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금소: 신인의 여체 침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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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문을 열자마자 귀청을 찢는 고성이 신인의 얼굴을 때렸다. "이 빌어먹을 드워프 놈아, 내 작업대에서 뭘 만진 거야! 그거 일급 기밀이야!" 엘프족 기술병인 리리엘이 손에 마법 렌치를 쥐고 테이블을 쾅쾅 두드렸다. 그녀의 길고 하얀 손가락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고, 뾰족한 귀끝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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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소대의 무력한 대장

회의실 문을 열자마자 귀청을 찢는 고성이 신인의 얼굴을 때렸다.

"이 빌어먹을 드워프 놈아, 내 작업대에서 뭘 만진 거야! 그거 일급 기밀이야!"

엘프족 기술병인 리리엘이 손에 마법 렌치를 쥐고 테이블을 쾅쾅 두드렸다. 그녀의 길고 하얀 손가락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고, 뾰족한 귀끝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에서는 드워프족 중화기병 두르간이 두 팔을 가슴에 포개고 비웃고 있었다.

"일급 기밀? 그딴 형편없는 배선이? 네가 고블린 굴에 갔다 온 모양이구나. 노란 선이랑 파란 선이 뒤바뀌어 있었어. 내가 안 고쳤으면 오늘 훈련 때 네 보물 같은 작업대가 폭발했을 거야."

"무슨 상관이야! 그건 내가 설계한 특수 회로라고! 드워프가 뭘 알아?"

리리엘의 고함에 두르간의 수염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의 중갑 부츠가 바닥을 무겁게 내리찍었다.

"뭐라고? 감히 드워프의 장인 정신을 모독해?"

"그만해! 둘 다!"

신인은 재빨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는 간신히 두르간의 어깨를 밀쳤지만, 드워프의 몸은 강철로 주조한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반대로 신인이 그 반동으로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대장, 저 드워프 놈이 먼저 시비를 걸었어요!" 리리엘이 불만 가득하게 소리쳤다.

두르간은 코웃음을 쳤다. "약골 대장은 빠져 있어. 너 없어도 내가 이 뾰족귀 계집애를 혼내줄 수 있어."

신인의 뺨이 순식간에 확 달아올랐다. 그는 뭐라 반박하려 입을 열었지만, 목구멍에서 나온 건 의미 없는 목소리뿐이었다. 맞아, 그는 어쩌면 약골일지도 몰라. 다른 종족들과 비교하면 순혈 인간은 확실히 체력이 약하니까. 그래도 그는 대장이다, 아마도?

"칭호에나 걸맞은 대장이지."

회의실 한구석에서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켄타우로스족 정찰병 웨스턴이 말굽으로 바닥을 초조하게 두드리며 불만 가득한 투로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내 종족은 달리기 위해서는 활짝 트인 초원이 필요해. 그런데 우리 소대는 맨날 지하 병기고에 처박혀 있으니, 대장,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웨스턴 말이 맞아. 그리고 우리 드래곤 뉴트는 따뜻한 환경이 필요한데, 이번 주에만 벌써 잔업을 세 번이나 했어. 내 비늘 색깔이 점점 칙칙해지고 있다고!"

드래곤 뉴트족 돌격병 타르가 자신의 비늘을 만지작거리며 불평을 보태자, 온몸에 난 검은 비늘 사이로 새어 나온 불똥이 바닥에 떨어졌다. 신인은 황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지난주에 새로 산 군화가 또다시 구멍 나는 걸 피했다.

"제발 진정해요! 줄을 서서, 차례대로 말하자고요!"

신인은 최대한 목소리에 힘을 주려 했지만, 믹서기처럼 요란한 회의실에서 그의 목소리는 어린애 울음소리만큼이나 미약했다. 그는 주먹으로 회의 테이블을 두드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손가락 뼈가 굳이 그 난폭한 테스트를 견뎌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장, 이봐요, 대장?"

리리엘이 렌치로 신인의 어깨를 찔렀다. "회의 사회 보는 거예요, 아니면 멍 때리는 거예요? 이 문제, 어떻게 할 거예요?"

신인의 관자놀이가 찌릿찌릿 아파왔다. 그는 뻣뻣한 나무 의자에 앉으며 마른 침을 삼켰다. 눈앞의 이 난장판을 보며, 반 년 전 그 운명적인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이런 구역질 나는 날씨였다. 하늘은 잿빛 납덩이 같았고, 공기는 눅눅했다. 훈련소의 광장에는 각 소대를 선택하기 위해 온 각 종족의 대장들이 가득했다. 그들 중에는 오크 전사, 엘프 법사, 심지어 전신이 빛나는 정령의 모습을 한 대장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확신에 찬 표정으로, 각자 사전에 꼼꼼히 점찍어둔 정예 소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신인만 빼고 모두.

사실 신인은 그날 아침까지 아직 어떤 소대를 선택해야 할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습관이 있었다. 늘 가장 우유부단한 사람이었고,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 문제를 반 친구들이 거의 다 풀 때까지 기다려야만 간신히 펜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어떤 그룹을 선택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도 그는 우물쭈물했다. 결국 모두가 선택을 끝냈을 때, 명부에는 열일곱 번째 소대만이 남아 있었다. 그 특수 소대, 전 종족을 교차 편성한 실험적인 소대 말이다. 신인은 문자 그대로 그 자리로 밀려 들어간 것이었다.

"야, 인간. 너, 정말 이걸 선택한 거야?"

당시 병기고에서 지급 장비를 수령할 때, 관리자로 보이는 드워프 병사가 불가사의한 표정으로 신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신인은 그제야 명부를 제대로 들여다보았다: 드워프 한 명, 엘프 한 명, 켄타우로스 한 명, 드래곤 뉴트 한 명. 그리고 유일한 인간인 그가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을까요?"

"군령은 농담이 아니야!"

드워프는 신인에게 명부를 다시 던져주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 소대는 세 번째 대장인지 네 번째 대장인지... 길어야 석 달 버티면 대단한 거야."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제 겨우 석 달째인데 신인은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갈 지경이었다.

"대장, 또 멍 때리네!"

타르가의 꼬리가 탁자 아래에서 신인의 정강이를 때렸다. 신인은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의실은 순간 조용해졌고, 네 쌍의 눈이 그에게 쏠렸다. 그 눈빛 속에는 조바심, 경멸, 무시 등 온갖 감정이 담겨 있었지만, 대장을 향한 존중만은 전혀 없었다.

"저... 내 생각에는..."

신인은 말을 꺼내려 애쓰며 목청껏 기침을 했다. 그는 회의 안건을 다시 한 번 펼쳐 보려 했지만, 손가락이 심하게 떨려서 종이를 한참 만에야 겨우 펼칠 수 있었다.

"먼저... 첫 번째 안건, 리리엘의 작업대 배선 문제."

"이미 말했잖아요, 그 드워프 놈이 순서를 다 엉망으로 만들었다고요!"

"네 회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니까!"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회의실은 다시금 수라장이 되었다. 신인은 무기력하게 의자에 주저앉으며 안건이 희미하게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문득, 만약 자신이 소대에서 쫓겨난다면 이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지, 아니면 해방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바로 그때, 회의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들어온 이는 버릇없게도 두드리지도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마치 이 작은 회의실의 지저분한 공기가 자신의 털을 더럽힐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듯, 발끝으로 살짝 밀고 들어온 것이었다.

여우족 소녀 금소가 문틈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녀의 불그스름한 여우 귀가 살짝 떨렸고, 금빛 눈동자가 재빠르게 방 안을 훑었다. 모든 사람이 거의 그녀를 주목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그녀는,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우아하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참 시끄럽더라고요, 멀리 복도에서도 잘 들렸어요."

금소의 목소리는 마치 솜에 꿀을 찍은 듯 달콤하고 매끄러웠다. 그녀는 회의 테이블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여우 꼬리를 마치 지휘봉처럼 살랑살랑 흔들었다.

"보니까... 아, 우리 대장님이 또 곤란해하시네요?"

그녀는 신인의 책상 앞에 걸음을 멈추고 몸을 숙여 신인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가까운 거리에서 나는 은은한 살구꽃 향기에 신인의 귀끝이 뜨거워졌다.

"금소, 너 왜 왔어? 오늘 회의에는 네가 없잖아."

신인은 고개를 숙이려 했지만, 그녀의 시선이 마치 자석처럼 그를 사로잡았다. 연락병인 금소는 주둔지 배치에 따라 엄밀히 말하면 이 소대의 정식 대원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늘 귀신같이 제때 나타나 신인이 가장 난처할 때였다.

"그러게요, 내가 왜 왔을까요?"

