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성의 사대가문은 누구나 아는 일가, 유가, 장가, 이가였다. 그중에서도 일가는 검술과 무공으로 이름을 떨쳤고, 유가는 상업과 학문으로 세를 키웠다. 장가는 권력과 야망을, 이가는 기밀과 지혜를 자랑했다. 이 네 가문은 청양성의 중심을 이루며 서로 얽히고설켜 살아가고 있었다.
유가의 천금 류여연은 어릴 적부터 일가의 장남 임일진과 함께 자랐다. 두 집안은 오래전부터 가까운 사이였고, 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약혼을 맺었다. 류여연은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서 처음 들었을 때,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임일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일진 오라버니, 오늘도 무술 연습하셨어요?”
류여연이 일가의 대문 앞에서 임일진을 기다리며 물었다. 그는 허리에 찬 검을 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응, 아버지께서 새로운 검법을 가르쳐 주셨어. 여연이, 네가 구경하러 오지 않을래?”
“네! 당연히 가고 싶어요.”
류여연은 그의 손을 잡고 일가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제자들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임일진이 중앙에 서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는 검을 빼 들고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류여연은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처럼 가벼우면서도 번개처럼 날카로웠다. 검끝이 허공을 갈랐고, 그의 몸은 하나의 선처럼 매끄럽게 움직였다. 주변에 있던 제자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연습이 끝나자, 류여연은 박수를 치며 달려갔다.
“정말 대단하세요, 오라버니! 이번 가족 무술 대회에서는 꼭 우승하실 거예요.”
“여연이가 그렇게 말해주니 기운이 나는구나.”
임일진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은 부드러웠고, 눈빛은 따뜻했다. 류여연은 그 시선을 받으며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오라버니,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시면 제가 직접 만든 팔찌를 선물로 드릴게요.”
“팔찌? 여연이가 직접 만들었다니, 정말 기대된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류여연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반드시 예쁜 팔찌를 만들어서 그의 손목에 채워 주리라고.
며칠 후, 가족 무술 대회가 열렸다. 청양성의 사대가문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대회장은 수많은 구경꾼으로 북적였다. 류여연은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임일진의 모습을 찾았다. 그는 대회장 한쪽에서 조용히 검을 닦고 있었다.
대회가 시작되자, 각 가문의 젊은 무사들이 실력을 겨뤘다. 임일진은 차례가 되자 가볍게 대회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상대는 장가의 도련님, 장량이었다. 장량은 키가 크고 잘생긴 얼굴을 가진 청년이었지만, 눈빛은 날카롭고 음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임일진, 오늘 네 실력을 제대로 보여줘야 할 거야.”
“장량, 나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임일진은 차분히 검을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검격이 부딪히며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장량은 빠른 공격을 퍼부었지만, 임일진은 그의 움직임을 모두 읽은 듯 피해냈다. 몇 합이 오가자, 임일진이 결정적인 한 수를 넣었다. 그의 검이 장량의 검을 튕겨내며 가슴 앞을 겨누었다.
“네가 졌다.”
임일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장량은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검을 집어 던지고 대회장에서 물러났다. 그 순간, 관중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류여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오라버니, 정말 멋져요!”
임일진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승리는 순식간에 청양성 전체에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가의 장남이자, 유가의 약혼자, 그리고 청양성 최고의 검객. 그의 이름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하지만 그날 저녁, 장량은 자신의 서재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눈에는 분노와 질투가 어려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벽을 내리쳤다.
“임일진… 네가 무슨 수로 여연을 차지하려 드느냐?”
그는 어릴 적부터 류여연을 흠모해 왔다. 그녀의 미소,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모든 것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임일진의 곁에만 있었다. 그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장량의 가슴은 불타올랐다.
“기다려라. 언젠가는 네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주마.”
그는 어둠 속에서 음흉한 계획을 세웠다. 그날 밤, 청양성의 달은 유난히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