 노예로서.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
방은 좁고 어두웠다. 창살 하나 없는 콘크리트 상자였다. 바닥에는 낡은 매트리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소청은 그 위에 주저앉았다. 손이 떨렸다. 그녀는 두 손을 마주 쥐고 꽉 눌렀다.
생존. 그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그리고 언젠가, 이 족쇄를 끊을 날이 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