금소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뾰족한 턱을 톡톡 두드리며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생각났다. 지휘관님 편지를 전하러 왔는데, 보아하니... 아마 지금쯤이면 더 필요하겠네요."

그녀는 품에서 왁스 도장이 찍힌 서류를 꺼내 신인 앞에 살짝 던졌다. 신인이 얼른 펼쳐 보니, 지휘관 특유의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17소대 대장, 반년 내에 소대 내 종족 평가 합격률이 30% 미만일 시, 소대 해체 및 대장 직위 박탈 조치."

신인의 뇌리는 '윙' 하고 울렸다. 손에 든 서류가 곧 천 근의 바위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통지... 왜 네가 전해 주는 거지?"

"아, 지휘관님이 직접 전하라면서요, '반드시 그 골칫거리 새끼 손에 쥐여줘야 한다'고."

금소가 지휘관의 말투를 흉내 내는 모습에 리리엘과 두르간이 동시에 낮게 키득거렸다. 신인의 뺨은 팔팔 끓는 증기기관차처럼 새빨개졌다.

"됐어, 서류 전달은 끝났고, 나는 갈게."

금소가 돌아서서 나가려다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신인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여우 귀가 거의 신인의 귀에 닿을 듯 가까이 다가왔고,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그나저나 대장님, 한 가지 작은 제안이 있는데... 혹시 고려해 보시겠어요?"

"무... 무슨 제안?"

"대리 출전이요."

금소가 한 걸음 물러서며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빛이 그녀의 금빛 눈동자에 비쳤고, 마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반짝였다.

"당신은 대원들을 통솔할 수 없으니, 차라리 다른 종족이 당신을 대신해서 소대장을 맡게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나 같은 사람?"

신인은 어안이 벙벙해져 그녀를 바라보았다. 금소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여우족 여자아이가 인간 남자를 대신해서 소대장을 하려면...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에요. 당신에게 몇 가지... 작은 변화가 필요하죠."

그녀는 '작은 변화'라는 네 글자를 유난히 천천히 말했고, 여우 꼬리가 말을 마친 듯 허리에 살짝 감겼다. 신인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슨 변화 말이야?"

"그건... 다음에 말해 줄게요."

금소는 윙크를 하고는 종잇장처럼 가볍게 회의실 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녀가 신인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잘 생각해 봐요, 대장님.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잖아요?"

문이 쾅 닫혔다. 회의실은 다시 어색한 침묵에 휩싸였다. 신인의 손에 쥔 서류가 미세하게 떨렸고, 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대장님, 그 여우 요괴가 무슨 말을 한 거예요?" 두르간이 수상쩍은 듯 물었다.

신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멍하니 금소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도 저 멀리서, 그 익숙한 여우 소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잘 짜인 연극의 막이 오르기 전, 무대 뒤에서 나는 듯한 낮고 의미심장한 웃음소리 같았다.

후회스러운 선택과 장난꾸러기 종족

열일곱 번째 소대. 그 이름만 들어도 신인의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들었다. 좁은 막사 안,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무 벽 틈새로 스며드는 습기와 발효된 털 냄새가 뒤섞인, 그 특유의 악취. 신인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지만 냄새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귀까지 덮은 이불 위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야, 대장님! 벌써 자는 거야?”

“인간이라 체력이 딸리나 보지?”

“하긴, 우리 꼬리털 하나도 못 당할걸?”

웃음소리가 막사 안을 가득 채웠다. 신인은 이를 악물었다. 꼬리털? 그 따위 말에 일일이 반응하면 끝이 없었다. 그는 애써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때만 해도 몰랐다. 열일곱 번째 소대가 어떤 곳인지.

기억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열일곱 소대? 거긴 어떤 곳인가?”

신인은 당시 상사였던 대대장에게 물었다. 지도 위에 찍힌 작은 점을 보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첫 지휘 임무였다. 비록 비정규 소대였지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디든 가야 했다.

대대장은 그의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음... 특수 종족으로 구성된 소대야. 주로 여우족이고...”

“여우족이요?”

“그래. 전투력은 확실하지. 헌데...”

대대장은 말끝을 흐렸다. 신인은 그 헌데에 귀를 기울였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그저 “잘해 보게”라는 격려와 함께 서류를 건넸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물러났어야 했다. 여우족. 그 이름만으로도 경계했어야 했는데, 어리석게도 '임무'라는 단어에 도취되어 모든 경고를 무시했다.

다음 날 아침, 신인은 기상 나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군화를 신고 서둘러 연병장으로 나갔지만, 이미 소대원들은 한가로이 모여 앉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쪽에서는 털을 고르고, 다른 쪽에서는 작은 기계 장치를 만지작거리며 낄낄댔다. 대열을 갖춘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전원, 집합!”

신인은 목청껏 외쳤다. 군인으로서, 대장으로서 최소한의 규율은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여우족 병사들은 느릿느릿 고개를 돌렸다. 그 중 유난히 하얀 털을 가진 여우족 소녀, 금소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뾰족한 귀를 쫑긋 세우고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대장님, 아침부터 너무 엄한 거 아니에요?”

금소가 느릿하게 일어서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했지만, 그 안에 감춰진 날카로움은 신인의 척추를 타고 올랐다.

“엄하고 말고가 어디 있나! 군인이 기본 규율도...”

“기본이요? 여긴 인간 군대가 아니잖아요.”

금소의 말에 다른 병사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어떤 자는 꼬리로 땅을 치며 웃었다. 신인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금 이 소대의 대장은 나다. 내 명령에 따르는 게...”

“아, 맞다. 대장님이었지. 근데 말이야, 우리 원래 대장 안 세워. 우리끼리 알아서 잘 싸우거든. 그치?”

금소가 뒤를 돌아보자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사이에서도 장난스러운 눈빛이 오갔다.

여우족은 동족조차 놀리는 종족이다. 계급이나 서열 같은 인간의 규칙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신인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는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처음 며칠은 그나마 버틸 만했다. 그들은 대놓고 명령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대신, 더 교묘한 방식으로 신인을 시험했다. 예를 들어, 훈련 중에 갑자기 모든 병사가 사라진다든지. 알고 보면 나무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숨죽여 웃고 있었다. 혹은 식사 시간에 그의 주먹밥 안에 매운 고추를 숨겨 놓는다든지. 매번 걸려들 때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신인의 귀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집합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이 이번에는 일제히 대형을 이루었다. 언뜻 보기에는 완벽한 대열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그들의 표정. 다들 이를 악물고 참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아. 오늘은...”

신인이 말을 맺기도 전에, 가장 앞줄에 섰던 병사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러자 다른 병사들도 하나둘씩,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라, 이건... 신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쓰러진 병사들의 자세가 하나같이 부자연스러웠다. 누가 봐도 일부러 넘어진 모양새였다.

“뭐 하는 짓이야!”

신인이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넘어져 있던 금소가 슬며시 눈을 떴다.

“대장님 지시가 너무 엄해서 다들 힘들어서 그래요. 우리 약한 종족이잖아요.”

순간 주변에서 터져 나온 키득거리는 소리. 이건 완전히 조롱이었다. 신인의 목덜미에 힘이 들어갔다. 약한 종족? 전투 종족으로 악명 높은 여우족이 약하다니.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 감정을 터뜨리면 그들의 장난에 놀아나는 꼴이었다. 신인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오늘 훈련은 취소다. 각자 정비하고 대기해라.”

신인이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번졌다.

“역시 우리 대장님은 마음이 넓으셔!”

금소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병사들이 꼬리를 흔들었다.

저녁이 되자 신인은 결심을 굳혔다. 이곳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소대의 전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장난감 신세로 전락한 지휘관. 그는 당장 상사에게 사임을 요청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본부 막사로 향하는 길은 어둡고 좁았다.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한 순간,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금소의 붉은 눈이 반짝였다.

“어디 가세요, 대장님?”

“본부에 볼일이 있다. 너는 왜...”

“저도 볼일이 있어서요. 같이 가도 되죠?”

금소는 그의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걸었다. 그녀의 꼬리가 신인의 손등을 스치듯 지나갔다. 깜짝 놀라 손을 떼자, 금소가 작게 웃었다.

“대장님, 요즘 많이 속상하죠?”

“...무슨 소리야.”

“다 알아요. 우리가 너무 심하게 굴어서. 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 여우족은 원래 그래요. 남 놀리는 게 취미라서. 특히 대장님 같은 진지한 인간은 더 재밌고.”

신인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녀의 말은 위로인지 비웃음인지 경계가 모호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난 이제 그만두려고 한다.”

“사임한다고요?”

