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站点:NovelAI.one内容:前8章在线试读ID:683e4dda更新:2026-07-26 01:58
이른 아침, 어마집 거리는 벌써부터 활기로 넘쳐났다. 좁은 골목 사이로 상인들의 목청 높은 외침이 메아리치고, 길가에 늘어선 포목점과 찻집 앞으로는 바쁜 발걸음들이 오갔다. 먼지 낀 길바닥에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고, 누군가는 한 손에 죽부인을 든 채 흥정을 벌이느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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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집의 의뢰

이른 아침, 어마집 거리는 벌써부터 활기로 넘쳐났다. 좁은 골목 사이로 상인들의 목청 높은 외침이 메아리치고, 길가에 늘어선 포목점과 찻집 앞으로는 바쁜 발걸음들이 오갔다. 먼지 낀 길바닥에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고, 누군가는 한 손에 죽부인을 든 채 흥정을 벌이느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 흰 도포를 휘날리며 긴 칼을 품에 안은 젊은 협객 하나가 홀로 빠른 걸음으로 길을 가르고 있었다. 그는 엽풍이었다. 천산파 대사형. 깔끔하게 빗어 넘긴 검은 머리칼 아래로 날카로운 눈매가 빛났으나, 그 시선은 어딘가 조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이 번잡한 세상이 낯설기라도 한 듯.

거리의 냄새, 기름진 전병 굽는 연기와 값싼 술 냄새가 그의 코끝을 스치자, 엽풍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천산봉의 그 맑고 싸늘한 바람 소리가 그리워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으며 턱을 굳게 다물었다. 지금은 그런 사소한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사매 유천심이 실종된 지 이미 열흘이 넘었다. 그 열흘 동안 이 세속의 물결 속에서 단서를 더듬다 보면, 마치 손바닥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뭔가 자꾸만 놓치고 있다는 초조함이 그를 괴롭혔다.

어제 받은 전서 한 장. 알 수 없는 필체로 짧게 적힌 약속이 오늘 그를 어마집 거리 남쪽 끝, 낡은 찻집 ‘청풍각’으로 이끌었다. 찻집에 들어서자 찻잎 타는 은은한 향기가 기름때 낀 공기와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구석 자리에 앉은 중년 사내가 손을 살짝 들었다. 얼굴색은 초췌하고 눈 밑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으며, 비싼 비단 옷을 걸쳤음에도 그 속에 깃든 피곤함은 감춰지지 않았다. 수도 상인 유정명이었다.

"풍아… 왔구나."

유정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엽풍은 걸음을 멈췄다. 풍아. 그건 그가 천산에 입문하기 전, 어머니가 부르던 아명이었다. 이 세상에 그 이름을 아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 유정명은 엽풍의 돌아가신 아버지와 젊은 시절 깊은 인연을 맺은 은인이었다. 엽풍은 조용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유 백부, 오래 뵙지 못했습니다."

"그래, 벌써 이렇게 당당한 협객이 다 되었구나."

유정명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마주 앉혔다. 차 한 모금에 입술을 적신 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 딸 얘기는 들었겠지. 천심이… 그 녀석이 이번 달 초에 산에서 내려왔어. 경도에 있는 외가 친척을 방문한다고 떠났는데, 사흘 뒤에 소식이 끊겼단다."

엽풍은 손에 든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차 표면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매의 눈웃음이 떠올랐다. 하산하는 날 아침, 새 옷을 곱게 차려입고 돌아서며 "대사형께서 걱정이 너무 많으시다"라며 까르르 웃던 그 모습.

"개방의 제자가 하나 보았답니다. 천심이 그곳에 있었다고."

유정명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그는 손가락을 찻물에 찍어 탁자 위에 천천히 세 글자를 썼다.

**취향각.**

글자가 물에 스며들어 번지자, 예민한 무인의 감각으로 엽풍은 직감했다. 이 이름 뒤에는 깔끔한 칼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걸. 유정명은 이내 손바닥으로 글자를 지워버렸다.

"풍아, 네 무공은 익히 전해 들었다만… 저곳은 연루된 배후가 복잡하더구나. 단순한 기루가 아니었어. 배후는…"

"백부님."

엽풍이 단호하게 그 말을 끊었다. 그의 눈빛은 칼날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사문의 대사형으로서 제 사매를 위험에 빠뜨린 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허물입니다. 취향각이 어떤 곳이든, 혼자서라도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내일 밤, 길지 않은 시일 안에 천심이를 데려오겠습니다."

유정명은 엽풍의 그 헛헛할 만큼 순수한 눈빛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입가가 떨렸다. 침묵 속에는 단순한 아버지로서의 걱정만이 아니라, 뭔가 말해선 안 될 비밀을 짓누르는 듯한 불안도 담겨 있었다.

"취향각은 겉으로 보기엔 그저 향긋한 기루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인들의 내공을 봉인하는 사악한 기도와… 인피로 된…"

유정명은 여기까지 말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엽풍의 손등을 덥석 잡았다.

"부디 조심하거라, 풍아. 그곳은… 사람을 사람답게 두지 않는다."

엽풍은 그 손을 가만히 마주 잡았다.

"걱정 마십시오. 대사형으로서, 반드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찻집을 나서자 거리의 소음이 다시 몰려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엽풍의 등골은 싸늘했다. 천산파 대사형으로서의 책임과 긍지가 가슴속에서 요동쳤다. 자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거라 굳게 믿으며, 그는 내일 밤을 기약하며 어마집 골목 깊숙이 사라졌다. 그 뒤로, 유정명은 탁자에 엎드려 오랫동안 몸을 떨고 있었다. 딸을 향한 죄책감인지, 아니면 엽풍을 함정 속으로 내몬다는 공포 때문인지, 그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줄 몰랐다.

춘약이 감도는 누각

취향각을 마주 보는 주루의 이 층, 창가 자리였다.

엽풍은 손에 든 찻잔을 입술 가까이 가져갔지만 마시지 않고, 그대로 멈춰 섰다. 창틀에 드리운 대나무 발 사이로 맞은편 누각이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 칠을 한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문 안으로는 희미한 촛불이 흔들리며 기름 냄새를 머금은 듯한 짙은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조각창에는 얇은 비단이 드리워져 있었고, 촛불이 휘영청 밝혀 놓은 화려한 치마와 구부러진 팔다리의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꾸민 듯한, 또 막을 수 없는 요염한 웃음이었다.

문 입구에는 여인이 한 명 서 있었다. 수놓은 비단 치파오를 입었고, 목선부터 허벅지까지 이어지는 옆트임 사이로 빛나는 각선미가 드러났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손가락을 구부렸다.

“어르신네, 한잔하고 가시지요.”

목소리는 엿물에 절인 듯 달콤했다. 술에 잔뜩 취한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여인의 허리를 덥석 감쌌다. 거친 손이 가리개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더니, 주체 못 하겠다는 듯 움켜쥐었다. 여자는 꾸민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사내의 품 안으로 몸을 던졌다.

엽풍은 손을 덜덜 떨었다. 찻잔 속 찻물이 흔들려 손등에 쏟아졌다. 그는 따끔한 열기를 느꼈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귀, 목, 귓불까지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심장에 맞서 쿵쾅거리며 뛰었다.

이런 장면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천산파의 설봉에서 자라고 무예를 닦으며, 그가 본 여인이라고 해 봐야 스승님과 사매들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깨끗한 옷을 입고, 품행은 단정하며, 말소리는 차갑거나 부드러웠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장면과는 전혀 달랐다.

유천심이 생각났다. 고개를 숙이고 칼춤을 추던 그녀의 모습은 거리낌 없는 솜씨였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맑고 깨끗했다. 자신을 쳐다볼 때 그 크고 검은 눈동자는 샘물 속의 별 같았다.

이런 곳에선 도저히 ...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어찌하여 이런 못된 생각을 하는가. 사매는 지금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처지인데.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마음속 잡념을 가라앉히고, 찻값을 치른 다음 주루를 나섰다.

거리는 여전히 북적거리고 있었지만, 귀에는 취향각에서 들려오는 요염한 웃음소리만이 맴돌았다. 발걸음이 알 수 없이 무거워져서 길바닥의 푸른 돌에 박힌 듯 움직이질 않았다. 마침내 이를 악물고 저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진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그윽하면서도 감미로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향이었다. 여인의 분내음 같기도 하고, 그보다 훨씬 더 진했다.

두 줄로 늘어선 시녀들이 나란히 나타나 푸르른 손을 허리에 모으고 일제히 몸을 숙였다.

“어서 오세요.”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몇 명인 셈인지, 짙은 향기와 뒤섞여 마치 골짜기에 핀 백합이 무리 지어 줄지어 있는 듯했다.

엽풍은 온몸이 확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오른손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에 찬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툭 튀어나오고, 검집마저 은은하게 떨렸다.

발각된 것일까.

그러나 시녀들은 이미 고개를 들고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운 채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마다 얇은 옷을 입고, 어깨가 드러났으며, 어떤 이는 가슴을 가린 비단마저도 던질 듯 위태로웠다.

“처음 오시는 손님이시죠?”

가장 키가 큰 여인이 반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말소리는 뱀처럼 미끄러지듯 그를 감싸며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짙은 자줏빛 치파오를 입고 있었는데, 옆트임이 허벅지까지 찢어져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얀 살갗이 숨어 있는 듯 보였다.

엽풍은 한쪽으로 눈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 오셨는데요. 길을 안내해 주세요.”

그는 애써 목소리를 차갑게 유지하며 말했다.

여인은 웃음 지으며 손을 저어 시녀들을 물러가게 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먼저 계단을 올라갔다. 치파오가 엉덩이 선을 따라 흔들렸다.

복도 벽의 등잔이 깜빡거렸다. 엽풍은 뒤를 따랐다.

갑자기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적하고 달콤한 콧소리였다. 마치 심한 고통을 참는 듯, 또 무언가를 참을 수 없이 탐하는 듯한 소리였다. 이어서 규칙적인 충돌 소리와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귓불이 다시 뜨거워졌다. 그는 시선을 굳게 앞쪽 여인의 발꿈치에 고정시켰지만, 저 희미한 소리는 끊임없이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그 소리들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벽을 통과해, 복도 전체를 가득 채웠다.

갑자기 어떤 기이한 향기를 맡았다.

감미로운 듯 감미롭지 않은, 말로 할 수 없는, 약간 쓴 것 같기도 하고 짙은 달콤함을 머금은 듯한 향기였다. 단맛은 웅크리고 있다가 살금살금 기어들어와, 모르는 사이에 사람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거의 즉시 자신의 하단전이 약간의 열기를 느끼는 것을 깨달았다. 피가 하체로 몰려들었다. 붓고 부풀어 오르는 것은, 더욱 분명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는 다리를 꼬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옷자락 사이로 불룩 솟아오른 것을, 감출 길이 없었다.

춘약이다.

