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의 흑인 타락
## 제1장: 환생과 기회
뜨거운 여름 태양이 캠퍼스의 플라타너스 잎사귀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리호는 눈을 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숙사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플라스틱 선풍기가 머리 위에서 덜컹거리며 돌아가고, 책상 위에는 낡은 노트북과 흩어진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젊고 매끈한 손, 주름살 하나 없는 손. 거울 속의 얼굴은 스물한 살, 대학 3학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돌아왔구나..."
리호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머릿속에는 전생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기술 기업의 성공, 세 명의 여자친구와의 달콤했던 시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산산조각낸 잭 윌리엄스. 린샤오샤오, 쑤완얼, 허우위신... 그들이 잭에게 세뇌당해 변해가는 모습, 마지막에 자신을 고문하던 그 손길까지.
"이번 생에서는 다를 거야."
리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전생의 기억이 생생했다. 2018년, 바로 이 해에 그는 첫 번째 기술 기업을 시작했다. 인공지능 기반의 개인 비서 앱이었다. 당시 시장은 아직 포화 상태가 아니었고, 적절한 투자만 있다면 성공은 확실했다.
그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청바지에 흰 셔츠, 단정하면서도 젊음이 묻어나는 차림이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리호는 결의를 다졌다.
"이번에는 반드시 지킬 거야. 그들을 잭에게서 지켜낼 거야."
기숙사를 나서며 리호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전생의 연락처가 아직 기억났다. 첫 번째 투자자, 김민준. 지금쯤이면 그가 막 창업 투자에 뛰어들었을 때였다.
전화 연결음이 울렸다.
"여보세요?"
"김민준 대표님, 저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 리호라고 합니다. 대표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리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전생의 경험이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이틀 후, 리호는 강남의 한 카페에서 김민준과 만났다. 김민준은 서른 중반의 젊은 투자자로,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인물이었다.
"학생, 당신의 제안이 흥미롭군요. 하지만 왜 하필 저인가요?"
"대표님은 기술의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으십니다. 다른 투자자들은 단기 수익만 바라보지만, 대표님은 장기적 가치에 투자하시죠."
리호는 노트북을 열어 시연을 시작했다. 전생에 이미 완성했던 프로토타입이었다. 알고리즘의 효율성,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직관성, 확장 가능성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김민준은 점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동안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났을 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초기 투자 3억. 조건은 제가 제시한 대로입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리호는 악수를 청했다. 첫 번째 단계가 성공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한 달 동안 리호는 밤낮없이 일했다. 전생의 경험 덕분에 코드 작성은 훨씬 수월했다. 버그를 피하고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바로 적용할 수 있었다. 팀원 모집도 순조로웠다. 그는 전생에 함께 일했던 인재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들이 아직 다른 곳에 스카우트되기 전에 접촉할 수 있었다.
9월, 개강 시즌이 다가왔다. 리호의 앱 '인사이트'는 베타 버전을 출시했고, 벌써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대학가에서는 리호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스물한 살의 대학생이 3억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어느 날 오후, 리호는 학교 도서관 앞을 지나가다가 익숙한 뒷모습을 보았다. 길게 늘어뜨린 검은 머리, 하얀 피부, 청순한 프로필. 린샤오샤오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잭에게 납치되어 세뇌당하던 모습, 그 아름다운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던 순간들.
"샤오샤오!"
리호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불렀다. 린샤오샤오가 돌아서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호 오빠?"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맑았다. 리호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이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보는 것 같네."
"네, 오빠는 잘 지냈어요? 듣기로는 창업을 했다면서요?"
린샤오샤오의 눈빛에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리호보다 한 살 어렸고, 현재 같은 대학교 2학년이었다.
"응, 잘 지내고 있어. 시간 괜찮으면 커피 한잔 할래? 그동안 이야기할 게 많아."
린샤오샤오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두 사람은 교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리호는 그녀가 좋아하는 카페라떼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녀의 취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오빠,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있었네요."
린샤오샤오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리호는 겨우 감정을 추스렸다.
"당연하지. 너와 함께한 시간들은 다 기억해."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 각자의 대학 생활, 그리고 리호의 창업 이야기까지. 리호는 전생보다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그녀를 대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녀를 지키기 위해.
"샤오샤오, 나랑 다시 만나기 시작할래?"
리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린샤오샤오의 볼이 붉어졌다.
"오빠, 그게... 갑자기..."
"진심이야. 고등학교 때 헤어진 게 후회됐어. 다시 기회를 주겠니?"
린샤오샤오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커피잔 가장자리를 살며시 문질렀다.
"오빠, 나 아직 오빠 마음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요."
리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전생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녀를,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을 반드시 지켜낼 것이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자주 만났다. 리호는 바쁜 창업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그녀와 데이트를 했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고, 주말에는 영화를 보러 가고, 저녁에는 한강에서 산책했다. 전생보다 더 세심하고 더 다정하게 그녀를 대했다.
린샤오샤오도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녀는 리호의 변화를 느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성숙하고, 더 책임감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빠, 요즘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
어느 날 저녁, 한강 벤치에 앉아 있던 린샤오샤오가 물었다.
"당연히 널 사랑하니까."
"그런데 갑자기 너무 잘해줘서 오히려 불안해요."
리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 전해졌다.
"샤오샤오, 나는 이번 생에서 후회하지 않을 거야. 너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지킬 거야. 약속해."
"이번 생이라니요? 오빠 무슨 말을..."
린샤오샤오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리호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 내 말은... 앞으로는 절대 널 놓치지 않겠다는 뜻이야."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달빛 아래 그녀의 얼굴이 아름답게 빛났다.
한편, 리호의 기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었다. '인사이트' 앱은 출시 두 달 만에 다운로드 10만을 돌파했다. 기술 블로그와 IT 뉴스에서도 그의 성공 스토리를 다루기 시작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리호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교수님들은 그의 이름을 아는 학생이 없을 정도라고 농담했고, 후배들은 그를 롤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리호는 교만하지 않았다. 전생의 실패가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11월, 어느 화요일 오후. 리호는 경영학과 세미나실에서 열린 토론 대회에 참석했다. 주제는 '4차 산업혁명과 한국 경제의 미래'였다. 여러 학과의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때, 리호의 시선이 한 여학생에게 꽂혔다. 단정한 교복 차림에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 그녀는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펼쳐나갔다. 바로 쑤완얼이었다.
전생과 달리, 그녀는 아직 잭을 만나지 않았다. 아직 타락하지 않은, 순수하고 냉철한 지성을 가진 그녀였다.
토론이 끝난 후, 리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쑤완얼 씨, 오늘 토론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그녀는 리호를 냉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전생의 쑤완얼처럼, 그녀의 첫인상은 항상 차가웠다.
"리호 씨, 저를 아시나요?"
"물론입니다. 경영학과의 에이스, 그리고 작년 전국 대학생 토론 대회 우승자. 소문으로 많이 들었습니다."
쑤완얼이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리호 씨의 인사이트 앱, 저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꽤 괜찮네요."
"감사합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제 프로젝트에 대해 더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요."
쑤완얼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될 것도 없죠. 내일 오후 3시, 학교 앞 커피숍에서 뵙겠습니다."
리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천천히 그녀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그날 밤, 리호는 기숙사 방에서 홀로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기술 기업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린샤오샤오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있었으며, 쑤완얼과도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잭 윌리엄스. 그 악마 같은 흑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전생의 기억으로는, 잭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내년 봄이었다. 그때까지 준비를 마쳐야 했다.
"잭, 이번 생에서는 네가 당할 차례다."
리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전생의 복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