금소의 귀가 쫑긋 서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느껴졌다.

“그래. 나 같은 인간이 이끌기엔 이 소대는...”

“그렇긴 하죠. 솔직히 말해서 대장님, 우리한테 너무 안 어울려요. 그 딱딱한 군대식 말투며, 규율 타령... 근데 말이에요.”

금소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대장님이라서 더 놀리기 좋은 건데. 떠나면 섭섭할 것 같은데.”

신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이게 또 무슨 장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본부 막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본부 막사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대대장이 아직 깨어 있었다. 지도를 펼쳐 든 채 무언가를 연구하다가 신인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아, 신인 대장. 무슨 일인가?”

“열일곱 번째 소대 대장직을 사임하고 싶습니다.”

직설적인 요구에 대대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유를 들을 수 있을까?”

“저는 그 소대를 이끌 능력이 없습니다. 소대원들은 제 지시에 따르지 않고, 저는 그저 그들의 장난감일 뿐입니다. 이 상태로는 임무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신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 깊은 곳에 스민 떨림을 숨길 수 없었다. 대대장은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열일곱 소대의 상황은 나도 알고 있다. 여우족 특성상 쉽지 않은 임무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지. 하지만 신인 대장, 자네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누가 그들을 맡겠나?”

“저보다 유능한 인재가...”

“없어. 정확히 말하면, 열일곱 소대를 맡겠다고 나서는 자가 없다는 거지. 그들은 특수 종족이라 일반 지휘 체계에 녹아들지 않아. 누군가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휘관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그 자리를 3명이 거쳐 갔고, 전원 일주일을 버티지 못했다.”

대대장의 말에 신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3명? 그렇다면 자신은 오히려 오래 버틴 편이었던 건가.

“그런데 자네는 벌써 한 달이 넘었어. 그건 자네에게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는 증거야.”

신인은 고개를 저었다. 특별한 점? 농락당하면서도 참아내는 인내심뿐이었다. 그런 게 무슨 자랑이란 말인가.

“아닙니다. 전 단지...”

“특수 소대를 신설했다. 그 대장을 자네에게 맡기고 싶어.”

대대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신인은 귀를 의심했다. 사임하겠다는 부하에게 새로운 직책을 맡기다니.

“특수 소대... 말씀이신가요?”

“그래. 기존의 열일곱 소대는 해체한다. 대신, 그 병력 중 일부를 차출해 특수 임무를 수행할 소수를 꾸릴 거야. 그 소대장으로 자네를 임명한다. 자네만이 그들을 통제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전 방금 사임을...”

“사임은 받아들일 수 없어. 대신, 이건 명령이다. 내일부터 특수 소대를 편성할 테니 준비하도록. 자세한 건 추후 통보하지.”

혼란스러웠다. 신인의 입술이 달싹였지만, 대대장은 이미 등을 돌리고 있었다. 만약의 여지가 없는 결정이었다. 신인은 멍하니 막사를 나왔다. 밖에는 여전히 금소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신인의 표정을 살피더니,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사임은 실패한 모양이네요. 대신 특별한 자리를 받으셨나?”

“...어떻게 알았지?”

“여우족 귀는 가늘어서요. 막사 안 대화 정도는 다 들려요.”

금소는 얄밉게 웃으며 신인의 어깨를 톡 쳤다.

“축하해요, 우리 새로운 특수 소대 대장님. 이제 더 재밌어지겠네요. 우리가 당신 잘 이끌어 줄 테니까, 기대하세요.”

그녀의 말투에서는 전혀 축하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신인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후회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휴일의 간절한 바람이 무산되다

신인은 눈을 뜨자마자 천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찾아온 휴일이었다. 특수 팀 대장이라는 직책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임무와 대원들의 기상천외한 사고에 몸도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는 이불 속에서 팔을 뻗어 창밖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을 손가락 사이로 걸러 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마저 평소보다 가벼운 듯했다. 오늘만큼은 아무도, 그 어떤 것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그는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상상은 잠시뿐이었다.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키자마자 지난 휴일의 악몽이 뇌리를 스쳤다. 대원들은 신인의 휴일을 마치 축제라도 되는 양 여겼다. 아침 일곱 시부터 시작된 연락은 점심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한 명은 보급품 창고 열쇠를 어디에 두었냐고 묻고, 다른 한 명은 전투복 사이즈 교환을 요청했으며, 심지어 어떤 대원은 자신의 애완 슬라임이 탈출했다며 공동 수색을 해달라고 울먹이며 전화를 걸어왔다. 신인은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베개에 머리를 묻을 수 있었지만, 이미 초조함과 분노로 머릿속은 과부하 상태였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신인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안 돼. 절대 안 돼." 목소리에는 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견뎌온 자의 피로와 결의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안을 빠르게 훑었다. 작지만 아늑한 이 방은 특수 팀 숙소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나마 개인 공간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하지만 이 얇은 벽과 허술한 문으로는 대원들의 집요한 방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즉시 행동을 시작했다.

먼저 신인은 문으로 다가가 단단히 잠겼는지 확인하고, 손잡이를 두어 번 덜컹거려 보았다. 그런 다음 구석에 방치된 낡은 책상 하나를 끌어다 문 앞에 밀착시켰다. 책상 위에 가득 쌓인 보고서 뭉치가 미끄러져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어서 의자 두 개를 가져와 각각 창문 아래와 옷장 옆에 바짝 붙였다. 창문에는 두꺼운 담요를 드리워 바깥의 시선을 완벽히 차단했고, 남은 의자로 창문 손잡이조차 움직이지 못하게 눌러 두었다. 숨이 조금 차올랐지만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털었다. 이제 방은 작은 요새나 다름없었다.

마지막으로 방 구석의 작은 통신기까지 전원을 뽑고 서랍 깊숙한 곳에 처박았다. 통신기 액정이 꺼지던 그 순간, 신인의 긴장된 어깨가 살짝 내려갔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쭉 뻗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적막인지. 숙소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도, 평소 같으면 적의 기척처럼 신경을 곤두세웠을 대원들의 고성도 이제는 왠지 멀게만 느껴졌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압박감과 무력감이 한꺼번에 풀려나가는 듯했다. 대장이라는 직책은 영광인 동시에 저주였다. 대원들은 자신의 실수나 무능까지도 신인의 탓으로 돌리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상 교활한 금소가 있었다. 신인을 놀리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저 여우족 소녀. 지난주에는 대원들 앞에서 신인의 머리카락에 분홍 리본을 몰래 꽂아두고 "대장님 너무 예뻐요"라며 박수를 쳤고, 그 바람에 분노한 신인이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는 사건도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오늘 같은 휴일은 신인에게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오늘만은… 오늘만은 날 좀 놔둬." 신인은 입술을 깨물며 혼잣말을 했다. 그의 눈꺼풀이 천천히 무거워졌다. 따뜻한 담요 사이로 스며드는 한 줄기 따스한 햇살이 얼굴을 쓰다듬자, 의식이 스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몸에 밴 전투의 흔적, 근육에 쌓인 피로, 그리고 금소의 장난으로 인한 굴욕감까지—모든 게 잠의 포근한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신인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했고, 그는 그렇게 요새 같은 방 안에서 완벽한 평화를 만끽하며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어느덧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신인이 꿈속에서 어떤 고요한 숲을 거닐고 있을 때, 방 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먼 발소리 같던 것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대장님!"이라는 젊고 활기찬 목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신인의 눈꺼풀이 한 번 파르르 떨렸지만, 잠에 깊이 취해 있던 그의 몸은 쉽사리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계속된 노크 소리—아니, 문짝을 때리는 소리로 변한 그것이 방 전체를 진동시켰다.

"대장님, 주무세요? 보급품 창고 열쇠가 또 없어졌어요! 저번에 제가 잘못 둔 것 같은데… 혹시 가지고 계세요?" 문 밖 대원의 목소리가 긴박하게 쏘아졌다. 신인은 몸을 뒤척이며 신음했다. 그의 뇌가 천천히 현실과 꿈을 구분하려 애쓰는 동안, 책상 밑에서 떨어진 보고서 종이 한 장이 바스락거렸다. 이번에는 창문 쪽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작은 돌멩이가 유리를 톡톡 두드리는 소리였다.

누군가 창밖에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대장님~ 저 기억나세요? 지난번에 저희 슬라임 찾아주셨던 그 대원이요. 그 슬라임이 또 번식해서… 지금 밖에 열두 마리가 흩어졌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 잡겠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울먹이는 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더 거세게 유리를 때렸다. 신인은 이를 악물고 귀를 막았다.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손가락 끝에서 실뿌리가 벌벌 떨려왔다.