마음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3층의 치명적 대치

엽풍은 북융심법을 가만히 운용하며 소주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뜨거운 기운을 눌렀다. 단전에서 일어나는 서늘한 진기가 혈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자,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이 식으며 흐트러졌던 정신이 조금씩 맑아졌다. 귀빈 옥패를 손에 꼭 쥔 채, 입가에 맴도는 씁쓸함을 애써 삼켰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천산파의 대사형으로서 이토록 추잡한 함정에 빠질 줄이야. 그는 더 깊이 심호흡을 하고는 치마폭에 가려진 다리를 움직여 계단을 올랐다.

삼층 복도는 더욱 화려했다. 벽에 걸린 주홍빛 비단 장막 사이로 은은한 사향 냄새가 흘러나왔고, 금실로 수놓은 모란꽃들이 희미한 등불 아래서 살아 움직이는 듯 번들거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숨 막히는 듯한 낮은 신음 소리와 천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이 기이한 조화를 이루며 복도를 떠돌았다. 이곳은 애초에 인간 세상의 이치가 통하지 않는 마경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뿐이었다. 그때, 붉은 옷을 입은 시녀 한 명이 살며시 다가왔다. 얼굴에는 천으로 만든 모란꽃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손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오늘밤 삼층의 명기들이 벌이는 잔치가 아주 흥미로우실 거예요.”

시녀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워 마치 꿈속처럼 몽롱했다. 그녀는 엽풍을 복도 깊숙한 곳까지 안내하며, 지나가는 방마다 그 안에 머무는 기생의 이름과 특기를 읊조렸다. 어느 방은 붉게 물든 작약 향기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고, 또 다른 방에서는 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흩어지며 변태적인 웃음소리가 진동했다. 엽풍은 애써 시선을 바로잡아 앞만 응시했으나, 이 미세한 감각들 하나하나가 그의 이성을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그때, 시녀가 멈춰 섰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복도의 가장 깊숙한 곳, 벽과 커튼이 겹겹이 드리워져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구석이었다.

“손님께서 원하시는 분은 이 안쪽이니, 소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시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모란꽃 가면 사이로 알 수 없는 미소를 번뜩인 듯하더니, 재빨리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엽풍은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감각이 특별히 예민해져 있었다. 그는 북융심법의 기운을 귀와 눈으로 끌어올려 조용히 운공했다. 순간, 주변 모든 방 안의 소리가 극명하게 분리되어 귓가에 꽂혔다. 거친 숨소리,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 낮고 음탕한 속삭임, 심지어 살갗이 부딪치는 미세한 마찰음까지. 그의 얼굴이 뜨거워졌고 손끝이 부르르 떨렸지만, 곧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이 모든 소리들 사이로 오직 맨 구석, 아무런 현판도 걸리지 않은 방만이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 방문 앞에 다가갔다. 문은 두꺼운 흑단으로 만들어졌고, 특이하게도 문틈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엽풍은 숨을 멈추고 귀를 바짝 갖다 댔다. 안에서는 아주 미세한 쇳소리 같은 것만 어렴풋이 감지될 뿐이었다. 조바심이 인내심을 압도하려는 찰나, 그가 무의식중에 운용하던 공력이 지나쳐 한 가닥 진기가 어깨에서 팔뚝으로 튕겨 나갔다. 우드득-! 하는 경미한 소리와 함께 흑단 문의 빗장이 진동에 떠밀려 저절로 옆으로 밀리고 말았다.

방 안은 짙은 훈향 연기로 자욱했고, 등불은 어둡게 죽어 있었다. 중앙에는 둥근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주위로 세 개의 인영이 둘러앉아 있었다. 정면에는 자주색 비단 옷을 입은 여인이 교자에 걸터앉아 한쪽 다리를 포개고 있었는데, 허리춤에는 번뜩이는 쇠갈고리가 차여 있었다. 그 옆에는 뚱뚱한 체구의 중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돼지 눈을 번들거리며 엽풍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가장 안쪽, 어둠 속에 반쯤 잠긴 태사椅上에는 주름진 얼굴의 검은 옷 노파가 뼈만 앙상한 손으로 염주를 굴리고 있었다. 노파의 눈꺼풀조차 들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멈췄다.

“고요한 줄 알았더니, 웬 날벌레 한 마리가 기어들어왔군.”

노파의 목소리는 마치 쇠를 긁는 듯 날카롭고 차가웠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깊숙이 파인 눈구멍 속에서 한 점 또렷한 빛이 번뜩이며 엽풍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었다.

“천산파의 내공은 봄바람처럼 느껴지는구나. 고수께서 여인의 치마까지 두르고 누추한 곳에 드실 정도면, 반드시 찾는 물건이 있겠지?”

엽풍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이미 최대한 내공을 수렴했건만, 이 노파에게 한눈에 간파당하다니. 그는 어쩔 수 없이 천산파의 사매를 찾는 일에서 가장 꺼려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내 사매 유천심을 어디에 감금했느냐? 목숨을 아끼고 싶다면 당장 내놓아라.”

자주 옷 여자가 입가에 걸친 요염한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품에서 쇠갈고리를 꺼내 손가락으로 살짝 튕기니, ‘쨍’ 하는 금속성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유천심? 아, 그 기구한 운명의 작은 미인이. 내 기억으로는, 아직 살아 있을 거다. 너도 곧 그 애를 만나게 될 테니, 서두를 것 없어.”

뚱보 중이 껄껄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뜨거운 기운이 용솟음치며 방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올라가더니, 검붉은 장력이 엽풍의 어깨를 향해 내리쳐졌다.

“이년아, 이곳이 어디라고 설치는 거냐!”

엽풍은 발을 옆으로 비스듬히 밀어 그 장력을 간발의 차로 피하고는, 손을 뒤로 뻗어 검을 빼려다 허공을 휘젓고 말았다. 검은 이미 소주방에서 빼앗겼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북융심법의 차가운 진기가 팔뚝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와 두 손바닥을 서리꽃처럼 하얗게 물들였다. 이것이 바로 천산파의 절기, 빙백신장이었다.

“사악한 무리들이여,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엽풍이 포효하며 왼손은 호를 그려 자주 옷 여자의 갈고리 공세를 흘려보내고, 오른손은 곧바로 뚱보 중의 가슴팍을 향해 찔러 넣었다. 자주 옷 여자의 갈고리는 그림자처럼 엽풍의 목과 등 뒤를 파고들었으나, 그녀의 몸놀림이 아무리 날쌔도 한랭한 장풍에 가로막혀 번번이 빗나갔다. 뚱보 중은 여러 번 장을 맞고도 여전히 사납게 날뛰었지만, 엽풍이 몸을 낮추며 쓸어차는 발에 무릎이 걸려 휘청거렸다. 그는 두 사람의 협공 아래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장법을 펼칠수록 기세가 드높아져 비단 소매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마치 설산의 신령이라도 강림한 듯했다. 바로 그때, 검은 옷 노파가 태사椅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어 한 줄기 새까만 연기를 뱉어냈다. 연기는 마치 살아 있는 독사처럼 공기 중에서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엽풍의 얼굴 앞까지 다가와 그의 코와 입으로 파고들었다.

“이, 이건… 주술…!”

엽풍은 충격을 받아 급히 숨을 멈추고 내공을 끌어올려 독기를 밀어내려 했지만, 검은 연기는 그의 경맥을 좀먹는 듯 가볍게 스며들었다. 그가 운용하던 북융심법의 진기는 순간 산산조각 났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무릎에서 힘이 쭉 빠졌다. 자주 옷 여자와 뚱보 중도 동시에 물러나 숨을 골랐다. 뚱보 중이 눈에 살기를 번뜩이며 불뚝 솟은 손바닥으로 엽풍의 정수리를 내리치려는 찰나였다.

“멈춰.”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자주색 치파오 자락이 살랑이며 바닥을 스치는 소리와 함께, 가늘고 긴 인영이 문가에 나타났다. 상금이었다. 그녀는 느긋하게 약지로 눈썹을 쓸어 올리며 기절한 엽풍을 굽어보았다. 훈향 연기 사이로 바라본 그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지만, 여전히 단아한 기품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살며시 허리를 굽혀 차가운 손가락으로 엽풍의 뺨을 스치듯 만지며,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이렇게 질 좋은 원료를 망가뜨리면 어쩌자는 거야. 신인께서 아시면 우리 모두 벌을 면치 못할 텐데. 이 아이는… 더 좋은 쓸모가 있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

인피옷의 위장

엽풍은 끝없는 어둠 속에서 달아나고 있었다. 사방은 칠흑 같고, 발밑은 마치 질퍽한 진흙인 듯 걸음을 뗄 때마다 깊이 빠져들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온몸을 휘감는 달콤한 향기와 피부에 와 닿는 미끄럽고 부드러운 촉감이었다. 손을 내저으며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주위의 어둠이 갑자기 걷히고 수많은 희붉은 나신의 여인이 조수처럼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들의 피부는 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흐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허공에서 뱀처럼 휘날렸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덩굴처럼 그를 얽어매고, 부드러운 살덩이가 마치 옥으로 빚은 듯한 그의 팔다리를 비비며 덮쳐왔다. 엽풍은 이성을 지키려 했지만, 입과 코를 가득 채운 그 달콤하고 비릿한 향기가 뱀처럼 뇌 깊숙이 파고들었다. 정신이 흐려지고, 하단전에 한 줄기 뜨거운 기운이 화르륵 타올랐다. 그 기운은 전에 없이 사나워서, 본디 원양의 기운이 단단하여 굳게 지키던 그가 이 순간, 육체가 완전히 통제 불능이 되었다. 그는 알아볼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눌리고 비비며 감싸 안은 부드러운 살덩이 사이로 함부로 찔러댔다.

그 순간의 쾌감은 마치 칼날 같았다. 의식은 흐릿했지만, 육체의 기억은 생생했다.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끝없이 단전의 내력을 뿜어내며, 마치 무너진 둑처럼 분류하여 나갔다. 여인들이 교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가 더 많이 토해낼수록 더욱 긴밀히 들러붙었다. 엽풍은 공포에 질려 멈추고 싶었지만, 몸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한 방울의 정기가 빨려 나가는 순간, 하복부에 날카로운 통증이 퍼졌다. 마치 정수가 아직 흘러나오는 사이, 무언의 거대한 힘이 뿌리부터 꺾어 버리는 듯했다.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내부에서 선명하게 울렸다. 그는 고개를 숙여 보았다. 그의 음경이 통째로 몸 안으로 쑥 들어가고, 겉에는 부드럽고 평평한 언덕과 한 줄기 놀란 듯한 붉은 실밥만 남아 있었다. 단전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고, 전신의 경맥은 마치 마른 강바닥처럼, 본디 흘러야 할 내력이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전신 무공이 완전히 소멸된 듯했다.

“아!”

엽풍은 몸부림치며 놀라서 눈을 떴다. 등골의 땀이 이미 헐렁한 속옷을 흠뻑 적셨고, 가슴은 망치로 친 듯 쿵쾅거렸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아랫배를 더듬었다. 그리고 옷감 너머로 실재하는 육체의 형태를 만지자, 그는 비로소 극심한 안도 속에 침상 위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아직 있는 것인가? 아직도 있는 건가?

