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은 아직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현립 고등학교 운동회의 하이라이트, 여자 100미터 결승전이 막 끝난 참이었다. 아리는 숨을 몰아쉬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가슴이 터질 듯 뛰었지만, 그건 달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머릿속은 텅 비고, 오직 바람을 가르는 감각만이 남아 있었다. 귀에 익은 환호성이 점점 크게 들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확인했다. 12초 38. 올해 자신의 최고 기록이었다.
"아리야! 또 1등이야!"
관중석에서 친구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리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트랙을 천천히 걸었다. 땀에 젖은 운동복이 다리에 착 달라붙었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가운데, 그녀는 자신의 긴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매끈하게 뻗은 다리, 탄탄한 허벅지, 단단한 복근. 단거리 선수로서 이보다 완벽한 몸은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시상식은 운동장 중앙에 마련된 간이 무대에서 열렸다. 아리는 가장 높은 단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교장 선생님의 축하 인사가 이어지는 동안, 아래에서 박수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녀는 챔피언이었다. 이 학교에서 가장 빠른 여자였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순간, 운동장 끝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심에는 같은 반 친구인 미유키가 서 있었다. 미유키는 치어리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박수를 치며 팔을 올릴 때마다, 상체가 출렁였다. 유니폼 위로 도드라진 풍만한 곡선이 아리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아리의 미소가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넉넉한 운동복 안은 거의 평평했다. 땀에 젖은 천이 납작한 가슴에 밀착되어 오히려 그 부재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메달의 무게가 갑자기 납덩이처럼 느껴졌다.
'챔피언이면 뭐 어쩌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목에 걸린 금메달을 손으로 감싸쥐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무대 아래에서 환호하는 학생들 사이로 미유키가 다시 보였다. 이번에는 몸을 기울여 옆 친구와 속삭이고 있었다. 그 동작마저 우아하고 여성스러웠다.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아리는 서둘러 무대를 내려왔다.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뒤로한 채 곧장 체육관 뒤편에 있는 탈의실로 향했다. 복도는 조용했고, 먼지 낀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잠갔다.
탁, 탁, 탁.
형광등이 깜빡이며 켜졌다. 좁고 습한 탈의실 안에는 락커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벽 한쪽에는 전신 거울이 걸려 있었다. 아리는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마주 보았다. 키 168cm에 균형 잡힌 몸매, 긴 다리, 날렵한 허리선.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단 하나, 가슴만 빼면.
그녀는 천천히 운동복 상의를 벗었다. 스포츠 브라가 드러났다. 거울 속 자신의 가슴은 거의 구릉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완만했다. 아리는 손을 들어 가슴께를 살며시 눌러보았다. 손바닥 아래로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 심장은 트랙 위에서 폭발적인 힘을 내는 엔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느끼는 것은 오직 텅 빈 공허함뿐이었다.
'조금만 더 컸으면...'
속삭임이 탈의실의 정적을 깼다. 그녀는 한 손으로 자신의 평평한 가슴을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허공에 미유키의 실루엣을 그렸다. 미유키의 체형은 이렇지 않았다. 그녀는 걸을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풍만함을 가졌다. 교복 셔츠가 터질 듯 팽팽하게 당겨지는 그 곡선,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그 무게감.
아리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떨렸다. 달리기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그녀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은 챔피언의 것이 아니라, 뭔가 중요한 부분이 결핍된 미완성 조각 같았다.
"아리야, 여기 있었구나!"
문이 벌컥 열리며 친구 임열이 들어왔다. 아리는 깜짝 놀라 얼른 상의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린웨의 밝은 얼굴은 이미 그녀의 표정을 읽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아."
임열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아리는 상의를 가슴에 안은 채 잠시 머뭇거렸다.
"아냐,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닌 얼굴이 아닌데?"
임열은 아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단호함과 동시에 부드러운 위로가 깃들어 있었다. 아리는 결국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있잖아, 미유키... 정말 예쁘지 않아?"
임열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녀는 아리의 시선이 거울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나는... 왜 이렇게 납작한 거지?"
아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는 분노, 슬픔, 그리고 오랜 세월 쌓아온 컴플렉스가 뒤섞여 있었다.
"미유키처럼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몸매를 가지면... 사람들이 나를 달리 보겠지. 단순히 빠르기만 한 애가 아니라, 진짜 여자로 봐주겠지."
탈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임열은 아리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리야, 너는 챔피언이야. 이 학교에서 가장 빠른 여자라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장점을 가졌잖아."
"하지만..."
"챔피언의 장점이 뭔데? 네 다리, 네 폐활량, 네 정신력. 그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미유키가 부럽다고? 그녀도 너처럼 달릴 수는 없어."
아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친구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이 갈망은 논리로 설득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몸을 다시 바라보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과 대조되는 평평한 가슴. 이 간극이 그녀의 모든 자존감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임열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세상에는 외모보다 중요한 게 훨씬 많아."
하지만 아리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그녀는 운동복을 다시 입으며 생각했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면, 왜 이렇게 괴로운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두 달 후, 여름방학을 맞아 린웨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산기슭의 신비한 상점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예 이모라는 여인과의 만남이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게 되리라는 것 역시.
지금은 그저 체육관 탈의실 안에서, 챔피언은 자신의 작은 가슴을 바라보며 말할 수 없는 불만을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