"대장님! 안에 계시죠? 대장님!" 이제 복도 쪽에서 여러 발소리와 함께 대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문 앞에 우르르 몰려와 번갈아 가며 외쳤다. "오늘 휴가라면서요! 그래도 잠깐만 나와 주세요!" "전투복이 급한데 대장님 허락 없이 못 꺼내거든요." "저번 회식비 정산 문제 때문에 그래도 의논 좀 해야 해서…"

신인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가려 했지만, 책상과 의자로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가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의 손가락이 바리케이드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 눈 속 깊이 타오르는 무력감이 또다시 치밀어 올랐다. 꿈속에서 맞이한 고요한 숲은 화염에 휩싸여 사라져 버렸고, 현실은 그에게 단 한순간의 도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신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내 휴일은… 내 평화는 어디로 간 거야?"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문틈 아래로 작은 쪽지를 쑤욱 밀어 넣었다. 쪽지에는 익숙한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신인 대장님~ 휴일 즐기고 계시죠? 제가 보낸 작은 선물이 방 안 어딘가에 있어요. 찾아보실래요? — 금소 올림."

쪽지를 본 신인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싸늘하게 변하는 듯했다. 금소의 장난이 반드시 또 다른 난리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평온한 휴일은 터무니없는 속임수와 대원들의 무리한 요구 사이에서 산산조각나고 있었다.

푸른 연기와 코요이의 등장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묵직해졌다.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더미 사이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더니, 이내 옅은 푸른빛을 띤 연기가 바닥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신인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손에 쥐고 있던 붓을 멈췄다. 연기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며 그의 발목을 감쌌고, 서늘한 기운이 피부에 닿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뭐야, 이게……."

그가 중얼거리는 순간, 연기가 방 한가운데서 소용돌이치며 뭉쳤다. 푸른 입자들이 빠르게 회전하며 사람의 형체를 만들더니, 스르르 흩어지며 그 자리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흘러내렸고, 짙은 남색 기모노를 걸친 몸매는 지나치리만큼 야릇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그녀의 눈이었다. 짙은 호박색 동공이 가늘게 찢어져 있었고, 입꼬리에는 짓궂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여우다. 신인은 본능적으로 등을 곧게 세웠다.

"코요이."

그가 낮게 이름을 부르자, 여자는 부채를 톡 펼치며 입가를 가렸다. 부채에는 붉은 나비가 수놓여 있었고, 그녀가 손목을 살짝 움직일 때마다 나비가 살아서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이네, 신인.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코요이가 부채 너머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신인은 애써 시선을 피하며 서류를 정리하는 척했다. 그녀가 이런 식으로 느닷없이 나타날 때는 대개 로운 일이 없었다. 지난번에는 그가 처리하던 요괴 소동에 끼어들어 일을 두 배로 키웠고, 그 전에는 그의 검에 무슨 장난을 쳐서 닷새 동안 칼집에서 뽑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이야? 지금 좀 바빠서."

"알아, 알아. 너 요즘 얼굴 볼 시간도 없이 쏘다니더라. 산속 마을의 식신 소동, 남쪽 강가에 나타난 물귀신, 그리고 지난주에는 북쪽 경계에서 일어난 결계 균열까지. 쉬지도 않고 뛰어다녔잖아."

코요이는 부채를 접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기모노 자락이 바닥에 끌리며 사각이는 소리가 방 안에 작게 울렸다. 그녀는 신인의 책상 앞에 멈춰 서서, 서류 더미 위에 손가락을 가볍게 올렸다.

"근데 네 팀원들은 뭐 해? 대장인 너만 이렇게 굴러다니고, 다른 녀석들은 술집이나 기웃거리는 거 아니야?"

정곡을 찔린 말에 신인의 손이 잠시 굳었다. 맞는 말이었다. 부대장인 겐지는 임무 브리핑 때만 얼굴을 비추고는 곧바로 사라졌고, 하야테는 항상 '개인 훈련'을 핑계로 혼자 움직였다. 남은 대원들도 그가 무언가 지시를 내리기 전에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소년 대장이라는 꼬리표가 이렇게까지 무시당할 이유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런 불만을 코요이 앞에서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 여우는 약점을 잡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미였다.

"다들 각자 맡은 일이 있으니까. 팀 운영은 내 몫이고."

신인이 짧게 대답하며 펜을 다시 잡았다. 하지만 코요이는 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아~ 그래? '각자 맡은 일'. 흥, 말만 들어도 피곤해지려고 하네. 너 요즘 계속 그러고 있으니까 동료들이 더 편하게 너한테 일을 떠넘기는 거야. 너무 못된 짓이지, 그치? 대장이라고 부려먹기 딱 좋은 신인 씨."

코요이가 마지막 말을 비꼬듯 길게 늘였다. 신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오히려 그녀의 말에 힘을 실어줄 것 같았다. 코요이는 그런 그를 흐뭇하게 내려다보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바닥을 마주쳤다.

"맞다, 나 요즘 너 생각하면서 재미있는 걸 하나 구상했거든. 들어볼래?"

"네가 내 생각을 한다는 말 자체가 이미 무서운데."

신인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지만, 코요이는 전혀 개의치 않고 책상 모서리에 엉덩이를 살짝 걸쳤다. 기모노 자락이 흘러내리며 새하얀 종아리가 드러났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너, 지금 일이 너무 많아서 숨 쉴 틈도 없잖아. 그런데도 다른 팀원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뭘 부탁하면 거절도 못 하고 또 받아들이고. 맞지?"

"……."

"그런 너를 위해 내가 아주 쉬운 의뢰 하나를 소개해줄까 해. 큰 힘들일 것도 없고, 위험한 것도 아니야. 그런데 네 입장에서는 아주 유용할 거야."

신인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코요이는 그의 시선을 즐기듯 천천히 부채를 펼쳐 부채질을 시작했다. 푸른 연기가 부채 끝에서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그게 무슨 의뢰인데?"

"서쪽 외곽에 있는 오래된 등불 창고, 아니? 거기 며칠 전부터 작은 요괴 하나가 살기 시작했어. 해가 지면 불빛을 훔쳐가는 장난꾸러기일 뿐인데, 가게 주인이 겁이 많아서 의뢰를 냈더라고. 수준으로 치면 네 발톱 때만큼도 안 되는 놈이야. 가서 슬쩍 혼내주고 불빛 돌려주면 끝."

코요이는 말을 마치고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신인은 그녀의 설명에 속으로 의아함을 느꼈다. 정말 그렇게 간단한 의뢰라면 굳이 코요이가 자신에게 제안할 이유가 없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게 분명했다.

"네가 왜 그런 걸 나한테 제안하는데? 그냥 네가 해결하면 될 일 아니야?"

"내가 왜? 나는 의뢰를 받는 해결사가 아니라 의뢰를 주는 사람이야. 게다가 나는 지금 네가 불쌍해서 이러는 거라고. 이 의뢰를 공식적으로 접수해놓으면, 당분간 다른 녀석들이 '나 대장, 이거 좀 도와줘' 하고 달려들 때, '나 지금 공식 의뢰 진행 중이야' 하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잖아. 일종의 거절 구실을 만들어 주는 거지. 완전 좋은 거 아니야?"

그녀의 말을 듣고 신인의 눈썹이 움찔했다. 일리가 없지 않았다. 지금 그가 가장 곤란한 것은 자신의 업무가 이미 한계라는 사실을 주변에 전혀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장으로서 책임감을 다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동료들은 그를 이용할 줄만 알았다.

만약 이 의뢰를 받아놓으면, 정말로 코요이의 말대로 거절할 명분이 생기는 걸까.

하지만 바로 여기서 의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코요이가 아무 대가 없이 나한테 호의를 베풀 리가 없는데.'

"그래서, 그 대가는? 네가 이걸 그냥 소개해줄 리는 없잖아."

코요이는 그의 직설적인 질문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부채를 접은 끝으로 신인의 턱을 톡 건드리며 말했다.

"대가라……. 뭐, 별거 아니야. 그냥 나중에 네가 한 번만 내 부탁을 들어주면 돼. 그것도 아주 사소한 거야. 지금 당장은 아니고, 때가 되면 내가 알려줄게. 어때? 위험한 거 아니니까 걱정 마."

턱에 닿는 부채의 서늘한 감촉에 신인은 움찔하며 고개를 뒤로 뺐다. 방금 그녀의 손끝에서 스친 희미한 푸른 연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향기였다.

"나중에 부탁……. 그게 뭔데."

"아직은 비밀."