숨을 돌리며, 그는 눈앞의 광경에 그제야 반응하기 시작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소복으로 덮인 비단 이불이었다. 이불에는 색이 바랜 원앙 한 쌍이 수놓아져 있었고, 손끝에 닿는 촉감은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분홍빛 모기장, 침대 옆의 화장대, 침대 발치의 작은 탁자 위에는 다 타버린 은색 촛농이 한 그릇 놓여 있었다. 이것은 분명 규방이었다. 방 안에는 여전히 찌를 듯한 매혹적인 향기가 감돌았고, 그 향은 꿈속의 악몽을 뒤흔드는 그 기운과 흡사했다. 그의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그는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등이 침상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는 죽은 가지처럼 반응이 없고, 전신이 텅 빈 것 같았다. 이마에는 가는 땀방울이 순식간에 맺혔다.

“깨어나셨군요.”

느릿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구석에서 들려왔다. 치파오 아래로 하이힐이 나무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상금이 은은한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그녀는 오늘 짙은 붉은색 쪽매무늬 치파오를 입고 있었는데, 부드러운 비단이 그녀의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를 완벽하게 감싸며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요염한 물결을 일으켰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다가와 엽풍의 이마를 적신 가는 땀을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부드럽게 마사지하며 말했다. “악몽을 꾸셨나 봐요, 놀라지 마세요. 여기는 취향각의 안쪽입니다.”

엽풍은 입술을 바짝 말리며 건조한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다. “난…… 난 어떻게 여기 있지? 동생은? 유천심은?”

상금은 안타까움 가득한 표정으로 곁에 앉아, 그가 저항하지 못할 만큼 가까이 다가앉았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비단처럼 가볍게 엽풍의 손등을 덮으며 말했다. “그 일은…… 다시 꺼내지 마세요. 그날 밤, 당신은 뒷마당에서 흑의노구와 싸우다가 그 검은 연기에 정신을 잃었어요. 깨어났을 때, 당신은 이미 거리에서 피로 물든 손으로 서 있었어요. 한데 죽인 것은 흑의노구가 아니라, 장안 포쾌 두 명이었죠. 관청에서는 지금 당신을 전당포 강도를 살해한 강도로 지목하고, 당신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가 사방에 붙어 있어요. 당신을 이 안 뜰로 옮긴 것은 내가 팔을 다친 채로 간신히 해낸 거예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눈썹 사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대는 이미 무공이 완전히 폐지된 몸이에요. 이제 밖으로 나가면, 틀림없이 죽음뿐이에요.”

엽풍은 눈을 크게 뜨고, 눈빛이 흔들렸다. 꿈속의 고통과 괴로움이 현실과 겹쳐져,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진흙 속에서 뒹굴다가 이 순간 상금에게 살짝 닦인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날 밤 싸움의 세세한 부분이 안개 속에 잠긴 듯했다. 피로 물든 손…… 포쾌…… 죽음. 심장 속의 무력감과 체면을 잃은 부끄러움이 휘몰아쳐, 그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나는 천산파의 대사형인데, 어찌……”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상금이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입술을 살며시 누르며, 애처롭고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상금은 당신 같은 영웅이 억울하게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요. 당신은 여기서 상처를 치료해야 해요, 알겠죠?”

엽풍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남은 것은 하루아침에 천산파 영웅에서 쫓기는 강도로 전락한 자신에 대한 엄청난 환멸뿐이었다.

처음 사흘 동안, 그는 상금의 향긋한 침실에서 보냈다. 상금은 그에게 한약 세 그릇을 먹였는데, 약은 입에 넣자마자 달콤하고 비릿한 맛이 났고, 목을 넘기자 온몸이 나른한 감촉에 휩싸였다. 기력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지만, 깊은 수면에서 깨어날 때마다 가슴이 한결 답답해졌고, 햇볕 아래 허벅지 안쪽이 미끈거리는 촉촉함이 스며들었다. 속옷에 낯선 체액 자국이 남아 있었고, 엽풍은 부끄러움과 분노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감히 소리를 내어 묻지도 못했다. 셋째 날 저녁, 그는 마침내 붉은 비단 침구를 걷어내고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를 가시려는 거예요?” 상금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버드나무처럼 가볍게 막아섰다. 치파오의 아랫단이 거의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렸다.

“바깥 상황이 어떤지 내다보려고 합니다.” 엽풍이 어렵사리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약간 쉰 목소리였지만, 눈빛 속에 다시 조금 굳은 기색이 감돌았다. “삼 일 동안 문밖 소식조차 전혀 듣지 못했으니, 사부님과 사문이 얼마나 조바심을 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상금은 고개를 저으며, 긴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가슴 앞으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팔 아래로 풍만한 가슴이 드러났다. “이미 봤어요. 거리 곳곳에 당신의 수배 전단이 벽을 가득 메웠죠. 게다가 흑의노구는 살아 있어요. 그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가 원한을 갚겠다고 맹세하며 당신의 목숨을 반드시 거둘 거라고 했어요. 당신이 지금 이 모습으로 나가면, 포쾌에게 잡히거나 그 노괴에게 산 채로 찢겨 죽는 것밖에 더 되겠어요?”

이 한 마디가 마치 칼날처럼 엽풍의 심장 깊숙이 박혔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붉은 칠한 창틀을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창백해졌다.

상금은 그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보며, 입가를 살짝 올리고 다가와 거의 그의 귀에 바짝 붙어, 한 올 한 올의 온기가 그의 귀에 닿을 듯 말 듯 속삭였다. “노신을 숨기고 바다를 건너는 방법이 있어요. 당신이 따르기만 하면, 하늘과 땅 아래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그 노괴조차도 눈앞에서도 진짜 엽소협을 절대 못 알아볼 거예요.”

엽풍은 몸을 살짝 비틀었다. “무슨 방법?”

상금은 대답하지 않고, 우아하게 화장대 쪽으로 걸어가 붉은색 자단목 서랍을 열었다. 손을 넣어 꺼낸 것은, 사지백체를 따라 흐르는 물 같은 광택이 감도는 한 벌의 살구색 두건이었다. 천은 한 겹에 불과했지만, 빛 아래서는 마치 살아 있는 듯했다. 그녀가 손목을 들어, 그 부드러운 두건이 흐르는 빛처럼 허공을 살짝 스쳤다. 그녀가 다시 손을 뒤집자, 손바닥 위에 한 벌의 접힌 인피 외투가 놓여 있었다. 접힌 부분 사이로 정교하고도 오묘한 인체 곡선이 은은히 드러나는데, 마치 방금 막 알몸의 소녀에게서 벗겨낸 듯, 따뜻한 피부 온기가 아직 스며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인피옷’이라고 해요.” 상금이 돌아서서, 눈빛 속에 비밀스러운 매혹이 반짝였다. “이 세상에 두 번째로 절묘한 변장 도구인데, 살아 있는 진짜 사람의 피부와 똑같아요. 한 번 입으면,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당신의 얼굴 생김새나 체형이 아무리 뚜렷해도 이 피부 아래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져요. 게다가 이건……” 그녀의 눈이 엽풍의 허리 아래로 미끄러지듯 떨어지며, 한순간 붉은 입술이 귓가에 닿았다. “……여자예요.”

엽풍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가 새빨개지며, 연이어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슨 소리요! 대장부가 세상에 우뚝 서 있는데, 어찌 여자의 가죽을 입고, 생식기를 숨기고 변장하란 말이오!”

“그럼 당신은 죽으러 갈 셈이에요?” 상금의 말투는 여전히 부드럽고 다정했지만, 눈빛은 갑자기 서늘해졌다. “사매를 구하지도 못하고, 큰 원한을 갚지도 못하고, 무고하게 살인귀 누명을 쓰고, 마지막 순간에 천산파까지 연루시키는 건가요? 이 인피옷 하나가 바로 당신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에요.” 그녀가 걸어와 인피옷을 그의 품에 밀어 넣으니, 촉감은 마치 혼이 없는 온기가 손바닥 안에서 꿈틀대는 듯했다. “도와주려고 한 건데,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상금도 더 이상 억지로 권하지 않겠습니다. 이 문을 나서면, 바깥에 깔린 천라지망을 피해 스스로 살 길을 찾아보세요.”

창문을 스치던 저녁빛이 엽풍의 얼굴에 길게 드리워져, 그의 굳게 다문 입술과 떨리는 눈매를 비추었다. 품 안의 인피옷은 피부에 바짝 달라붙은 것 같았고, 사방은 숨이 막힐 듯 고요했다. 그는 유천심이 물에 비친 어렴풋한 얼굴, 사부님이 당부하시던 눈빛, 그리고 흑의노구의 서늘한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자신이 죽으면 사문과 그 아이가 어찌 되는가. 극심한 굴욕 속에서 그의 손가락이 마침내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어떻게 입나요.”

상금이 마침내 웃었지만, 미소는 완전히 눈 밑까지 번지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살색 여자 두건을 그의 머리카락에 가볍게 감싸 주었다. 엽풍은 눈을 감았다. 얼굴 피부가 먼저 따끔하고 간지러운 액체에 살짝 쓰다듬어졌다. 그다음, 온기가 옮겨 붙듯 퍼졌다. 두건이 닿는 순간, 마치 수많은 투명한 촉수가 살갗에 파고드는 듯 뼈마디까지 따라 얼굴을 빚어내는 기이한 감각이 들었다. 광대뼈가 안으로 움푹 들어가고 턱선이 부드러워지며, 심지어 목젖마저도 이 살아 있는 듯한 피부층 속으로 녹아들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인피옷은 더욱 기괴했다. 상금의 손가락이 그의 전신을 훑으며, 옷을 한 올 한 올 벗겨내고, 그의 굳센 몸을 완전히 드러냈다. 엽풍은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상금은 태연하게 그 인피 외투를 마치 생사로 만든 얇은 종이처럼 펼쳐, 그의 등 뒤에서 살짝 덮어주었다. 두 팔이 소매 속으로 쑥 들어가자마자, 그 부드러운 안감이 붙고 수축하며, 원래 단단했던 근육을 한순간에 꽉 조여 없애버렸다. 어깨뼈가 좁아지고 팔뚝이 가늘어지며, 손가락마저 거문고를 타듯 가는 뼈마디로 변했다. 가슴 부위는 더욱 절묘했다. 피부가 몸에 붙는 순간, 가슴 앞쪽에 그 무언가가 자라는 듯한 낯선 무게감이 느껴졌다. 가슴 근육이 무너지면서 부풀어 올라 마치 두 개의 무르익은 밀감처럼 가슴 아랫부분을 무겁게 눌렀다. 젖꼭지는 가늘게 돋아 있고, 붉은 비단 위에 선명하게 보였다. 배꼽은 매끈하게 아랫배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허리 양옆은 움푹 패어 세상을 뒤흔들 만큼 가는 곡선을 그렸다. 엉덩이 쪽에서는 뼈가 저절로 열리며, 마치 살을 채워 넣은 듯 탱탱하고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

가장 절망스러운 부위가 곧 다가왔다. 허벅지 안쪽의 살갗이 만져지고, 인피옷의 하반신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서서히 아래로 덮여 내려왔다. 원래 있던 음경이 간신히 불룩 솟아오르다가, 그 특수한 안감에 감기자마자 꼬집고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통증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가 천천히 기어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았다. 음경이 안으로 뼈처럼 뒤집히며, 한 겹의 매끄럽고 촉촉한 새 피부에 휩싸여 완전히 납작한 부위 속으로 사라졌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어리고도 통통한 원앙 언덕과, 가운데를 따라 꽃잎처럼 가늘게 갈라진 한 줄기의 붉은 실밥뿐이었다.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그 속에 갇힌 음경은 미세하게 떨리며 여성 특유의 아래 복강 신경과 뒤엉켜, 아프고도 절실한 짜릿한 감각을 전해왔다.

