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아는 숨을 죽이며 지하실 입구 앞에 섰다. 어두컴컴한 복도 끝에서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절대 이곳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그럴수록 더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마치 금단의 과일처럼 달콤한 유혹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이건 그냥 한 번 구경만 하는 거야.”
월아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콘크리트 벽은 차갑고 축축했고, 공기 중에는 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그녀의 발걸음마다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좁은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몇 개의 문이 보였다. 대부분 잠겨 있었고, 월패드에는 접근 권한이 없다는 메시지만 떠 있었다. 그런데 복도 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다른 문들과 달리 표면이 매끄럽고 반사되는 재질로 만들어진 문이었다. 문 손잡이도 없고, 열쇠 구멍조차 보이지 않았다. 벽과 완벽하게 일체화되어 마치 문이 아닌 듯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여긴 뭐지?”
월아는 손을 내밀어 문을 살짝 밀어 보았다. 예상과 달리 문은 미끄러지듯 옆으로 열렸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방 안은 충격적이었다. 흰색 타일로 덮인 작은 방, 중앙에는 수술대처럼 보이는 침대가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온갖 의료 기기와 모니터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섬뜩한 것은 벽 한쪽에 줄지어 서 있는 유리관들이었다. 각 유리관 안에는 연한 액체와 함께 인체와 비슷한 형체가 떠 있었다. 그 형체들은 마치 인형처럼 정지되어 있었지만,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뭐야?”
월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순간, 발밑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동시에 방 안의 모든 조명이 붉게 변하며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무단 침입 감지. 진정제를 투여합니다.”
기계음이 냉정하게 울려 퍼졌다. 월아는 벽으로 몸을 웅크렸지만 이미 늦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작은 노즐에서 투명한 가스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숨을 참으려 했지만, 가스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눈앞이 흐려지고 몸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아... 안돼...”
월아는 의식을 잃어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마지막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유리관 속 형체들이 희미하게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월아는 둔탁한 통증과 함께 의식을 되찾았다. 눈을 뜨자 어둠이 그녀를 감쌌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단단한 표면에 등이 밀착되어 있었고, 손목과 발목이 묶여 있었다.
“여긴... 어디지?”
그녀가 중얼거렸지만 입에서 나온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주변을 살펴보려고 고개를 돌리자, 자신이 벽에 수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전시된 표본처럼 팔과 다리가 벌어져 고정되어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월아는 발버둥 쳤지만, 묶인 끈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 순간,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죽였다.
“오늘 신상품이 들어왔어? 상태는 괜찮아?”
“응, 얼굴도 예쁘고 체형도 완벽해. 이번 VIP 고객이 만족할 거야.”
두 남자의 대화가 들렸다. 그들의 말에 월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신상품? VIP 고객?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여보세요! 나는 사람이에요! 월가의 딸이라고요!”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그녀의 턱을 잡고 빛을 비추며 살폈다.
“와, 진짜 예쁘다. 피부도 좋고. 적절히 교육만 시키면 최고의 상품이 되겠어.”
“그래, 이번 고객은 특별하니까 각별히 준비해야 해.”
그들은 마치 물건을 평가하듯 월아를 훑어보더니 이내 자리를 떴다. 문이 닫히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월아는 눈물을 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녀는 지금 벽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가구나 장식품처럼. 아버지의 사업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기절하기 전에 했던 행동이 떠올랐다. 자신이 벽 한쪽에서 아버지의 시험관 샘플과 함께 있는 기계팔을 발견했을 때, 무심코 손을 댔다. 그때 미세한 전류가 흐르면서 AI 시스템이 그녀를 인식한 것이다. 가족의 권한이 있는 개인은 기본적으로 건물 내 모든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빌딩 AI. 연결해.”
월아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몇 초 후, 벽면에서 미세한 소리가 났다.
“월아 님, 안녕하십니까. 현재 상황을 분석 중입니다.”
기계음이 냉정하게 울려 퍼졌다.
“지금 이 자리에서 풀어줘. 권한을 사용할게.”
“권한 확인. 현재 상황에 대한 명령 실행을 위해 기본 보호 로직을 활성화합니다.”
벽면의 고정 장치가 해제되기 시작했다. 월아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츠리며 벽에서 내려왔다. 발이 땅에 닿자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주변 상황을 모니터링합니다. 현재 경로에 직원이 없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월아는 AI의 안내를 따라 어둠 속을 걸었다. 복도는 여전히 적막했고, 그녀의 발걸음만이 메아리쳤다. 다시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오자, 찬란한 햇살이 그녀를 반겼다. 마치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녀의 가슴속에는 불안과 함께 이상한 흥분이 맴돌았다. 그 금지된 공간, 그곳에서 본 것들, 그리고 자신이 상품으로 오인받은 사실이 그녀의 상상을 자극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월아는 중얼거리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그녀를 휘감았다.
시녀가 조용히 다가와 문 앞에 섰다. 그녀는 월아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가씨?”
월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할 뿐이야.”
시녀는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월가의 어두운 면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월아에게서는 상처보다 오히려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마치 깨어난 야수처럼, 위험한 빛이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