코요이는 한쪽 눈을 깜빡이며 윙크했다. 그러고는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발밑에서 다시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의뢰서는 내일 아침에 네 책상 위에 올려둘 테니까, 받을지 말지는 네가 알아서 정해. 하지만 내 충고 한마디 할까? 신인, 너 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그렇게 가다간 진짜로 쓰러져. 그러니까 내 제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연기가 그녀의 몸을 감싸며 형체를 흐리기 시작했다. 신인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럼, 잘 생각해봐. 푹 쉬어야 해, 대장님."

마지막 말과 함께 코요이의 모습이 완전히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푸른 안개가 순식간에 방 안에서 걷히고, 조용한 정적만이 남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신인은 한동안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코요이의 제안은 분명히 매력적이었다. 일손을 덜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잠시나마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 한쪽에는 미세한 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 '나중에 들어줄 부탁'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지. 그리고 애초에 코요이 같은 여우 요괴가 호의만으로 움직일 리 없었다.

신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천장에는 여전히 푸른 연기 잔향이 희미하게 맴돌고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 연기를 잡으려 했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흩어질 뿐이었다.

의뢰서는 정말로 내일 아침 도착할까. 아니면 이 모든 게 코요이의 또 다른 장난일까.

그는 펜을 다시 집어 들었지만, 서류에 글자를 써 내려가는 대신 머릿속에서 계속 그녀의 말만 맴돌았다. '이렇게 가다간 진짜로 쓰러져.' 타인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자신이 생각보다 더 궁지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창밖에서는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대역 연회의 의뢰 내용

캠프의 저녁은 언제나처럼 조용했다. 훈련장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삼삼오오 흩어지고, 취사장 연기가 바람에 실려 사라지는 시간. 신인은 막 특수 팀 사무실 문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하루 종일 전투 보고서를 정리하느라 어깨가 뻐근했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빠른 걸음, 바닥을 살짝 스치는 듯한 리듬. 고개를 들기도 전에 그는 이미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신인, 잠깐."

금소가 사무실 문간에 기대 서 있었다. 여우 귀가 살랑 움직이고, 꼬리가 등을 감싸듯 말려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교활한 미소가 오늘따라 조금 옅어졌다는 것. 신인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야? 또 무슨 장난이냐."

금소는 픽 웃었지만, 그 웃음도 평소처럼 짓궂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턱짓으로 사무실 안을 가리켰다.

"들어와. 이야기 좀 하자."

신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벽에는 전투 지도 몇 장이 걸려 있었고, 창밖으로 석양 빛이 길게 늘어져 책상 위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금소는 의자를 하나 끌어당겨 털썩 앉았다. 신인도 마주 앉았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진지해?"

금소가 한숨을 쉬었다. 여우 귀가 축 처지는 모습을 신인은 처음 봤다. 그녀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음 달에, 우리 여우족 연회가 있어. 3년에 한 번 열리는 큰 행사야. 온 가문이 다 모이고, 친척들이 죄다 오는 그런 자리."

"그래서?"

"가기 싫어."

단호한 어조였다. 신인은 조금 놀랐다. 금소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싫다고 말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그녀는 평소 무슨 일이든 여유롭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교묘하게 비틀어 즐기는 타입이었으니까.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금소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문제라면, 그 연회 자체가 문제야. 나는 남 놀리는 건 정말 좋아해.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신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은 전적으로 사실이었다. 그녀에게 당한 것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는 지난 며칠 사이에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금소라는 여우족 소녀가 단순히 장난만 좋아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그녀에게는 나름의 규칙과 자존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연회에서는, 주로 내가 놀림감이 돼."

금소는 말을 마치고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귀가 더 축 늘어졌다.

"어른들은 내가 아직 어리다고 이래저래 참견하고, 사촌들은 서로 비교하느라 난리야. 그리고 항상 누군가는 내 꼬리 색깔이 흐리다느니, 구슬술이 아직 부족하다느니 쑥덕거려. 듣는 사람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인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사무실 안이 조용해졌다. 창밖으로 저녁 바람이 불어와 지도 모서리를 살짝 들썩이게 했다. 그녀의 꼬리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그러니까, 너는 남을 놀리는 건 좋은데, 놀림당하는 건 싫다는 거지?"

"그걸 이제야 알았어?"

금소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모습에 잠시 평소의 교활함이 돌아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정말이지, 그 자리만 생각하면 속이 쓰려. 그런데 안 갈 수도 없어. 여우족에게 연회는 의무나 다름없거든. 안 가면 가문에 먹칠하는 꼴이고, 그럼 나중에 더 큰 불이익이 돌아와."

그녀는 말을 멈추고 신인을 똑바로 바라봤다. 눈빛이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인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그 눈빛은 그녀가 무언가 계획을 꾸미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그래서 말인데."

금소가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네가 나 대신 가 줘."

침묵. 신인은 방금 들은 말을 머릿속으로 다시 곱씹었다.

"...뭐?"

"네 귀, 내 말 제대로 들었잖아. 대리로 참석해 달라고. 내가 그 연회에 갈 필요 없도록, 네가 나인 척하는 거야."

신인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어떻게 너인 척을 해? 너는 여우족이고 나는 인간인데. 키도 다르고, 생김새도 완전히 다르잖아!"

"그 부분은 걱정 마."

금소는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그를 올려다봤다. 그 입가에 드디어 익숙한 교활한 미소가 걸렸다.

"한 달이면 충분해. 특별한 방법을 쓸 거야. 너를 나와 똑같이 만들어 줄게. 완벽한 복제품으로."

신인은 고개를 저었다. 터무니없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미쳤어? 그게 어떻게 가능해? 변신술 같은 건 여우족도 완벽하게 못 한다고 들었어. 게다가 연회에 모인다는 게 다 여우족일 텐데, 그 많은 눈을 어떻게 속여?"

"그래서 특수한 향수를 쓸 거야. 우리 여우족 고유의 제향 비술로 만든 물건이지. 이 향수를 몸에 뿌리면 체취까지 완벽하게 속일 수 있어. 겉모습만 똑같다고 되는 게 아니라, 냄새로도 구분 못 하게 만드는 거야."

금소는 마치 그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 담담하게 설명했다. 신인은 천천히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고,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게 뻔했다.

"왜 하필 나야? 다른 여우족 여자한테 부탁하면 안 돼?"

"안 돼."

금소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여우족 여자들은 저마다 가문이 있잖아. 내 사정을 알면 분명히 꼬투리 잡을 거야. 그런 약점을 줬다간 나중에 더 귀찮아져. 대신 너는 달라. 넌 내 대장이고, 특수 팀을 믿을 수 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넌 내가 놀려먹는 상대잖아. 이번에도 그 연장선일 뿐이야. 너도 나한테 당하는 거 이제 익숙하지 않아?"

신인은 대꾸하지 못했다. 이 여우 소녀는 언제나 그랬다. 교활한 논리로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결국 마지못해 승낙하게 만드는 게 특기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조금 달랐다.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여우족 연회장에서 들통이라도 나는 날에는, 단순히 창피한 정도가 아니라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신인은 목소리를 낮췄다. 농담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금소는 잠시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가 살며시 어깨를 으쓱였다.

"거절하면 할 수 없고."

뜻밖에도 그녀는 쉽게 물러나는 듯했다. 신인이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순간, 금소가 다시 말을 이었다.

"대신에, 그럼 나는 네가 지난주 훈련장에서 저지른 실수에 대해 공식 보고서를 써야겠네. 무단으로 지시를 어기고 대원들을 위험에 빠뜨린 건, 아무리 대장이라도 꽤 큰 문책감이야."

신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니면, 네가 이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 실수는 영원히 묻어줄게. 우리 둘만의 비밀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신인은 자신이 완전히 포위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금소는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원하는 것도 아닌, 계산된 제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체념을 느꼈다.

"...그 '완벽한 복제품'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든다는 거야?"

신인의 질문에 금소의 귀가 쫑긋 섰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손가락으로 신인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간단해. 한 달 동안 특별 훈련이야. 걸음걸이, 말투, 표정 같은 건 기본이고. 체형이나 머리카락 길이도 조정해야겠지. 약초랑 특수한 기법을 쓰면 뼈 구조를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까 말한 향수. 그걸 쓰면 여우족의 후각도 완벽하게 속일 수 있으니까, 누구도 의심 못 할 거야."

"뼈 구조를 바꾼다고?"

신인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팔을 만졌다. 금소는 그 모습에 키득 웃었다.

"아파 죽거나 하진 않으니까 걱정 마. 우리 여우족 고유의 비법인데, 통증은 거의 없고 오히려 좀... 기분 좋을지도 몰라."