마지막으로 발이 맨발로 그 매끄러운 외피 속으로 들어가자, 거친 뼈마디가 부드럽게 접혀 마치 연꽃과 같은 발이 되었다.

모든 소리는 멀어져 가버렸다. 엽교는 눈을 떴다.

거울 속에 서 있는 것은 완전히 절세의 작고 섬세한 소녀였다. 구름 같은 머리칼이 향기로운 어깨 위로 흩어져 있고, 살짝 올라간 눈초리에는 한 줄기 당황한 빛이 스며 있었다. 붉은 비단이 부드러운 젖은 살을 감싸 자극적인 호선을 드러내고, 가슴 위의 붉은 자국은 미세하게 떨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허리는 한 줌도 안 되어, 엉덩이 부위의 비단은 팽팽하게 당겨져 둥글고 풍만한 복숭아 모양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리를 옮기자, 다리 사이에 미세한 간지러움이 스쳤다. 아래의 외음부가 살짝 스치며, 거기에 숨겨져 감금된 그 남은 부위가 꿈틀대며, 마치 짐승의 고삐라도 된 듯했다.

엽교는 부들부들 떨며 손을 들어 자신의 젖가슴을 살며시 만졌다. 손끝이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움을 느끼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극도의 부끄러움이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마치 전염병처럼 척추를 타고 퍼지는 오싹한 사치스러운 쾌감이 있었다. 마치 벌거벗은 채 수천만의 시선 아래 서서, 모든 구멍과 모든 굴곡이 감금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쾌락에 물든 듯했다.

상금이 뒤에서 다가와, 긴 손가락으로 거울 속 소녀의 볼을 가리키며 눈을 가늘게 떴다. “봐요, 대협. 이렇게 하면 누가 당신이 여자가 아니라고 하겠어요?” 그녀의 다른 한 손은 아래로 뻗어 장난스럽게 엽교의 꼬리뼈를 살짝 쓸었다. 그녀는 민감하게 튕겨 올랐다. 상금이 나직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에요. 오래 입고 있으면 알게 될 거예요. 이 살갗 아래 숨겨진 즐거움이 당신이 평생 배운 무공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는 걸…….”

엽교는 거울 속에서 완전히 낯선 그녀가 부끄러움 속에서 무너지고, 눈가에 한 가닥 억누를 수 없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부정하고 싶었지만,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그 전율이 벌써 그녀를 어지럽고 감미로운 심연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방 안은 은은한 웃음소리와 억제된 가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엽교의 첫날밤

붉은 비단 휘장이 드리운 방 안, 공기는 짙은 훈향으로 가득했다. 탁자 위의 촛불이 흔들리며 벽에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직도 육신 깊은 곳이 저릿한 감각이 남아 있는 엽풍은, 낯선 여인의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 동경 속에 비친 얼굴은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흑의노구가 건네준 끈적한 액체를 뒤집어쓰고 뼈마디가 오그라들던 그 고통은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는 한 명의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다. 살결은 응축된 양지처럼 매끈하고, 눈매는 본래의 날카로움이 지워지고 가늘고 길게 휘어졌으며, 입술은 마치 피를 머금은 듯 붉었다.

엽풍, 아니 이제 엽교라 불려야 할 이 여체는, 내면에서 솟구치는 혐오와 공포를 억누르려 했지만,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인피 옷은 이미 살갗과 한 몸이 되어 구분할 수 없었다. 그 너무나도 생생한 감촉은 자신이 진짜 여인이 되었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문득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상금이 짙은 향기를 풍기며 들어왔다. 오늘 밤 그녀는 한층 더 요염하게 차려입고, 짙은 자색 치파오가 성숙한 육체를 감싸고 있었으며, 걸을 때마다 드러나는 긴 다리는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야, 참 곱구나. 이 옷은 분명 네 몸에 딱 맞을 거야.”

상금은 손에 연분홍색 비단 치마 한 벌을 들고 있었는데, 얇은 안개 같고 매우 부드러운 옷감이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엽교에게 입으라고 건넸다. 엽교는 치마를 받아들었고, 부드러운 감촉은 오히려 그녀의 가슴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풍아, 아닙니다. 엽교입니다. 기억하세요. 이제부터 이 세상에 엽풍은 없고, 오직 엽교뿐이에요. 이 옷을 입으면 더욱 요염해질 거예요. 어서 입어 보세요.”

말을 마친 상금은 두 팔을 교차하고 뒤로 조금 물러서서 그 동작을 지켜보았다. 엽교는 눈을 감았고,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엽풍이다! 천산파의 사형이다! 어떻게 이렇게 나약한 여인의 치마를 입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형세가 강해 거부할 수 없음을 알았다. 공력은 흑의노구에게 봉인되어 지금 이 육체는 글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녀는 옷깃을 풀어 거친 남자 옷을 벗었다. 인피 옷으로 뒤덮인 상체는 촛불 아래서 희뿌연 광택을 내고, 가슴팍은 미세하게 솟아올라 마치 정말 십대 소녀가 자라나는 듯한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그녀는 치마를 입었고, 얇은 비단이 피부에 닿자 알 수 없는 전율이 느껴졌고, 마치 수많은 부드러운 손이 그녀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허리를 조금 돌려 봐요.”

상금의 눈에는 칭찬과 더 깊은 음흉함이 담겨 있었다. 엽교는 고개를 숙이고, 마음속의 거부감에 몸까지 뻣뻣해졌다. 상금은 다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엽교의 아래턱을 집어 올리며, 그녀가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강요했다. “성질도 여전히 드세구나. 하지만 상관없어, 천천히 익숙해질 테니까. 자, 침상으로 가서 나머지가 얼마나 완벽한지 어디 한번 볼까.”

상금의 말투는 부드럽지만 거절할 수 없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녀는 엽교를 침상 가장자리로 밀어 앉히고 자신은 무릎을 꿇으며, 그 눈빛은 마치 눈 속의 들쥐를 응시하는 독사 같았다. 엽교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두 손으로 급히 치마를 눌렀지만, 상금에게 손쉽게 제압당했다. “뭘 숨기려는 거야? 너의 그 남자다운 핵심을 말이지.” 상금의 손가락이 살짝 더듬자, 갑자기 그녀의 동작이 멈췄고 눈에 한 줄기 놀라움과 엄청난 기쁨이 스쳤다.

“과연! 하늘이 주신 요물이로구나! 신인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바로 그 이중의 그릇이야!”

상금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약간 떨렸다. 그녀는 엽교를 침상에 눕혔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구름처럼 흩어졌다. 엽교는 몸부림치려 했지만 상금의 손이 따뜻한 쇠집게처럼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놔줘! 너, 대체 뭘 하려는 거야!” 엽교의 목소리는 여성의 부드러움을 띠었고, 그 다급함 속에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상금은 말이 없이 고개를 숙이고 연분홍 혀끝으로 엽교의 왼쪽 가슴에 핀 붉은 매화를 가볍게 핥았다. 그 습하고 뜨거운 감촉에 엽교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온몸을 관통하는 전류가 흘러 척추에까지 퍼졌다. “으… 안 돼…”

거부의 말은 매우 약하게 들렸다. 상귀는 기세를 올려 부드럽게 한 번 빨아들였고, 이는 마치 엽교 영혼의 심장부를 빨아당기는 듯했다. 이 세상의 극한 쾌감이라 할 수 있는 감각이 가슴에서 터져 나왔고, 그녀의 정신은 한순간 공백이 되었다. 몇 번의 싸움 속에서도 무거운 칼에 베여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던 그녀가, 이 순간만은 참을 수 없는 신음을 흘렸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상귀의 또 다른 손이 아래로 미끄러져 그녀가 감추고 싶었던 이형을 정확히 움켜쥐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손바닥은 부드럽고 섬세했지만, 은근하면서도 끈질긴 힘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엄지손가락으로 가장 민감한 꼭대기를 천천히 원을 그리며 문질렀다.

“아…!”

엽교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고, 눈에는 이미 투쟁의 빛이 희미해지고, 대신 풀리지 않는 물안개가 어렸다. 인피 옷이 남성의 피부를 뒤덮었지만, 동시에 여성의 신경을 심고 그 민감도를 백 배로 증폭시킨 듯했다. 상귀가 다시금 그녀의 입술을 덮치고 혀끝으로 그녀의 이빨을 살짝 비집고 들어갔다. 엽교는 정신을 가다듬고 이를 악물었지만, 신체의 절실한 공허감과 갈망이 그녀의 의지를 무너뜨렸다. 그녀는 신음했고, 그 순간 상금의 혀가 밀고 들어와 달콤한 침을 가져왔다. 그 감미로움은 마치 최음제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엽교는 자신의 혀가 본능적으로 따라가고 뒤얽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깊은 입맞춤 속에서 그녀는 완전한 타락의 숨결을 맛보았다. 혐오와 쾌감이 뒤섞여 강력한 소용돌이를 이루고 그녀의 모든 이성을 삼켜버렸다. 상금의 동작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혀끝은 엽교의 목을 따라 쇄골까지 내려갔고, 마침내 음경의 머리에 닿아 가볍게 한 번 감쌌다. 그 한순간, 엽교의 의식은 폭발했다. “으아아—!”

