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햇살이 카페 유리창을 비스듬히 뚫고 들어와 나무 테이블 위에 황금빛 무늬를 그렸다. 허약청은 커피 카운터 뒤에 서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그녀는 프렌치 티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부드러운 크림색 원단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깊게 파인 V넥 라인이 가느다란 쇄골을 드러냈다. 허리선은 매끄럽게 조여져 그녀의 늘씬한 실루엣을 강조했고, 주름이 잡힌 치마는 무릎 위까지 올라와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위에 두른 빈티지 브라운 앞치마는 그녀에게 더없이 잘 어울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허약청은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았다. 이수현이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나른하면서도 달콤했다. "오랜만이네요. 저번 주에는 안 오셨죠?"
이수현이 카운터 앞에 앉았다. "네, 좀 바빴어요. 그래도 오늘 꼭 들르고 싶었어요."
허약청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손님들을 향한 무심한 듯한 태도 속에도 세심한 관심을 숨기고 있었다. 특히 이수현이라는 손님에게는 더욱 그랬다.
"오늘은 무엇을 드릴까요?"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추천해 주세요."
"좋아요. 제가 특별히 한 잔 내려 드릴게요."
허약청은 천천히 움직였다. 게으른 고양이처럼 느릿느릿하면서도, 모든 동작에는 우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서랍에서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를 꺼냈다. 고소하면서도 은은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이 원두는 제가 지난주에 작은 로스터리에서 직접 가져온 거예요." 그녀가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으며 말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일하는 할아버지가 손수 원두를 볶더라고요."
그녀는 분쇄된 원두를 필터에 붓고,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담았다. 물이 공기 중에 살짝 섞이며 은은한 증기를 피워 올렸다.
"커피를 내릴 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요?" 그녀가 물으며 첫 번째 물을 원두 위에 부었다. 물방울이 원두를 적시며 팽창시켰다.
"뭔데요?"
"기다림이에요." 그녀가 두 번째 물을 천천히, 동심원을 그리며 부었다. "너무 급하게 하면 커피가 쓰고 떫어져요. 적당한 온도, 적당한 시간, 그리고 인내심. 그게 좋은 커피를 만드는 비결이죠."
커피 방울이 필터 아래로 떨어져 유리병에 고이기 시작했다. 그 향기가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달콤하고, 산뜻하고, 약간은 꽃 같은 향기.
"와, 정말 좋은 향기예요." 이수현이 감탄했다.
"그렇죠?" 허약청이 그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저는 이 순간이 제일 좋아요.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모든 게 멈춘 것 같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녀는 잠시 멈추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뭐요?"
"아니에요."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커피 잔을 받쳐 들었다. 완성된 커피를 그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손등을 스쳤다. 의도적인 듯, 우연한 듯.
"자, 드셔 보세요."
이수현이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와... 정말 부드럽고 달콤하네요. 과일향이 나는 것 같아요."
"블루베리랑 복숭아 향이 은은하게 퍼져요." 그녀가 팔짱을 끼고 카운터에 기대어 앉았다. 그 자세가 그녀의 쇄골 라인과 허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처음에는 달콤하게 느껴지다가, 마지막에는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게 매력이에요."
"커피도 사람도 비슷한 것 같아요." 허약청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달콤하게 다가오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진가를 알게 되는..."
이수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느긋한 편이에요." 그녀가 계속 말했다. "급한 사람은 커피보다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거나, 아예 차를 마시죠. 그런데 당신은... 항상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시더라고요.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인가 봐요."
"그렇게 보이나요?"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그렇고... 와서 말없이 조용히 커피를 마시다 가는 손님들도 많지만, 당신은 항상 저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잖아요. 그게 저는 좋아요."
그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이수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앞으로도 자주 와도 될까요?"
"당연하죠." 허약청이 카운터에 손을 짚고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제가 커피를 내려 드릴게요. 언제든지요."
그의 눈과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게으르면서도 달콤한 목소리가 그의 마음을 간질였다.
"오늘은 제가 좀 더 특별한 걸 준비했어요." 그녀가 뒤돌아 냉장고에서 작은 접시를 꺼냈다. "직접 만든 레몬 타르트예요. 커피랑 찰떡궁합이거든요."
그녀가 타르트를 그의 앞에 놓았다. 새콤달콤한 레몬 향이 커피 향과 어우러졌다.
"이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녀가 그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저는 이 타르트를 만들 때 항상 기분 좋은 일을 생각해요. 그러면 그 기분이 타르트에 배인다고 믿거든요."
"그럼 이 타르트에는 어떤 기분이 배었나요?"
허약청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비밀이에요. 직접 맛보고 맞혀 보세요."
이수현이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부드러운 필링이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혀끝을 감쌌다.
"달콤하면서도 상큼하네요. 그리고... 뭔가 기대되는 기분?"
"정답이에요." 허약청이 기쁘게 웃었다. "오늘 만날 사람이 있다는 기대감을 담았어요. 그리고 그 기대가 현실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요."
그녀의 말에 이수현은 잠시 당황했다. 그녀의 눈빛은 너무나도 투명하고 솔직했다.
"저는 항상 커피를 내릴 때 생각해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이 커피를 마실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가 잠시 멈추었다. "...그 사람과 이 자리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하게 될까 하고."
그녀의 시선이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됐네요."
이수현은 가슴 한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허약청의 게으르면서도 섬세한 손길, 그녀가 건네는 모든 말과 행동이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도..."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오면 항상 편안해져요. 그리고 허약청 씨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녀의 얼굴에 새빨간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쇄골 라인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럼 앞으로도 자주 와 주세요." 그녀가 조금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제가 항상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달콤한 약속이 담겨 있었다.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며 그녀의 미소를 더욱 환하게 만들었다.
이수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커피 한 잔에 이렇게 많은 온기가 담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커피숍의 주인장이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마음이 그녀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허약청은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 새로운 원두를 준비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여전히 게으르고 나른했지만, 그 안에는 확실한 의도가 있었다. 그녀는 이 남자를 붙잡고 싶었다. 이 평화롭고 따뜻한 순간을 영원히 이어가고 싶었다.
"오늘 커피는 제가 서비스에요." 그녀가 다시 그의 앞에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대신, 다음에 오실 때는..."
"뭘요?"
"당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녀가 나른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에 대해 아직 잘 몰라요. 하지만 알고 싶어요.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그녀의 제안은 단순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깊었다. 이수현은 그녀의 눈에서 진실함을 읽었다.
"좋아요." 그가 대답했다. "약속할게요."
허약청이 기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여름날의 산들바람처럼 상쾌하고, 가을 햇살처럼 따뜻했다.
커피 향이 여전히 공기 중에 감돌고 있었다. 그 향은 그들의 대화처럼 은은하게, 그리고 달콤하게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