그 말을 할 때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신인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모를 호기심이 솟아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기분 좋다는 말에, 그의 머릿속에는 불현듯 며칠 전 금소가 자신에게 걸었던 환술의 감각이 스쳤다. 그때 느꼈던 떨림, 불쾌함과 쾌감이 뒤섞인 기묘한 감각.

"그러니까, 결국 내가 네 꼭두각시가 되어서 연회장에 가서 사람들 앞에서 웃고 떠들고 춤추고... 그런 짓을 해야 한다는 거지."

"딱 맞혔어."

금소가 활짝 웃었다. 이제야 평소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돌아왔다.

"그리고 너만 손해 보는 건 아니야. 잘만 하면 네가 우리 여우족의 문화를 아주 깊이 체험할 수 있을걸? 인간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경험이라고."

신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보고서 이야기가 발목을 잡은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무언가가 그를 이쪽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무력감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그 익숙한 감각.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대감.

"한 달 후에, 진짜 아무도 눈치 못 채는 거 확실해?"

"물론이지. 내가 책임질게."

금소는 장난스럽게 그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신인은 손을 뿌리치지도 않았다.

"좋아. 해보자고."

신인이 마지못해 대답하자, 금소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돌아서서 사무실 구석에 있던 작은 캐비닛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안쪽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병 안에는 연보랏빛 액체가 담겨 있었고, 뚜껑을 닫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미세한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달콤하면서도 묘하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냄새였다.

"이게 그 특수한 향수야."

금소가 병을 살짝 흔들었다. 액체가 반짝이며 소용돌이쳤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할 거야. 오늘은 일단 이 향기에 네 몸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부터 하자. 자, 팔을 내밀어 봐."

신인은 망설이다가 천천히 오른팔을 내밀었다. 금소는 병 뚜껑을 열고, 작은 유리 마개로 액체를 한 방울 떠서 그의 손목 위에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액체가 피부에 닿는 순간, 차가운 감각과 함께 은은한 작열감이 퍼졌다. 신인은 숨을 삼켰다. 향이 코끝을 강하게 때렸다. 단순한 꽃향기가 아니었다. 숲속 깊은 곳의 이끼, 달밤의 안개, 잘 익은 베리, 그리고 그 아래 깔린 짐승의 체취 같은 무언가.

"이 향수는 네 체취를 내 체취와 동화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네 몸을 여성화 훈련에 적응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해."

금소가 설명하는 동안, 신인은 손목에서 퍼져나가는 감각에 정신이 팔렸다. 작열감이 점차 부드러운 온기로 바뀌면서, 피부 아래로 무언가가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기묘하게도 유쾌했다. 마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동시에 피부 표면이 조금 더 민감해지는 것 같았다.

"기분이 어때?"

금소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조금... 이상해. 하지만 나쁘진 않아."

신인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금소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지금 그 느낌을 잘 기억해둬. 앞으로 한 달 동안, 넌 그 감각과 아주 친해져야 하니까."

그녀는 향수 병을 다시 조심스럽게 닫아 캐비닛에 넣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신인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했다.

"오늘은 이걸로 됐어. 내일부터 진짜 훈련이 시작될 거야. 일정은 내가 따로 짜둘 테니까, 팀 훈련 스케줄은 다른 부대장한테 맡겨둬."

신인은 멍하니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향수 한 방울이 떨어진 자리가 미세하게 반짝이다가 점차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변화도 없었지만, 몸 안에서는 무언가가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사무실을 나서기 전,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금소는 이미 다른 서류 뭉치를 펼쳐 놓고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그녀의 여우 귀가 집중한 듯 앞으로 쫑긋 서 있었고, 꼬리가 리듬을 타듯 살랑거렸다. 신인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이 여우 소녀는 단순히 장난으로 이 계획을 꾸민 게 아니라는 걸. 그녀는 진심으로 연회가 두렵고, 진심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라는 걸.

그리고 그는, 바로 그 필사적인 계획의 일부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복도를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손목에 남은 잔향이 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달콤하면서도 묘한 그 냄새는, 지난 며칠 사이에 겪었던 모든 혼란과 수치심, 그리고 숨길 수 없는 흥분을 한데 엮어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신인은 고개를 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한 달... 대체 내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나 그 물음에는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저녁 하늘에 초승달이 걸려 있을 뿐, 캠프 전체가 서서히 밤의 정적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신인의 숙소 불빛이 꺼질 무렵, 금소의 사무실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그녀는 내일부터 시작될 '훈련'의 세부 계획을 정리하면서, 때때로 혼자 씩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요한 집념으로 빛나고 있었다.

미친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한 결심

신인의 목구멍이 바싹 타들어 갔다. 마른 침을 삼키려 애쓰며, 손끝으로 전해지는 결재 단말기의 냉기가 유난히 싸늘하게 느껴졌다. 눈앞에 펼쳐진 계약서에는 빼곡한 글자들이 춤추고 있었지만, 시선은 자꾸만 코요이의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로 향했다. 그 미소는 계산된 듯 여유로웠고,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움이 숨어 있었다.

“완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네, 대장님?”

코요이가 턱을 괴고 신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여우 귀가 호기심에 살랑거렸다.

“하지만 생각해 봐. 다른 팀들은 매일 밤샘 작업에 신경 곤두세우고, 고객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잖아. 우리는 단 한 달만 ‘고요히’ 지내고, 계약금까지 챙기는 거야.”

그녀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책상 위에 놓인 청첩장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고급스러운 종이에서 은은한 향이 풍겼다.

신인은 눈을 감았다 떴다. 그녀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미 그는 오늘 아침 거울 앞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한 자신을 목격했다. 낯선 드레스 자락이 허벅지를 스치는 감촉이며, 립스틱이 발린 입술이 낯설게 움직이던 모습까지. 그때 느꼈던 혼란과 두려움, 그러나 그 이면에 숨은 묘한 떨림을 그는 부정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특별히 미친 짓도 아니야.’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듯 생각했다. 특수 팀 대장으로서, 생사를 넘나드는 작전보다 여장이 더 미친 짓일까? 이 모든 건 단지 빙의된 사람을 구하기 위한 전략일 뿐이다. 합리화는 빠르게 그의 내부를 채웠고,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했다.

하지만 진짜 그를 움직인 것은 다른 것이었다. 한 달 동안 다른 의뢰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 지난 몇 달간, 산더미처럼 쌓인 의뢰와 부하들의 생사가 걸린 선택의 기로에서 잠 한 숨 편히 자본 적이 없었다. 이 제안은 마치 거친 파도 속에서 가까스로 붙잡은 부표와도 같았다. 비록 그 부표가 독을 품은 해파리일지언정, 일단 붙잡는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

“시간이 얼마 없어, 신인. 파티는 사흘 뒤야. 지금 결정해야 해.”

코요이의 목소리가 재촉하듯, 혹은 달래듯 흘러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결재 단말기 위로 미끄러져 ‘승인’ 버튼 위에 멈췄다. 진홍색 버튼은 마치 짐승의 아가리처럼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인은 심호흡을 한 번 깊게 들이쉬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체념도, 각오도, 순수한 호기심도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반대 논리가 울렸지만, 코요이가 전해주는 이상한 확신감과 자신의 피로가 빚어낸 공명을 이기지 못했다.

“알겠어.”

마침내 그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꺾였다. 무거운 추를 떨어뜨리듯, 단호하면서도 힘겹게 끄덕여졌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의뢰를 수락한다. 단, 반드시 성공시킨다는 약속을 해.”

코요이의 눈동자가 승리의 빛으로 반짝였다. 그녀는 과장되게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긴 꼬리가 신인의 허벅지를 스치듯 휘감으며 지나갔다.

“현명한 선택이야! 자, 그럼 지금부터 대장님의 여가 시간은 없는 거야. 악성 민원 대신 나의 수업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신인의 팔을 붙잡아 사무실 구석에 마련된 전신 거울 앞으로 잡아끌었다. 거울 속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긴장한 채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코요이는 그의 뒤에 바짝 붙어 서서 거울 속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녀의 숨결이 뒷목에 닿자, 신인은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첫 수업은 걷기야. 대장님은 너무 씩씩하게 걸어서 문제라니까? 우아한 여성의 뒤꿈치를 상상해 봐.”

그녀의 발끝이 신인의 발뒤꿈치를 지그시 눌러 자세를 교정했다.