참을 수 없는 절규도 아니고, 일부러 낸 신음도 아닌, 마치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방황하던 나그네가 갑자기 따뜻한 불빛을 보았을 때 터져 나오는, 모든 것을 버린 듯한 해방감 같은 소리였다. 그녀는 느꼈다. 완전히 다른 여성의 쾌감을. 온몸의 혈맥이 뒤틀리고 수축되며, 마침내 전례 없는 떨림으로 한곳에 모여드는 것을. 상금의 유연한 혀와 입술, 그리고 그 능숙하면서도 변화무쌍한 리듬이, 그녀를 거친 파도 속의 한 조각 작은 배처럼 밀어 올렸다가 떨어뜨리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천둥이 땅을 찢는 듯한 격렬한 떨림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휩쓸었다. 엽교의 몸이 곧게 펴졌다가 순간적으로 완전히 부드러워졌다. 눈물과 식은땀이 뒤섞여 그녀의 관자놀이를 적셨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어마어마한 부끄러움과 자책감이 조수처럼 그녀를 삼켰다. 그녀는 옆으로 몸을 돌리고 몸을 웅크렸다. 귀에는 아직 자신의 전율 섞인 신음이 맴돌고 있었고, 온몸의 살갗은 아직도 불길 속에 있는 듯 민감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나는 사매를 구하러 온 거야. 나는 천산파의 사형이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이런 마성의 쾌감에 빠져 자신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상금은 천천히 일어나 손수건으로 입가를 우아하게 닦았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책감에 빠진 엽교의 뒷모습을 굽어보았다. 그것은 마치 무릉도원에 처음 들어간 어린 소녀의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 같았다. “잘 쉬어요. 엽교 아가씨. 첫날밤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까.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아직 많답니다.”

말을 마치고 상금은 휘장을 헤치고 나갔다.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고, 촛불만이 쓸쓸히 타오르고 있었다. 엽교는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공력을 회복하기만 하면, 반드시 이 마굴을 떠나리라. 반드시 이 모든 것을 고통스럽게 했던 요부를 제거하리라! 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인피 옷의 독소는 이미 골수를 침투했고, 한 번 맛본 그 쾌감은 뼈에 사무친 독충처럼 이미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 뿌리내렸다. 앞길은 그녀가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칼날과 핏빛이 전부가 아니었다.

방 밖, 복도에서 상금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방문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냉소가 떠올랐다. “정말로 보기 드문 좋은 그릇이야. 강렬한 투지와 신인이 좋아하는 수치심을 모두 갖추고 있지. 양육한 지 여러 해 된 유천심은 자신을 지키느라 끝내 무르익지 않았는데, 이 엽교는 과연 절정기에 딱 맞구나.”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붉은 입술을 살짝 쓰다듬으며, 속으로 어떻게 다음 단계를 밟아갈지 구상했다. 어떻게 하면 이 천산 제자에게 더욱 진한 정욕 환상을 체험하게 하고, 어떻게 그 의지를 한 치 한 치 분쇄하여, 저 무공이 뛰어난 사형을 신인 발아래 가장 완벽하고도 굴종하는 성스러운 그릇으로 만들지.

어두운 복도에, 여인의 낮고 탐욕스러운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거울 속 낯선 모습

거울 앞에 선 엽교는 손끝으로 놋쇠 테두리를 따라 천천히 쓸었다. 차가운 금속 감촉이 손가락 마디를 타고 올라와 어깨까지 긴장시켰다. 거울 속 인영은 더 이상 천산파 대사형의 모습이 아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뾰족한 턱선 아래로 가느다란 목이 이어졌다. 옥색 피부 위로 희미한 핏줄이 비칠 듯 말 듯 스며 있었다. 엽교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가슴 언저리에서 옷감이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곡선, 허리께로 갈수록 오목하게 들어간 실루엣, 그리고 치마폭 아래로 드러난 종아리의 완만한 굴곡까지.

손을 들어 올렸다. 거울 속 여인도 똑같이 손을 올렸다.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으며 손목뼈가 앙상하게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살이 올라 있었다. 엽교는 천천히 손바닥을 뒤집었다. 관절 사이로 푸른 핏줄이 은은하게 스며 나왔다. 분명 자신의 손인데 낯설었다.

심호흡을 한 번 깊게 들이쉬었다. 단전에 기운을 모아 운공을 시도했다. 예전 같으면 따뜻한 기운이 배꼽 아래에서부터 솟아올라 전신으로 퍼져 나갔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공허한 울림만이 하복부에서 맴돌았다. 마치 깊은 우물 안에 돌을 던졌는데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기분이었다. 손끝에 힘을 모아 다시 한번 내공을 밀어 넣으려 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바람 빠진 풀무처럼 힘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엽교의 눈썹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고, 그 숨소리는 예상보다 한 옥타브쯤 높았다. 저도 모르게 목을 움켜잡았다. 후두 부위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울퉁불퉁한 연골이 만져지던 자리는 이제 매끈했다. 목젖이 사라진 것이다.

"도련님, 아니... 이제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목소리를 내뱉자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음색이 귀에 거슬렸다. 남자의 굵직한 음역은 사라지고 대신 구슬이 옥판 위를 굴러가는 듯한 청아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 목소리로 천산파의 무공 구결을 읊을 생각을 하니 속이 메슥거렸다.

손이 허벅지 바깥쪽으로 내려갔다. 엉덩이뼈 위로 살집이 둥글게 솟아 엉덩이 전체가 완만한 호를 그리고 있었다. 예전에 단단한 근육으로 감싸여 있던 부위는 지금 부드럽고 탄력 있는 촉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골반이 자연스럽게 좌우로 흔들리는 걸 느꼈다. 허리부터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곡선을 감싼 치마 자락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살랑거리며 다리 안쪽을 간질였다.

난간을 짚고 옆으로 몇 걸음 옮겨 보았다. 발목이 삐끗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평소보다 한 뼘쯤 짧아진 다리 길이 때문인지 신체 중심이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아니, 다리가 짧아진 건지 원래 자신의 신장 자체가 줄어든 건지, 아니면 인피 옷이 모든 감각을 왜곡하고 있는 건지조차 가늠이 안 됐다.

"엽교 아가씨."

문밖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금이었다. 엽교는 재빨리 거울에서 물러나 자세를 곧추세웠다. 어깨를 펴고 양손을 모아 단정히 앞으로 내렸다. 순간 자신의 몸짓에 소름이 돋았다. 언제부터 이런 여인의 자세가 몸에 배었단 말인가.

문이 열리고 상금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들어왔다. 손에는 옥색 비단보를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 또 무언가 잔뜩 들어 있었다.

"오늘은 걸음걸이와 앉는 법을 좀 가르쳐 드리려고요."

상금이 비단보를 탁자 위에 풀어 놓았다. 얇은 견직물로 만든 속치마와 겉치마, 그리고 옅은 자주색 저고리 몇 벌이 가지런히 펼쳐졌다. 그 옆으로는 비취빛 머리 장식과 진주 귀고리, 분첩과 연지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치마 입으실 때는요, 허리끈을 너무 조이면 아랫배가 불편하시니까 적당히 여유를 두시는 게 좋아요."

상금이 분홍빛 치마 한 벌을 들어 엽교의 허리에 대 보이며 말했다. 손놀림이 익숙하고 부드러웠다.

"걸음은 너무 성큼성큼 걷지 마시고요. 이렇게... 발끝을 살짝 안쪽으로 모은다는 느낌으로, 한 걸음씩 사뿐히 디디세요."

상금이 직접 시범을 보였다. 치파오 자락 아래로 드러난 긴 다리가 우아하게 교차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엉덩이가 리드미컬하게 좌우로 흔들렸고, 그 움직임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절묘한 폭으로 허리까지 전해졌다. 키가 큰 그녀의 체구가 오히려 더욱 요염하게 비춰질 정도로 교태가 묻어나는 걸음걸이였다.

엽교는 입술을 깨물었다. 천산파 대사형으로서 수많은 경공술을 익혀 왔건만, 계집의 걷는 법을 배우고 있는 스스로의 처지가 치욕스러웠다.

"이제 해 보세요."

상금이 손짓으로 재촉했다. 엽교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발을 내디뎠다. 발끝을 안쪽으로 모은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한 걸음 떼었다. 두 번째 걸음을 떼는 순간 중심이 앞으로 쏠리며 상체가 휘청거렸다.

"아가씨, 상체를 뒤로 살짝 젖히세요. 허리에 힘을 빼시고요."

상금이 다가와 엽교의 등을 손바닥으로 살며시 밀어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엽교의 등허리에 닿는 상금의 손길이 섬뜩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동시에 허리께에서 느껴지는 상금 손바닥의 체온이 묘한 감촉으로 피부에 스며들었다.

"이제 앉는 법을 가르쳐 드릴게요. 앉으실 때는 치마자락을 이렇게 한 손으로 살짝 쓸어 올리고, 엉덩이는 의자 깊숙이 넣지 않고 앞쪽에 걸친다는 느낌으로..."

상금이 엽교를 등나무 의자 앞으로 데려갔다. 엽교는 시키는 대로 치마자락을 쓸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앉았다. 허벅지 뒤쪽의 살이 의자에 닿으면서 전해지는 부드러운 촉감이 낯설었다. 예전에 단단한 둔부 근육으로 딱딱한 바위라도 아무렇지 않게 주저앉던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무릎은 가지런히 붙이시고요. 상체를 곧추세우되 어깨에 힘은 빼시고..."

상금이 엽교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가볍게 눌러 주며 자세를 교정했다. 어깨를 감싼 인피 옷 너머로 상금의 체온이 은근하게 스며들었다.

"아주 잘하시네요. 며칠 사이에 정말 많이 여성스러워지셨어요."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투였다. 엽교는 시선을 들지 못하고 다소곳이 아래만 내려다보았다. 테이블 아래로 보이는 자신의 무릎과 종아리 선이 낯선 여인의 다리처럼 보였다.

"이제 기본적인 건 다 배우셨으니 의복도 갈아입고, 연지 화장도 해 보시죠."

상금이 빙긋 웃으며 분첩을 들어 올렸다.

"제가 오늘 예쁘게 만들어 드릴게요."

엽교는 대꾸 없이 입술을 다물었다. 거울 속 낯선 모습이 하염없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단전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공허함과, 살갗 위로 스미는 비단의 부드러운 촉감이 자꾸만 기이하게 뒤섞였다.

"입술 좀 살짝 벌려 보세요."

상금의 손이 턱을 잡아 살짝 들어 올렸다. 연지 묻은 붓끝이 엽교의 아랫입술에 닿았다. 차갑고도 축축한 감촉이 입술을 타고 스며들었다. 연지의 화학적인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예쁘네요. 정말 예뻐요. 엽풍 도련님이 이렇게 아름다우실 줄은 몰랐네요."

상금의 목소리에 짙은 만족감이 스며 있었다. 엽교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거울 속 여인은 이미 입술까지 붉게 물든 채였다.

그날 밤, 엽교는 잠자리에서 여러 차례 뒤척였다. 취향각 내부를 은은하게 감도는 향내가 방 안까지 스며들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 깊이 달콤한 연기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꿈속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비단 이불이 허벅지 위로 서서히 밀려 올라가는 감각에 몸이 화들짝 놀랐다. 입술 주변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길로 더듬어지는 듯했다.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를 타고 귓바퀴를 적시며 내려왔다. 손목 안쪽에서 맥박이 지나치게 빠르게 뛰었다.

꿈속에서 어떤 그림자가 다가와 허리께를 감쌌다.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전기가 오르듯 피부가 찌릿하게 반응했다. 숨을 헐떡이며 몸을 뒤틀 때마다 이불과 살갗 사이로 미끄러지는 부드러운 마찰감이 몸 구석구석을 타고 올라왔다. 젖가슴 아래쪽에서 어떤 근육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풀어졌다.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예민한 감각이었다.

