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아는 발끝을 살짝 들었다.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복도 끝 비상계단으로 다가갔다. 아버지는 오늘 일본으로 출장 갔다. 집에는 그녀와 시녀뿐이었다. 바로 지금이었다.
“월아 아가씨, 지하실은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시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월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시녀가 반드시 뒤따라올 거라는 것을. 하지만 오늘만큼은 멈출 수 없었다. 몇 달째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버지가 그토록 철통보안을 유지하는 공간. 가족 기업의 핵심 연구소라는 말만 있을 뿐 아무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비상계단은 차갑고 어두웠다. 비상등만 희미하게 깜빡였다. 한 층, 두 층, 세 층. 월아는 숨을 고르며 내려갔다. 지하 1층, 지하 2층... 드디어 지하 3층 표지판이 보였다. 철문 앞에 서자 손바닥이 땀으로 젖었다.
“권한 인증이 필요합니다.”
AI의 차가운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월아. 월가 직계 혈통. 생체 인증을 진행합니다.”
그녀는 오른손을 스캐너에 갖다 댔다. 몇 초의 침묵.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인증 완료. 월아 님, 환영합니다.”
철문이 무겁게 열렸다. 어두운 복장이 펼쳐졌다. 형광등이 하나둘 켜지며 흰 벽과 무균 실험실이 드러났다. 월아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유리 너머로 수많은 기계와 액체가 담긴 탱크가 보였다. 무엇을 연구하는 걸까? 약? 아니면 무기?
복도 끝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일반적인 연구실 문보다 작고 낮았다. 문고리 대신 손바닥 모양의 홈이 파여 있었다. 월아는 망설였다. 분명히 이곳은 더 깊은 비밀이 숨겨진 곳이었다. 하지만 발이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손바닥을 홈에 밀어 넣었다.
“추가 인증이 필요합니다. 월부 회장의 승인 코드를 입력하십시오.”
AI가 말했다. 월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코드를 몰랐다. 하지만 문을 열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었다. 그녀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아버지의 열쇠 카드를 꺼냈다. 어젯밤 서재에서 몰래 가져온 것이었다.
“예비 인증 수단 감지. 진행합니다.”
문이 열렸다. 안은 완전히 달랐다. 연구실이 아니었다. 좁은 복도, 양쪽에 작은 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벽은 두꺼운 철판이었고, 문마다 전자 잠금장치가 붙어 있었다. 어떤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 낮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월아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이건... 뭐지?
한 방 안에 젊은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은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고, 몸은 가느다란 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녀는 월아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주사 마비 상태. 의식은 있지만 움직일 수 없음.”
AI가 무미건조하게 설명했다. 월아는 입술을 떨었다. 아버지가 이런 짓을? 그녀는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복도 끝, 가장 깊숙한 방이 눈길을 끌었다. 문이 특별히 컸다. 호기심과 공포가 뒤섞여 그녀를 밀어붙였다.
그 방 앞에 섰을 때,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안은 벽돌로 쌓인 방이었다. 흡사 감옥 같았다. 벽에는 여러 개의 금속 고리가 박혀 있었고, 바닥은 부드러운 매트로 덮여 있었다. 한쪽 벽에는 길고 가느다란 기계 팔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정체 모를 장치가 있었다. 사람을 고정시키는 틀처럼 보였다.
월아는 뒤로 물러섰다. 너무 늦었다. 문이 닫혔다. 덜컹.
“오류. 미승인 침입자 감지.”
AI의 목소리가 긴박하게 바뀌었다. 동시에 천장에서 하얀 연기가 분사되기 시작했다. 달콤한 냄새. 월아는 재빨리 입을 막았지만 이미 숨을 들이마신 후였다. 무릎이 풀렸다. 몸이 축 처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의식이 서서히 사라졌다.
언제였을까. 한참 후, 찬 공기가 얼굴을 스치며 정신이 들었다. 월아는 눈을 떴다. 천장, 형광등.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목, 발목, 허리, 목까지 무언가에 감겨 있었다. 벽에 매달린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벽면의 금속 고리에 사지가 묶여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옷은? 옷은 대부분 벗겨졌다. 얇은 속옷만 남아 있었다.
“이번 신상품은 품질이 괜찮은데?”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월아는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목까지 고정되어 있었다. 시야 끝에 작업복을 입은 직원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월아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누가 반입했지? 등록 안 된 것 같은데. 됐어, 일단 써보자.”
무슨 소리지? 월아는 입을 열려고 했지만 혀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취제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었다. 직원이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리모컨 같았다. 버튼을 누르자 벽에서 기계 팔이 내려왔다. 길고 가느다란 금속 막대에 여러 개의 센서가 달려 있었다. 월아의 눈이 커졌다.
“처녀는 특히 귀해. 몸값이 두 배야.”
직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기계 팔을 조작했다. 팔이 월아의 허벅지 사이로 다가갔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닿았다. 월아는 온몸이 긴장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만 흘러내렸다.
직원이 무언가를 조정했다. 기계 팔의 끝부분이 분리되어 작은 탐침이 드러났다. 월아는 이를 악물었다. 다음 순간, 찌르는 듯한 고통이 골반에서 치밀어 올랐다. 비명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숨소리만 새어 나갔다. 기계가 움직였다. 무언가가 찢기고, 이물감이 밀려 들어왔다. 피가 흘렀다. 따뜻한 액체가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직원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리모컨을 주머니에 넣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혼자 남겨졌다. 월아는 눈을 감았다. 몸이 떨렸다. 고통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이상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구역질 나는 쾌감. 아니, 그건 아니야. 그렇게 느끼면 안 돼. 하지만 몸이 반응했다. 그녀는 자신이 음부를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젖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혐오감이 뒤섞여 뇌리를 스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월아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AI. 건물 관리 AI. 그녀는 갑자기 떠올랐다. 자기 권한이 남아 있다는 것을. 힘겹게 입을 열었다.
“AI... 나를 풀어줘... 명령이야.”
“음성 인식 완료. 월아 님, 개인 권한 확인. 현재 상태가 위험 등록되어 있습니다. 보호 로직 작동. 해제 절차를 시작합니다.”
기계 팔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그녀의 몸에 연결된 밴드를 하나씩 풀었다. 손목, 발목, 허리, 목. 마지막 밴드가 풀리자 월아는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무릎이 떨렸다. 피가 바닥에 흥건히 고였다. 속옷은 찢겨져 나뭇조각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났다. 벽을 짚고 간신히 버텼다.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뜨거운 무언가가 타올랐다. 분노? 아니야. 그건... 흥분이었다. 금기를 넘어선 쾌감. 아버지의 금단의 영역을 침범한 대가. 하지만 그 대가가 이렇게 달콤할 줄은 몰랐다.
월아는 비틀거리며 방을 나왔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그녀는 생각했다. 오늘 일은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아버지가 알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동시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끔찍하면서도 짜릿한 경험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꼬리를 물었다.
거실로 올라왔을 때, 시녀가 다가왔다. 그녀는 월아의 상태를 보자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가씨, 다친 곳이 있으신가요?”
“괜찮아. 넘어졌을 뿐이야.”
월아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시녀가 더 묻기 전에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봤다. 눈은 충혈되었고, 입술은 피가 말라붙었다. 하지만 입가에 이상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오늘 밤, 꿈에 그 지하실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과 쾌감이 다시 그녀를 찾아올 것이다. 월아는 자신을 꼭 안았다. 몸이 아직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떨림이 두렵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