신인은 숨을 깊게 삼켰다. 이제 의뢰는 시작되었다. 각종 전투 보고서와 작전 회의 대신, 그의 일정표는 코요이의 개인 교습으로 빼곡히 채워지고 있었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낯선 균형 감각과, 거울 속에서 점차 변해가는 자신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신인은 이 모든 일이 만약 실패한다면, 단지 계약금을 물어내는 데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잃을 것이 아니라,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다른 무언가에 발을 들이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 하지만 그 미끄러짐은 기이하게도 달콤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여우족 지식과 습관 학습

방 안은 어둑하고, 탁자 위에 놓인 수정 램프만이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신인은 의자에 웅크린 채, 앞에 놓인 두꺼운 양피지 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책 표지에는 우아한 필체로 ‘여우족 예법 개론’이라 적혀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금소는 다리를 겹쳐 깍지를 끼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흥미롭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 첫 수업이다.” 금소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는 마치 달콤한 독을 머금은 듯했다. “여우족의 기본 지식부터 시작하자. 너 인간 소년인데, 너무 긴장하면 나를 제대로 따라 할 수 없을 테니까.”

신인이 고개를 들자 눈빛에 약간의 초조함이 스쳤다. “알겠어, 내가... 최선을 다할게.” 대장으로서 그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여성화 훈련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언제나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이 그를 휘감았다. 금소는 그 복잡한 심리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여우 꼬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우선 옷 입는 법부터 배워야 해.” 금소가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발걸음은 가볍고 우아했으며, 스커트 자락이 살랑이며 은은한 꽃향기를 풍겼다. “여우족 여성의 옷은 인간과 달라, 허리와 다리 라인을 강조하는 데 신경을 써서 입어야 해. 특히 이 꼬리 부분은 가릴 수도 없고, 자랑스럽게 드러내야 하지.” 그녀가 제 허리 뒤에 달린 부드러운 붉은 여우 꼬리를 가리키며 한바퀴 돌자, 꼬리가 살짝 신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신인은 얼굴이 붉어지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금소는 그 반응을 보며 낮게 웃었다. “자, 이 스타킹을 신어 봐.” 그녀가 어디선가 반투명한 검은색 긴 양말을 꺼내 신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발을 감싸는 이 감촉을 느껴 봐, 여우족의 다리는 이렇게 구속감을 가져야만 더 우아해 보이니까.”

신인은 망설이며 양말을 펼쳐 들었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천이 손바닥에 닿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질감에 저항하고 싶었지만, 금소의 반쯤 명령 반쯤 놀리는 듯한 시선을 떠올리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바지를 벗고 조심스럽게 긴 양말을 다리에 올렸다. 검은색 천이 다리에 착 달라붙자 살갗에 닿는 촉감에 숨이 멎는 듯했다. 솜털 같은 부드러움과 은은한 조임이 다리 근육을 약간 긴장시키며, 마치 다리가 가벼워진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좋아, 아주 잘 어울려.” 금소가 턱을 괴고 감상하며 진심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 이제 앉는 자세야. 여우족 소녀는 절대 다리를 아무렇게나 벌리지 않아. 무릎을 꼭 붙이고 발목을 살짝 교차시켜, 스커트 자락은 반드시 무릎까지 덮어야 해. 몸을 약간 기울이고 두 손은 무릎 위에 얹어. 그래야만 단아하고 귀엽게 보여.”

신인은 그 지시대로 하려 애쓰며 몸을 잔뜩 굳힌 채 어색하게 자세를 바꿨다. 그러나 살짝만 움직여도 다리에 감긴 긴 양말의 마찰이 이상한 감촉을 만들어 냈다. 마치 수많은 작은 손이 다리를 어루만지는 듯 간질간질하고 얼얼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무릎을 꼭 붙이자 스타킹의 천이 다리 안쪽 피부를 살며시 비비며, 무릎뼈에조차 알 수 없는 열기가 스며들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바지를 살짝 만지작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가만히 있어!” 금소가 갑자기 몸을 숙이고 손가락으로 그의 무릎을 살짝 눌렀다. “움직이면 다리 라인이 망가져. 게다가......” 그녀가 고의로 말끝을 흐리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계속 움직이면 이 천이 더 심하게 마찰돼서, 나중에 연회장에서 실수할 거야.”

신인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변명하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나온 것은 가느다란 신음소리뿐이었다. 긴 양말의 감촉이 정말로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금소의 말에 따르면 며칠 뒤 연회에서는 더 꽉 조이는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데,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좋아, 이제 점잖은 예절을 좀 배워 보자.” 금소가 다시 책상 맞은편으로 돌아가 앉으며 수정 램프의 빛을 약간 밝혔다. “이건 네가 연회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돕기 위한 거야. 거기 함정이 도처에 깔려 있어. 특히 건배할 때야, 여우족은 축배를 들기 좋아하니까.”

신인이 의아한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건배가 뭐? 그냥 잔 부딪치면 되는 거 아냐?”

금소가 고개를 저으며 꼬리를 살랑거리자, 발끝이 탁자 다리에 닿았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손님이 건배를 권할 때, 한 번에 한 명씩만 받아야 해. 그리고 반드시 네가 먼저 반 잔 이상 마신 다음 자리에 앉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거야. 더 주의할 것은, 손님이 너를 웃기면서 소매를 잡아당길 수 있다는 거야. 그건 작별 인사지만, 동시에 네가 옷을 깔끔하게 입었는지 시험하는 거지. 걸려 넘어지거나 발목을 삐끗하면, 그건 진짜 망신이야.”

신인이 긴장하며 다리에 감긴 긴 양말을 만지작거리자, 가벼운 문지르는 듯한 촉감에 숨이 가빠졌다. 그는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금소에게 물었다. “다른 함정은?”

“물론 있지.” 금소가 눈을 가늘게 뜨고, 눈빛이 교활하게 반짝였다. “누군가 너에게 작은 과자를 줄 거야, 특히 달콤한 솜사탕 같은 거. 먹어서는 안 돼. 그건 여우족의 장난이야. 한 입 베어 물면 솜사탕이 갑자기 부풀어 올라 코와 눈에 붙어 버려서 얼굴이 엉망이 돼. 네가 망가지는 꼴을 다들 신나게 구경하겠지.”

신인의 눈꼬리가 살짝 떨렸다. 이미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자신이 당황하고 난처해하는 모습에 금소는 아마 가장 신나서 웃을 것이다. 과연 금소가 덧붙였다. “사실 나는 네가 그런 함정에 빠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 연회에서 대장님이 도움을 청하는 표정은 분명 아주 재미있을 거야.”

“너......” 신인이 한숨을 쉬려는 순간, 금소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옆으로 걸어왔다. “자, 이론 수업은 여기까지야. 이제 실전 훈련을 준비할 시간이야.” 그녀가 손을 내밀자 손가락에는 반짝이는 작은 가죽 끈이 걸려 있었다. “이건 수제 허리 장식으로, 특별히 여우족 무용에 쓰이는 거야. 네 허리 힘과 균형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연회가 끝나면 손님 앞에서 잠자리 춤을 추는 관례가 있거든.”

신인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잠자리 춤? 나 그런 거 한 번도 배운 적 없는데!”

“그러니까 내가 가르쳐 주려는 거잖아.” 금소가 몸을 숙여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입김을 뿜을 때마다 살짝 달콤한 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자, 일어나서 이 끈을 허리에 매 봐. 꽉 조이면 허리 장식이 네 몸 움직임에 따라 방울 소리를 내서, 내가 얼마나 우아한지 평가할 수 있어.”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손목을 살짝 비틀자, 가죽 끈이 어느새 신인의 허리를 감아 꽉 조여 왔다.

순간 허리가 조여 오는 감각에 신인의 숨이 탁 막혔다. 마치 뱀에게 휘감긴 듯, 가죽 끈이 피부에 단단히 밀착되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끈을 잡아당겨 벗으려 했지만, 금소의 손가락이 그의 손등을 눌렀다. “움직이지 마, 이 끈은 특수 제작이야. 처음에는 좀 불편하지만, 나중에는...... 이상하게 좋아질지도 몰라.” 그녀의 말투에 짙은 조롱 섞인 교활함이 담겨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는 듯도 했다.

신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죽 끈이 내는 약한 방울 소리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렸고, 긴 양말은 여전히 다리에 야릇한 감촉을 남겼다. 자신이 조금씩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런 상황에 내몰려 그저 견디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이제 실전 훈련의 첫걸음――네 걸음걸이를 알아보자.” 금소가 뒤로 물러서 팔짱을 끼었다. 그녀의 여우 꼬리는 기대감에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저기 빈 곳으로 가서 네 바지를 입은 채로 제대로 걷는 연습을 해 봐. 내가 옆에서 지켜볼 테니까. 혹시 넘어지면 그걸로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야.”