꿈속에서 엽교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깨어날 때쯤 자신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신음소리는 이미 낮은 남성의 울림이 아니라, 휘파람새 울음처럼 가냘픈 여인의 숨소리였다.

눈을 떴다. 천장에 드리운 비단 휘장이 어스름한 불빛 속에서 물결치듯 일렁이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손을 이불 밖으로 빼내어 이마를 닦았다. 손바닥의 부드러운 살결이 미끌거리며 이마를 훑고 지나갔다. 가슴이 아직도 가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 정확히는 가슴 언저리에 위치한 두 개의 완만한 솟아오름이 호흡에 따라 미세하게 부풀었다 가라앉는 것을 실감했다.

속옷 아래로 느껴지는 젖가슴의 무게감이 몽롱한 의식 사이로 또렷하게 감지되었다. 단순한 살덩어리가 아니라, 마치 거기에도 독립된 감각 신경이 존재하듯 촉촉하고 예민한 느낌이 스며 있었다. 다리를 오므리자 허벅지 안쪽 피부가 서로 스치면서 미세한 마찰열을 일으켰다. 평소 같으면 느끼지 못할 미세한 촉감이 마치 돋보기로 확대한 것처럼 선명하게 뇌에 전해졌다.

"이건 뭐지..."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그 목소리의 여성스러운 음색이 오히려 꿈속의 잔상과 겹쳐져 소름을 돋게 했다.

다음 날 오전, 엽교는 일부러 복도로 나가 하녀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취향각 안에서는 하녀들도 대부분 무공을 익힌 여자들이었기에 직접 물으면 의심받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혹시 사매에 관한 단서라도 흘러나올까 싶었다.

"요즘 신인을 모실 준비 때문에 안 그래도 바쁜데..."

"지난번에 잡혀온 그 아가씨 말이야..."

귀를 쫑긋 세웠다. 사매일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기둥 뒤로 바짝 붙었다.

"제물감으로 아주 적합하다고 하셨어. 팔다리가 곱고 깨끗한 처녀라야 한다잖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처녀. 무공을 익히느라 혼인을 미뤄 온 유천심이었다. 천산파에서 유천심은 아직 시집가지 않은 처녀였다. 이곳 여자들이 말하는 대상이 사매라는 확신이 점점 짙어졌다.

"혹시 나중에 어디 계시는지..."

엽교가 조심스럽게 다가가려는 순간,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엽교 아가씨, 여기서 뭘 하고 계세요?"

상금이었다.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평소보다 날카로웠다. 엽교는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고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좀 답답해서 바람 쐬러..."

"아, 그러셨군요. 그래도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셨으니 너무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상금이 다가와 엽교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손목을 잡히자 인피 옷을 통해서도 상금 손바닥의 부드러운 감촉과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손길이 은근히 맥을 짚는 듯한 손놀림으로 변하더니, 엽교의 맥박을 확인했다. 무공을 익혀 온 무인의 습관으로, 엽교는 본능적으로 손목을 뒤로 빼려 했다. 그러나 단전의 공허함 탓에 팔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맥이 좀 빠르시네요. 밤에 잠을 설쳤나 봐요."

상금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엽교의 손목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포박처럼 느껴졌다.

"방으로 돌아가시죠. 좋은 차를 한 잔 타 드릴게요. 몸도 녹이고 기분도 좀 가라앉히실 수 있게요."

엽교는 끌려가다시피 복도를 되돌아갔다. 뒤에서 하녀들의 대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상금의 손목을 잡은 손아귀 힘이 의외로 단단했다. 겉으로는 부드럽게 대해도 내심 엽교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방으로 돌아오자 상금이 직접 차를 우려 내왔다. 차향 속에 은은하게 스며 있는 달콤쌉쌀한 향이 또 다른 약재임을 직감했지만, 그녀 앞에서 차를 마시지 않을 구실도 없었다.

"걱정 마세요. 몸에 나쁜 건 절대 타지 않으니까요."

상금이 차를 내밀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엽교는 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향긋한 차의 온기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묘하게도 가슴속 긴장감이 조금 누그러졌다. 누그러지는 동시에 머릿속이 약간 몽롱해지며 상금의 얼굴이 전보다 더 다정하게 보였다.

"당신은 왜... 나한테 이러는 겁니까."

엽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여인의 음색에 가까웠다.

"당신이 특별하니까요. 아주 귀한 그릇이에요.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

상금이 차분하게 대꾸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차의 김 너머로 엽교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내공만 잃은 게 아니라, 지금 당신은 통째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중이에요. 무리하게 옛날 생각만 하면 힘들어질 뿐이에요. 여기서 순응하며 몸과 마음을 편안히 가지면... 나중에 훨씬 더 좋은 일이 생기실 거예요."

상금의 말투에 현혹이라도 하는 듯한 달콤함이 묻어 있었다. 엽교는 잔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순응하라니. 여기에 순응하면 천산파의 대사형은 이제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매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과, 밤사이에 수차례 경험한 몸의 민감한 반응들, 그리고 지금 상금의 부드러운 얼굴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한편 취향각 깊숙한 곳, 복도 저편 어두컴컴한 그림자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노파가 담벼락에 기댄 채 엽교의 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흑의노구다. 그녀의 손에 쥔 흑기 고리가 미세하게 부르르 떨리며 은은한 흑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노파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작은 결계를 그렸다.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원형 문양이 엽교의 방 쪽을 잠시 맴돌다가 이내 스며들 듯 사라졌다. 노파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인피가 이미 경락에 붙었군. 피부 아래 진액과도 섞이기 시작했어."

흑의노구가 낮고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손 써도 떼어낼 수 없는 경지야. 벗기려 하면 살점째 뜯겨나가지."

노파의 손가락이 허공을 스치자, 검은 연기가 다시 한 번 소용돌이치며 엽교의 방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올가미로 방 전체를 휘감는 듯했다. 방 안에 있는 엽교의 기운을 확인하는 듯, 연기가 방문 틈으로 살짝 스며들었다가 다시 노파의 손끝으로 돌아왔다.

"용기는 거의 완성됐고, 앞으로 조금만 더 다듬으면 신인의 그릇으로 써도 손색없겠어... 오히려 다른 여자들보다 더 순수한 음기를 품을 수 있을 거다."

흑의노구는 손을 거둬들였다. 망토 자락이 바람도 없는데 살랑이며 부풀어 올랐다.

"천산파의 무공이 깃든 육체니, 신인이 강림하면 그 무공조차 모조리 흡수하겠지."

노파는 마지막으로 엽교의 방을 한 번 응시한 뒤, 무거운 발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복도를 쓸고 지나갔지만, 엽교의 방 안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두 사람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조련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여명, 취향각 깊숙한 밀실에는 은은한 사향 냄새가 감돌았다. 엽풍, 아니 이제는 엽교라 불러야 할 그녀는 비단 요 위에 반쯤 누운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인피 옷은 살갗에 바짝 달라붙어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몸인 양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가슴 언저리가 묘하게 부풀어 오르고 허리는 잘록하게 조여드는 이물감이 여전히 낯설었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몸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정체 모를 열기였다.

“오늘은 좀 나아졌나 보네.”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상금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치파오 자락이 바닥에 살짝 끌리며 걸음걸이마다 실루엣이 물결쳤다. 그녀는 손에 백옥 접시를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작은 자기 병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내공은 점차 회복되는 중이지만, 인피 옷이 아직 몸에 완전히 녹아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내가 직접 기혈 순환을 도와주지.”

상금은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엽교의 등 뒤로 다가가 한 손을 어깨에 올렸다. 손끝에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드는 듯했지만, 곧 은근한 온기로 바뀌었다. 엽교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놔라! 나는 천산파 대사형 엽풍이다. 네 녀석들의 음험한 계략에 그냥 당하고만 있을 성싶으냐!”

말투는 강했지만 목소리는 더 이상 거친 사내의 것이 아니었다. 인피 옷이 성대마저 변화시켜, 그 분노조차 앵무새 우짖듯 가녀리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상금은 낮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경추를 따라 천천히 쓸어내렸다.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고 있네. 대사형의 신분을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인피 옷은 이미 네 살에 붙었어. 네 몸 자체가 이제 하나의 예술품이야. 천산파의 그 협의(俠義)니 도의(道義)니 하는 것들, 이 안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어. 긴장 풀어. 편안하게 내 손길을 느껴 봐.”

그녀의 손가락은 음악을 연주하듯 정확했다. 처음에는 어깨와 등에 머물며 굳은 근육을 풀었지만, 점차 그 손길은 미끄러지듯 앞으로 흘러내려 쇄골을 스치고 인피 옷이 만들어낸 부드러운 봉우리 언저리에 가볍게 닿았다. 엽교는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전율이 꼬리뼈를 타고 솟구쳐 올라 머리끝까지 찔렀다.

“이, 이런 무엄한 짓을 그만두지 못할까!”

엽교가 그녀의 손목을 잡으려 했지만, 놀랍게도 팔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지난 며칠간 그 ‘치료’라는 과정에서 상금은 어떤 미약을 썼는지, 내공이 간신히 한 가닥 정도 모이는 듯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나 흩어지고 말았다.

“무엄한 짓? 지금 네 몸을 위해 혈도를 풀어주고 기혈을 소통시키는 중인데, 무슨 무엄함을 논하겠어?”

상금의 손가락이 그 예민한 정점을 스치자, 엽교의 전신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거의 동시에 벌어질 듯한 탄식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녀는 간신히 입술을 물고 참아냈지만, 그 억눌린 반응을 상금이 놓칠 리 없었다.

“음, 혈도가 꽤 막혔네. 좀 더 깊은 곳을 풀어주지 않으면 제대로 효과가 없겠어.”

옥 같은 손이 복부를 따라 천천히 아래로 탐색해 들어갔다. 옷자락을 헤치고 손가락으로 은밀한 골짜기를 더듬는 상금의 손길에 엽교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등 뒤에서 들리는 상금의 숨결이 다소 거칠어졌다.

“그렇게 움직이지 마.”

또 한 손이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상금의 손가락이 밀혈 깊숙이 파고드는 순간, 엽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미줄처럼 가는 실핏줄이 그녀의 살갗에 감겨 있었고, 그 파일을 따라 상금의 지문이 한 올 한 올 비벼댔다.

“그만… 거기, 만지지 마…아!”

엽교가 황급히 탄식을 토해내자, 상금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스쳤다.

“혈도를 풀려면 각도를 정확히 조절해야 해. 참아.”

그녀의 말투는 아직 온화했지만, 손가락은 오히려 더 많은 수분을 머금게 하여 부드러우면서도 집요하게 깊이를 더했다. 엽교의 허리가 활처럼 뒤로 젖혀졌다. 살갗에 덮인 인피 옷은 그 이상한 촉감에 반응하며 꿈틀거렸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피부가 되어 그 손님을 맞이했다.

