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건 황제 이풍은 강남의 봄을 만끽하며 말을 타고 있었다. 미복 순찰이라 수행원도 없이 오직 한 필의 백마만이 그의 곁을 지켰다. 푸른 산과 맑은 물, 새들의 지저귐이 어우러진 풍광에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궁궐의 답답한 담장을 벗어나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산길을 따라 말을 달리던 이풍은 갑자기 길목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푸른빛이 감도는 가느다란 뱀이 풀숲 사이로 미끄러지듯 나타나 말의 앞발을 향해 치솟았다. 백마가 놀라 힘차게 뒷발질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풍은 고삐를 힘껏 당겼으나 말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워! 워!"
그의 외침도 소용없었다. 백마는 미친 듯이 산길을 질주했고, 급커브를 돌던 순간 발이 헛디뎠다. 이풍은 안장에서 튕겨져 나가 허공을 가르며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몸이 덩굴과 나뭇가지를 스치며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몇 번이고 부딪히며 충격이 완화되었고, 마침내 두꺼운 이끼가 깔린 땅에 부드럽게 안겼다.
이풍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의식이 흐릿해지며 몸이 천근처럼 무거워졌다.
그때, 길가의 작은 오솔길을 따라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린위팅은 장에서 장작과 채소를 사서 지게에 지고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에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걷던 그녀는 길옆 수풀 속에 무언가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린위팅이 지게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젊은 남자가 바위 위에 엎드려 있었다. 옷차림이 고급스러웠다. 비단 두루마기에 금실로 수놓은 용 무늬가 선명했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 사람, 보통 귀족이 아니군."
린위팅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남자의 옷깃 사이로 손을 넣어 더듬었다. 차가운 촉감이 손끝에 닿았다. 옥패였다. 꺼내어 살펴보니 한쪽에는 구름을 휘감은 용이 새겨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뚜렷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황실의 물건임이 분명했다.
"이 옥패, 용과 풍자가 새겨져 있으니... 설마 황자나 대신의 아드님인가?"
린위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남편을 잃고 외로운 과부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이런 귀한 인연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이풍을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남자의 체구가 워낙 커서 쉽지 않았다. 린위팅은 잠시 생각한 후 마을로 달려가기로 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한 그녀는 힘센 농부 몇 명을 불렀다.
"여보게들, 산길에 누군가 쓰러져 있어. 나 좀 도와주게."
농부들이 그녀를 따라 산길로 올라갔다. 이풍을 발견한 그들은 깜짝 놀라며 허둥지둥 그를 들어 올렸다. 린위팅의 집은 마을에서 가장 큰 호화 주택이었다. 고인이 된 남편이 남긴 재산으로 지은 넓은 집이었다.
"이리로 모셔라. 내 객실에 눕히자."
린위팅은 명령하듯 말하며 앞장섰다. 농부들이 이풍을 객실의 넓은 침상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린위팅은 그들에게 은전 몇 닢을 건네며 수고했다고 인사했다.
"자, 이제 모두 가 보게. 내가 돌볼 테니."
농부들이 떠나자 린위팅은 문을 닫고 이풍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젊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굵은 눈썹과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이 인상적이었다. 가슴께가 고르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듯했다.
린위팅은 그의 옷을 벗기며 상처를 확인했다. 곳곳에 멍이 들고 찰과상이 있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그녀는 약초를 갈아 상처에 바르고 깨끗한 붕대로 감아주었다.
"이 귀한 분, 어디서 오셨을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녀는 다시 옥패를 꺼내 살펴보았다. 그녀의 경험으로 보아 이는 황실의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황자나 대신의 아들이 분명했다. 그녀의 마음속에 어떤 계략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