하이힐과 자세 훈련

하이힐을 신는다는 건, 신인에게는 그저 막막한 형벌 같았다. 금소가 내민 구두를 바라보며 그는 침을 삼켰다. 가느다란 굽이 마치 송곳처럼 바닥에 꽂혀 있었고, 검은 가죽이 반들반들 빛나고 있었다. 도저히 인간이 신도록 만들어진 물건 같지 않았다.

“자, 신어 봐.”

금소가 팔짱을 끼고 턱짓을 했다. 그 눈빛엔 짓궂은 호기심이 가득했다.

신인은 마른침을 삼키며 오른발을 조심스레 구두 속으로 밀어 넣었다. 발가락이 좁은 공간에 끼이는 느낌, 발등이 비정상적으로 꺾이며 체중이 앞으로 쏠렸다. 왼발도 겨우 집어넣고 나자 그는 완전히 낯선 균형감에 휩싸였다.

“일어나 봐.”

금소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신인은 의자 팔걸이를 꽉 붙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온 세상이 달라진 듯했다. 시선이 평소보다 높아졌고,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긴장했다. 마치 죽마를 타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발목이 불안하게 흔들렸고, 중심을 잡으려고 두 팔을 허공에 휘저었다.

“어, 어어…….”

“푸하하! 죽마 맞잖아, 죽마!”

금소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녀의 여우 귀가 실룩거렸고,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신인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웃지 마…….”

“자, 그럼 한 걸음 걸어 봐. 천천히.”

금소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걸친 채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발에는 똑같이 높은 하이힐이 신겨 있었지만, 그녀는 마치 맨발인 양 우아하게 서 있었다.

신인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굽이 바닥에 닿는 순간, 발목이 바깥으로 꺾일 듯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는 재빨리 다른 발을 내디뎠지만, 이번에는 무릎이 지나치게 굽혀졌다.

“그렇게 쿵쾅거리면 안 돼. 마룻바닥 다 망가지겠다.”

금소가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가리켰다.

“나를 봐.”

그녀는 마치 무대 위의 무용수처럼 한 걸음을 내디뎠다. 엉덩이가 자연스럽게 옆으로 실렸다가 중심이 되는 다리 쪽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그 움직임은 흡사 물결 같았다.

“여기, 이 부분을 봐.”

금소는 자기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하이힐의 비밀은 발에 있지 않아. 골반에 있어. 엉덩이로 걷는다고 생각해.”

신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가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때, 정말로 엉덩이가 중심을 이끌고 발이 그 뒤를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꼬리가 살짝 치켜들리며 균형을 잡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자, 네 차례야.”

신인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금소가 보여준 대로 엉덩이를 의식적으로 밀어 보았다. 오른발을 내디디며 엉덩이를 오른쪽으로 살짝 내밀었다. 그 순간, 처음 느껴 보는 낯선 근육이 허리와 골반 주변에서 움직이는 걸 느꼈다. 평소엔 전혀 쓰지 않던 부위였다.

“어?”

“오? 좀 비슷한데?”

금소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왔다.

“그런데 아직 엉덩이가 뻣뻣해. 마치 나무토막을 붙여 놓은 것 같아.”

그녀가 갑자기 신인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톡 쳤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엉덩이가 찌릿하고 울렸다. 신인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뭐, 뭐 하는 거야!”

“긴장 풀어. 너무 딱딱하면 여성스러운 라인이 안 살아. 자, 한 번 더.”

신인은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번에는 조금 더 부드럽게 엉덩이를 움직이려고 애썼다. 금소가 그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걸었다. 그녀의 하이힐 소리는 우아하고 리드미컬했지만, 신인의 발걸음은 여전히 서툰 북소리 같았다.

“리듬감이 없어. 하나, 둘, 하나, 둘…….”

금소가 박자를 세기 시작했다. 신인은 그 박자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박자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굽이 바닥에 닿는 타이밍, 체중 이동, 엉덩이의 흔들림까지 동시에 신경 쓰려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 그냥 몸에 맡겨.”

금소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숨결이 귀를 간지럽혀 신인은 어깨를 움찔했다.

“느껴 봐. 허벅지 안쪽이 살짝 스치는 이 감각.”

그녀의 말에 집중하자, 정말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허벅지 안쪽이 살짝 스치며 낯선 마찰감을 만들어 냈다. 바지가 아니라 치마를 입었다면 더 크게 느껴졌을 감각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가슴 한구석이 미묘하게 떨렸다.

“그리고 발목. 발목이 가늘어지는 느낌, 종아리가 길어지는 긴장감…….”

금소의 목소리는 마치 최면을 거는 듯 나긋나긋했다. 신인은 점점 의식을 내려놓고 몸의 감각에 집중했다. 발목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도, 종아리 근육이 당기는 것도, 허리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휘어지는 것도.

그가 복도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왔을 때, 처음보다는 훨씬 안정된 걸음걸이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어색했지만, 더 이상 죽마를 탄 것처럼 휘청거리지는 않았다.

“발전이 빠르네. 역시 대장님은 영리하셔.”

금소가 손뼉을 가볍게 쳤다. 칭찬인지 놀림인지 모를 어조였다.

“이제 조금 더 속도를 내 볼까?”

신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속도가 붙자 엉덩이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좌우로 실리는 폭이 커지면서 치마였다면 분명 시선을 끌었을 법한 움직임이 만들어졌다. 금소가 그 옆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 그래! 이제 좀 여자 같아졌어. 하지만 아직 엉덩이 흔드는 게 좀 과해. 마치 ‘나 엉덩이 흔들고 있어요!’ 하고 광고하는 느낌이야.”

금소가 다시 다가와 그의 엉덩이 양옆을 짚었다.

“여기 긴장을 조금만 풀고…….”

그녀의 손길이 무척 자연스러워서, 신인은 저항할 틈도 없었다.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체온이 얇은 천을 뚫고 엉덩이에 스며들었다.

“자, 이제 내가 손 뗄 테니까 그 느낌 유지하면서 걸어 봐.”

신인은 조심스럽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금소가 알려준 대로 엉덩이의 긴장을 살짝 풀자, 움직임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방금 전까지 의식적으로 떨던 근육들이 마치 원래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듯 부드럽게 연동되었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신인은 자신도 모르게 몇 바퀴를 더 돌았다. 하이힐 굽이 내는 소리가 처음에는 불규칙했지만, 점점 리듬을 찾아갔다. 토, 토, 토, 토…….

“느낌 어때?”

금소가 벽에 기대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 이상한 느낌이야.”

신인은 걸음을 멈추고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 하이힐 속에 갇힌 발이 평소보다 훨씬 가늘고 길어 보였다. 종아리 라인도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자신의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점점 익숙해지면서, 뭔가…… 기분이 묘해.”

“어떻게 묘한데?”

금소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그 눈빛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간교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원래 이렇게 걸어야 했던 것 같은? 그런 느낌?”

“호오.”

금소의 여우 귀가 쫑긋 섰다.

“그거 중요한 순간이야. 몸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거지.”

신인은 그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막상 발목에서 전해지는 감각은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방금 전까지 불안정했던 균형이 이제는 오히려 ‘서 있는 방식’으로 편안해지고 있었다. 높은 굽이 오히려 허리를 곧게 펴 주고, 가슴도 자연스럽게 앞으로 내밀게 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서 하이힐을 신고 선 자신의 모습은 어딘지 낯설었다. 다리가 길어 보였고, 엉덩이와 허리의 곡선이 전보다 도드라져 보였다. 아직 완전한 여성의 실루엣은 아니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제 좀 볼만하네.”

금소가 뒤에서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다른 걸 가르쳐 줄게.”

신인은 천천히 하이힐을 벗었다. 다시 바닥에 맨발로 서자, 오히려 세상이 낮아진 듯한 위화감이 밀려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바닥이었는데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발바닥이 허전했다.

그날 밤, 신인은 침대에 누워 제 다리를 가만히 만져 보았다. 종아리에는 아직도 하이힐을 신었을 때의 긴장감이 남아 있는 듯했다. 눈을 감자 금소가 걷던 모습이 떠올랐다.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던 엉덩이, 우아하게 뻗어 나가던 발끝,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따라 했던 그 움직임.

신인은 돌아누우며 심호흡을 했다. 가슴속에 작은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수치심일까, 아니면 호기심일까. 어쩌면 그 둘 다일지도 몰랐다.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허벅지 안쪽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하이힐을 신고 걸을 때 느꼈던 미묘한 마찰감을 재현하려는 행동이라는 걸 자각했을 때, 신인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그날 밤 꿈속에서, 그는 우아한 하이힐 소리를 내며 끝없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걸음걸이는 점점 더 금소의 그것을 닮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