상금은 다시금 손가락을 살짝 구부려 그 예민한 벽을 쓸어내렸다. 체액이 스며나오는 소리가 은밀하게 울려 퍼졌다. 그녀의 얼굴이 귀 가까이 다가왔다. 뜨거운 숨결 사이로 붉은 혀끝이 슬며시 드러났다.

“네 귀는 참 예쁘구나.”

혀가 귓바퀴를 살짝 핥으며 바람구멍 안으로 스며들었다. 거의 동시에 하체로 파고든 손가락의 움직임이 더욱 깊어졌다.

“멈춰! 나는… 나는 남자야… 이런 것에 빠져선 안 돼…”

엽교의 말투에는 실낱같은 완강함이 섞여 있었지만, 몸은 이미 솔직했다. 엉덩이가 크게 떨리며 의식과 상관없이 손가락의 움직임에 호응하고 위아래로 부서지듯 흔들렸다.

“남자? 지금 이런 몸으로?”

상금은 혀로 귓바퀴 안쪽을 휘저으며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듯이, 다른 손으로 숨겨진 음경을 만졌다. 부풀었지만 막 딱딱해지려는 순간, 그녀는 손끝으로 요도 입구에서 한 바퀴를 돌렸다.

“아, 거긴…”

엽교의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중의 쾌락이 뇌수를 거의 태워버릴 듯했다. 앞쪽은 남성의 감각에 간지럽고, 뒤쪽은 여성의 밀혈이 깊이 박힌 손가락에 이끌린다. 그녀의 손이 무의식중에 요 아래 비단을 움켜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긴장 풀어, 그냥 몸의 느낌을 따라가.”

상금이 손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며 입술로 천천히 엽교의 목덜미를 훑자, 그 촉감은 마치 나비가 꽃을 스치는 듯 가벼워 전신에 소름이 돋게 했다.

“싫어… 느끼고 싶지 않아… 이런 건 아니야…”

엽교의 두 눈이 충혈되고 눈물이 맺혔지만, 숨소리는 점점 큰 파도를 이루었다. 상금의 혀가 그녀의 입술을 슬쩍 스치는 순간, 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입을 살짝 벌리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막 닿으려는 순간, 상금은 오히려 몸을 빼며 한 걸음 물러나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치파오가 약간 흐트러져 쇄골이 드러나 있었지만,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우아했다.

“오늘 치료는 여기까지. 잘 쉬어. 화분의 혈도가 좀 풀렸으니 기분도 훨씬 좋아졌지?”

엽교가 다리를 꼬고 있는 사이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상금이 떠난 뒷모습을 보지 않으려 했다.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모두 위장일 뿐이야. 그들에게 완전히 굴복했다고 믿게 만들어야만 유천심 사매의 소식을 알아낼 기회가 있는 거야. 잠시 이 굴욕을 참아내면 언젠가 반드시 이 마굴을 단번에 뒤집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녀는 또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인피 옷에 갇히고 흑의 노파에게 내공을 봉인당한 지금,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이 향락 속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육체뿐이었다. 그리고 이 육체는… 매번 치료를 마치고 나면 항상 그 부드러운 손길을 다시 갈망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문득, 문이 벌컥 열리며 자색 옷을 입은 여인과 뚱뚱한 스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섰다. 뚱뚱한 스님의 얼굴에는 조급증이 가득했지만, 엽교를 보자 곧바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좀 순해 보이는데? 더 이상 네 놈이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소리치지 않는 거냐?”

자색 옷의 여인은 채찍을 비스듬히 들고 엽교가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쓰러져 옷을 만지고 숨을 가쁘게 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차갑게 훑어보았다.

“아이고, 당당하던 천산파 대사제님의 모습을 한번 봐라! 지금의 서 있는 것도 휘청거리는 꼴이 창루의 최하급 기녀만도 못하구나. 네놈은 차라리 그냥 우리 배 밑에 와서 제대로 모시는 법을 배우는 게 낫겠다!”

“시끄럽다!”

엽교가 고함을 지르며 일어나려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의 수치심과 방금 전의 쾌락이 그녀의 맥박을 잘게 끊어놓았다. 그녀의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다시 침대 옆으로 고꾸라지며 몸을 버티지 못했다.

“하하하! 저걸 봐! 저 꼬리 치는 개 같으니라고!”

뚱뚱한 스님이 크게 웃으며 상금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올렸다.

“역시 네 솜씨가 최고야. 그 잘난 척하던 천산파 무공도 결국 네 약과 부드러운 손길 앞에선 힘을 못 쓰네. 이제 며칠만 더 하면 저 여자가 자기 본연의 모습조차 잊어버리고 오로지 다른 사람 아래에서 신음하는 것만 생각할 거야.”

엽교의 눈에는 분함의 불길이 타올랐지만 상금을 올려다보자 그 불길이 순식간에 느릿느릿 타들어 갔다. 상금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누각 안을 좀 돌아다니면서 손님들을 봐도 좋아요. 하지만 지금 이 모습으로 나가면 위험하니까, 우리가 예쁘게 꾸며줄게요.”

“네가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엽교가 반사적으로 가슴을 움켜잡았다. 상금이 손뼉을 치자 곧바로 두 명의 여종이 비단 상자를 들고 들어와 열었다. 그 안에는 산뜻하고 우아한 비단 치파오 한 벌과 반투명의 속살이 비치는 긴 장갑, 그리고 입으면 걸음걸이가 절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굽 높은 신발이 놓여 있었다.

자색 옷의 여인이 채찍으로 치파오를 살짝 집어 올리며 험악한 미소를 지었다.

“옷을 갈아입어. 오늘은 취향각이 새로 온 여인의 데뷔 무대야. 부끄러워할 것 없어, 우리가 잘 꾸며줄 테니까.”

“죽어도 안 입는다!”

엽교가 버둥거렸지만 상금이 다가와 다시 한 번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착하지. 유천심의 생사는 당신의 태도에 달려 있어요. 그 아이는 무사한가? 아니면 고통 속에 빠지길 바라는 건가요?”

엽교의 몸이 순간 굳었다. 유천심이란 이름은 독약 같아서 순식간에 그녀의 온몸을 마비시켰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마침내 눈을 감고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엽교는 그 치파오로 갈아입었다. 올이 가느다란 비단이 몸에 착 달라붙어 매끄러운 실루엣을 드러냈다. 가슴과 엉덩이는 슬쩍 감싸여 은은한 곡선을 이루었고, 반짝이는 자수 무늬가 빛을 머금어 걸을 때마다 어른거렸다. 발에 꿰매어진 듯한 굽 높은 신발은 걸음걸이를 더욱 아슬아슬하게 만들었고, 익숙한 무인의 발걸음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자색 옷의 여인이 그녀의 입술에 선홍색 연지를 찍어 발랐다.

“참, 향분도 잊지 마라.”

상금이 손수 백자 호리병에서 향수를 조금 따라 손목과 귀 뒤에 찍어 발랐다. 향수 기운이 옅게 깔리며 엽교의 숨결이 다시 한 번 엉켰다. 그것은 분명 미약이 섞인 향기였다. 후각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자, 걸음을 떼기도 전에 아랫배에서 이상한 열기가 들끓었다.

복도를 지나 누각 앞 홀로 나서는 길은 그녀에게 한 평생처럼 길게 느껴졌다. 발걸음마다 굽이 바닥을 두드리며 찍, 찍, 찍 우아한 리듬을 새겼다. 조명이 교차하는 홀에는 이미 몇몇 비단옷을 입은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때때로 무대 위를 훑었지만, 엽교가 휘청이며 걸어 나오자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허공에 떠도는 몇 쌍의 눈동자는 호기심, 더러운 욕망, 그리고 감정을 감춘 관찰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칼날처럼 그녀의 살갗을 핥았다.

엽교의 뇌리는 마치 뾰족한 바늘에 찔린 듯 따끔거렸다.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향수의 매혹적인 향기가 그녀의 의식을 다시 한 번 몽롱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볼이 점점 붉어지고 숨결이 다소 가빠졌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외설적인 시선들 속에서 몸이 오히려 미세하게 떨리고 은밀한 곳마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천산 파의 대사형이다… 나는 엽교가 아니야…”

그녀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며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앞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모습이 오히려 매혹의 한 형태로 비춰져, 난간 옆에 있던 뚱뚱한 귀인이 손을 내밀어 그녀가 지나칠 때 허리를 한 번 훑었다.

“아! 뭘 하는 거냐!”

엽교가 놀라서 한 걸음 물러서니 온몸이 굳어졌다. 무인의 본능이 막 손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뒤에서 천천히 다가온 상금이 제때 뻗어 그녀의 손목을 굳게 붙잡았다.

“이건 우리 취향각의 새로운 여인이지요. 아직 일을 배우는 중이라 부끄러워하고 있어요. 대인께서는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상금은 그 귀인에게 살짝 미소를 보내며 팔을 끌어당겨 엽교를 더욱 안쪽 무대로 데려갔다. 주위의 웃음소리와 은밀한 수군거림 속에 섞여, 누군가 은밀히 말했다.

“정말 굴러온 복이야. 겉모습은 차갑지만 뼛속까지 요염한 년이지…”

“목소리 좀 들어봐, 저 억울한 듯한 눈빛, 침대에 누우면 얼마나 대단할까…”

한마디 한마디가 바늘방석처럼 그녀의 마음을 찔렀다. 목울대가 심하게 움직이며 억울한 분노를 꾹 눌러 삼켰지만, 몸은 더욱 솔직했다. 유방과 같은 노골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그녀의 은밀한 곳은 이미 부끄럽게도 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모순된 반응에 그녀는 극도의 혐오감을 느꼈다.

잠시 후, 자색 옷의 여인이 그녀를 창문가의 다실로 데려갔다. 이곳은 누각 아래의 번화한 정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엽교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찰나, 상금이 마치 살랑이는 버들가지처럼 다가왔다.

“잘하고 있어요.”

그녀가 부드럽게 속삭이며 붉은 입술이 귓바퀴에 바짝 달라붙었다.

“당신이나 유천심이나, 이제 이 아름다운 껍질 속에 갇힌 이상 취향각의 비밀을 알려면 반드시 그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어야 해요. 사방에서 감시하는 눈을 피하고, 저 높은 지위에 있는 손님들이 무심코 흘리는 말을 듣고, 이 옷들과 연지가 당신의 일부인 양 행동해야 진짜 단서를 얻을 수 있어요.”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 내 사매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

엽교가 이를 악물고 한마디 한마디 짜내며 묻자, 상금은 살며시 웃으며 흰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술 모양을 따라 한 번 쓸었다.

“서두르지 마요. 당신이 우리의 수칙을 잘 따르면, 이 모든 대가가 아깝지 않을 거예요. 말해 줘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수사인가요, 아니면…”

그녀가 손가락을 떼려는 순간, 엽교는 무심결에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 그녀는 상금의 지문에 묻은 향분 냄새를 맡았고, 거의 동시에 아랫배가 다시 꿈틀거리며 여성으로서의 본능이 그녀를 한 걸음 더 밀어붙였다.

“나는 반드시 사매를 찾을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이를 악물었다. 상금은 신경 쓰지 않고 치파오 소매를 가볍게 털며, 난간에 앞발을 얹고 있는 엽교의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취향각은 여전히 북적거리고 있었고, 이 밀실의 은밀한 이야기에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향불의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등불이 일렁이며 황홀한 빛줄기를 드리웠다. 엽교는 그 빛과 그림자 속에서 문득 자신을 보았다. 등 뒤의 비단 길은 문양이 휘황찬란했지만, 무인의 곧은 몸은 이미 인피 옷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들고 있었다.

수석의 첫 손님

취향각의 깊은 복도 끝, 붉은 비단 휘장이 드리운 방 안은 짙은 훈향으로 가득했다. 엽교는 얇은 비단 치파오 차림으로 방 중앙에 서 있었다. 치파오 아래로 드러난 팔과 다리는 인피 옷이 만들어낸 매끈한 윤곽을 따라 흘렀고, 가슴께는 옷감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곳은 수석(首席)의 방이었다. 취향각에서 가장 귀한 미인만이 머무는 곳이며, 그 첫 손님이 오늘 찾아온다는 통보를 상금에게서 들은 지 한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문 밖에서 낮은 숨소리와 함께 뚱보 중이 벽에 기대 서서 팔짱을 끼고 안쪽을 힐끗거렸다. 달아나려 해도 저 뚱보 중이 복도에서 큰 몸뚱이로 길을 막아설 터였다. 엽교는 입술을 깨물었다. 속으로 천산파의 심법을 되뇌며 내공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단전은 텅 빈 듯 무감각했다. 흑의노구가 남겨둔 검은 연기가 아직도 혈도를 따라 은근히 스며들어 무공을 완전히 틀어막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가죽 신발이 마룻바닥을 밟는 소리와 함께 상금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귀인께서 오셨습니다, 엽교 아가씨.”

문이 밀리며 중년 남자가 들어섰다. 비단 도포의 깃에 금실로 수놓은 문양이 번쩍였고, 손에는 향주머니를 쥐고 있었다. 수도에서 고위직에 있음이 겉옷의 품격만으로도 드러났다. 피부는 윤택했고 이마에는 권력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남자는 엽교를 보자마자 눈가에 느릿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상금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닫으며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오늘 밤 신인께서 특별히 허락하신 수석 자리입니다. 흠뻑 즐기소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엽교의 어깨가 굳어졌다. 남자는 천천히 그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시선으로 전신을 훑었다. “그래, 바로 너구나. 듣던 대로 희고 가냘픈데 눈빛에 매서운 데가 있군.” 손이 올라와 엽교의 턱을 살짝 쥐었다. 엽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 했지만 손끝에 힘이 실리자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들었다. 치파오의 깊게 팬 목선 사이로 인피 옷이 만들어낸 유방이 드러나자, 남자의 다른 손이 그곳으로 느리게 다가왔다.

“잘 길들여진 몸이군.” 남자의 손바닥이 왼쪽 가슴 언저리를 감싸듯 얹혔다. 엽교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이 꼭 쥐는 순간, 인피 옷 안쪽의 은밀한 기관이 살짝 작동했다. 가느다란 실핏줄 같은 기관을 타고 흐르는 온기가 유방 깊숙이 찌르르 전해졌다. 엽교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가 파고들어 피가 맺혔다. 고통으로라도 밀려오는 쾌락의 파문을 누르려는 몸부림이었다.

“아프면 말해도 좋아.” 남자가 허리를 굽혀 엽교의 귓가에 바람을 불며 낮게 웃었다. 손이 아래로 미끄러져 치파오 옆트임 사이로 들어왔다. 손가락이 허벅지 안쪽을 스치며 밀혈 쪽으로 다가가자, 엽교는 두 다리를 함께 오므리려 했으나 남자가 무릎으로 다리를 벌리며 막아섰다. 손가락이 천천히 젖은 틈새를 찾아내고, 그곳을 누르는 순간 인피 옷의 기관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따스한 진액이 안에서 스며 나오고, 옷감 아래로 미세한 떨림이 퍼지는가 싶더니 쾌락의 파문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안 돼….” 엽교가 숨 막힌 소리로 내뱉었지만 이미 늦었다. 손가락이 리듬을 타며 움직일 때마다 밀혈 안쪽이 꽉 조여들었고, 특수한 구조는 신경을 뒤흔드는 쾌감을 증폭시켜 절정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남자는 엽교의 무릎이 떨리며 허리가 뒤로 젖혀지는 꼴을 지켜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엽교의 이빨 사이로 신음이 새 나왔다. 절정이 덮쳐오자 시야가 허옇게 흐려지고 숨이 목에서 막혔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테이블 모서리를 붙잡았지만, 손아귀에 힘이 풀려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정신을 가까스로 수습했을 때, 남자는 이미 느긋하게 다기를 들어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엽교는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가다듬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기회였다. 절정의 혼미 사이로 스며든 상념을 붙잡아야 했다. 속으로 유천심의 얼굴을 그렸다. 사매가 실종된 이후 단 하나의 단서라도 손에 넣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소녀가 듣기로….” 엽교는 침대 기둥에 몸을 기대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눈물이 맺힌 긴 속눈썹을 깜박이며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수도에서도 종종 귀인 댁의 여인이 사라진다 하옵니다. 이 취향각에 오시는 어른들은 그러한 이야기를 접하셨는지요…”

남자는 잔을 내려놓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너도 그런 소문을 들었구나.” 손가락으로 엽교의 젖은 뺨을 스쳤다. “확실히 두세 건 있었지. 허나 조사하는 자들은 혀를 깨물었다더군. 아마… 궁 안에도 연줄이 있다지.” 말을 흐리며 빙그레 웃었다. “이런 일은 함부로 입에 담기 어려운 법이다. 특히 네가 몸담은 이 취향각과도 완전히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지.”

엽교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궁 안의 귀인까지 연루되었다는 암시였다. 취향각이 단순한 유곽이 아니라 훨씬 더 거대한 권력의 촉수를 갖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손님의 어깨너머로 방 한쪽의 주렴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뚱보 중이 좁은 틈 사이로 눈을 번뜩이며 엽교가 더 묻는 것을 감시하고 있었다. 엽교는 입을 다물었다. 더 깊이 캐묻다간 도리어 의심을 살 판국이었다.

남자는 다시 다가왔다.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자.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한 번만 더…” 손이 치파오의 옷고름을 풀자 비단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인피 옷이 보호하는 피부의 느낌이 따뜻한 조명 아래 드러났다.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엽교의 유방을 다시 움켜잡으며 힘을 주었다. 인피 옷 안의 기관이 이번엔 한층 세게 움직였다. 엽교의 허리가 기둥에 부딪히며 짧은 숨이 터져 나왔다.

끝난 뒤, 방 안은 땀과 향내와 훈향이 뒤섞여 후텁지근했다. 손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남기고 상금의 안내를 받으며 떠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멀어지자 엽교는 침대 아래로 주저앉았다. 손이 와 닿은 자리마다 화끈거렸다. 치파오를 걷어 올리니, 허벅지 안쪽으로 인피 옷에 배어든 액체가 은은히 번들거리고 있었다. 배 속 깊은 곳에서 아직도 잔물결처럼 쾌감이 파동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점점 더 이 복종과 쾌락에 적응해간다는 사실이 절망으로 다가왔다. 엽풍 시절 수련했던 내력이나 검술의 기억이 조금씩 흐릿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말간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먼저 조용히 어깨가 들썩이다,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무릎을 웅크리고 얼굴을 팔 사이에 파묻고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창밖의 달빛을 받아 더없이 처연했다. “사매… 도련님….” 입술 사이로 스며 나온 이름은 유천심과 스승 유정명이었다.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을 뿐 아니라, 이미 몸과 마음이 범벅이 되어가고 있음을 어찌 알리겠는가.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상금이 발소리도 없이 들어왔다. 붉은 치파오 자락을 우아하게 끌며 걸어와 엽교 옆에 앉더니, 한쪽 팔로 떨리는 어깨를 감쌌다. 다른 손은 엽교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여쁜 아가씨,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라. 처음이 다 그런 법이지. 점점 견딜 만해질 거야.”

상금은 엽교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품속에서 작은 백자병을 꺼냈다. 병마개를 열자 달콤쌉싸래한 냄새가 났다. “자, 이걸 마셔.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테니.” 상금은 병을 엽교의 입술에 갖다 댔다. 엽교는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울다 지친 몸은 상금의 팔에 거의 안겨 있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머리 위로는 어느새 나타난 뚱보 중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묵묵히 팔짱을 끼고 있었고, 얼굴에는 무표정이었지만 엽교가 거절하면 곧바로 제압할 태세임이 분명했다.

“마셔.” 상금의 목소리는 여전히 달콤했지만 그 이면에는 칼날 같은 강제가 숨어 있었다. 엽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매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스쳤다. 입술이 벌어지고, 차가운 액체가 혀 위로 흘러들어왔다. 향긋하면서도 텁텁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이윽고 단전 부근에서 온기가 살아났다. 그러나 그것은 내공의 기운이 아니었다. 몸의 감각을 예민하게 깨우는 동시에 이성의 끈을 더욱 느슨하게 만드는 음흉한 온기였다.

상금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빈 병을 소매 안에 집어넣었다. 엽교의 턱을 살짝 들어올리며 웃었다. “이제 좀 나아졌지? 내일 모레면 또 새로운 귀인이 오실 거야. 몸조리 잘하고, 자리를 지키렴. 이 방이 네 감옥이 아니라 네 전당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단다.”

엽교는 대꾸할 힘조차 없었다. 방 안에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뚱보 중이 벽 쪽으로 물러가 앉아 등을 기대었지만, 작은 눈은 여전히 엽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상금이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문 쪽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잡은 채 잠시 멈춰 서서 어깨 너머로 덧붙였다. “아, 그리고… 아까 손님이 하셨던 말, 기억하지? 궁 안의 귀인이라는 대목 말이야. 너무 호기심 갖지 않는 게 좋아. 알면 알수록 네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발소리가 복도로 사라졌다. 엽교는 침대 시트 위로 천천히 미끄러지듯 누웠다. 천장의 그림자가 내려앉는 듯했다. 사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채, 자신은 갈수록 이 덫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약기운이 뇌리를 감싸며 의식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꿈속에서인 듯, 유천심이 흰옷을 입고 손을 내미는 환영이 떠올랐지만 그 얼굴은 이내 물결 속으로 사라졌다.

복도 저편에서 뚱보 중이 길게 하품하는 소리가 들렸다. 취향각의 밤은 깊어가고, 수석의 첫 손님이 남기고 간 쾌락의 그림자와 권력의 비밀만이 방 안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